성영록 | 화가, 칼럼니스트
귀한 선물 고운 보자기에 담아 꽃길을 걷다.
*장윤영 개인전 - <계절이 깃든 보자기, 사계>
- 2023.12.6.-12.17, 예술공간광명시작
보자기는 예로부터 우리 곁에 자연스럽게 함께 해왔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일상적으로 다양하게 활용되기도 했다. 특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자기는 어머니의 따뜻한 정을 담고, 학교생활의 추억을 담거나 특별하고 귀한 것을 담아 선물할 때 등장한다. 그래서 보자기는 우리에게 친숙하기도 하고, 떼어낼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에는 다양한 가방이나 쇼핑백이 생기면서 예전만큼은 보자기의 활용이 많은 것은 아니다. 그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고자 어떤 모양의 물건이든, 또 그 모습 그대로를 담아내는 보자기를 현대에서도 알차게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재해석하는 아티스트가 있다. 그 사람은 보자기와 매듭을 자기만의 개성으로 풀어내 <계절이 깃든 보자기, 사계>라는 첫 개인전을 당차게 관람객들에게 선보인 ‘보자기 사계’로 활동 중인 장윤영 작가이다.
‘2023 시작예술인 지원사업에 선정된 4인 중 첫 번째 작품전이 2023.12.6.-12.17까지 광명문화재단과 이케아 광명점이 협력하여 조성한 예술공간 광명시작에서 열렸다. 5 대 1이라는 경쟁률의 많은 지원자들 중 서류심사와 인터뷰심사에서도 장윤영의 작품세계와 정돈된 전시구상은 단연 눈에 들었다. 결과처럼 장윤영은 보자기란 소재에 본인만의 색감과 감성을 담아 구성한 개성 넘치는 전시를 선보였다.
<계절이 깃든 보자기, 사계>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 사계절을 모티브로 한 4개의 공간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화사한 꽃이 프린트된 보자기와 따뜻한 색감의 비단 그리고 포인트로 수놓아진 그림들은 봄을 설명하고 있었다. 훤히 비치는 소재의 푸른색과 연두색 그리고 연꽃이 프린트된 보자기들은 하나의 여름날의 연못을 이뤘다. 황금물결이 일 듯 강렬한 노랑과 튼실한 열매를 형상화하는 매듭은 함께 설치된 추수한 벼와 함께 풍성한 가을이었다. 새하얀 누빔 소재와 파랗다 못해 시퍼런 쪽빛 보자기 매듭과 한옥의 문양을 프린트한 모습은 우리나라의 전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겨울이었다.
심사를 하는 동안 장윤영 작가에게 몇 가지 궁금증이 있었다. 이렇게 섬세하게 꼼꼼하게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는데 왜 아직 개인전을 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딱 떨어질 정도로 체계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색감까지 만들어 내는 이 사람은 무슨 경험과 경력이 있는 것일까? 전시장에서 차분히 본인의 입으로 살아온 이야기와 보자기에 대한 애정을 듣고 나니 나의 궁금증이 명쾌하게 해소되었다.
유능한 패션 디자이너 그리고 MD로 활동을 시작했던 장윤영, 사람들이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판매가 잘 되는 상품들을 개발하고 준비하면서 실력을 키우고, 발전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삶에 만족하지 않고 긴 시간 익숙했던 일을 내려두고 본인이 하고자 하는 새로운 길에 도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보자기 아트를 시작한 지는 3년 정도 되었지만 이전의 경력에서 묻어나는 내공과 체계적인 경험이 함께 어우러져 알찬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충분한 본인의 내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자세로 더욱 고민하고 있는 자세 덕분에, 조금 늦어진 첫 개인전이지만 수차례 전시를 열었던 작가들만큼 아니 그 이상의 모습을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다른 공모나 지원 사업에 심사를 많이 했다. 그리고 신진 작가들의 인큐베이팅 멘토로 특강을 진행하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작가 지망생들의 전시를 찾아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전시장에 방문할 때 선배로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기도 하지만 때론 아쉬움과 크게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완전하고 완벽한 작품성만을 보고 평가되는 모습은 아니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첫 개인전 뿐만 아니라 모든 전시에는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 또 전시를 준비하는 성실함은 작품에서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특히 지원금 또는 공모에 선택된 사람이라면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미 지원금에 선정되었다고, 완성도 안된 작품들로 대충 전시하거나, 본인의 전시임에도 정성을 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한숨과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장윤영의 개인전은 많이 달랐다. 적은 지원금과 오픈한지 반년도 되지 않은 공간에서 열리기에는 아까울 정도의 완벽에 가까운 전시였다. 밀도감과 완성도가 돋보이는 작품들과 그 작품들을 가장 빛나게 하는 공간 구성은 작가가 오래 고민한 시간이 그대로 느껴졌다. 대중에게 익숙한 전시가 될 뻔한 모습을 장윤영 스스로가 독창성 있게 ’사계‘를 표현했고, 명민하게 활용한 소품들은 풍부한 감성을 이끌어 내기에 칭찬받아 마땅할 것이다.
“한 땀 한 땀 장인인 만든” 드라마 대사처럼 전시된 보자기 어느 하나 허투루 만든 것이 없을 정도로 뚝심 있게 만들어낸 작가의 고생한 손길이 그대로 담겨있다. 작은 공간에서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다양함을 만끽할 수 있기에 감상자에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전시일 것이다.
장윤영 작가는 여전히 고민하고 또 연구한다.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다음 전시에 대한 고민 그리고 작가로서의 직면한 상황들을 현명하게 대처하고 돌파하고자 하는 고민까지... 하지만 고민을 하나씩 풀어 나갈 때마다 마치 보자기에 싸인 선물을 하나씩 풀어가는 기대처럼 작가에게 설렘과 작업에 대한 즐거움이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
이 전시 보고 있으니
‘기분 좋은 봄날에 귀한 선물 고운 보자기에 담아 그분을 만나기 위해 설레는 미소 머금고 꽃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