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전시 참여작가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으로 하여금 작가의 작품 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2024 9.7 - 12.1
정현준: 무등(無等)으로의 항해
심재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대사는 연극 무대에서 울려 퍼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서울 종로구의 한 후미진 구석에서 바둑을 두는 노인이 읊는 대사다.
정현준의 〈만남의 광장〉은 아마도 광주파빌리온에서 가장 주목받지 못한 작품일지도 모른다. 1) 무심하게 바라봤을 때는 광주와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같은 광주 파빌리온 전시에 참여한 이강하와 오종대는 광주의 정신 그 자체라는 무등산의 다채로운 모습을 제시했다. 이세현, 안희정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광주의 국공립건물을 새롭게 재해석하였다. 반면 〈만남의 광장〉은 2021년 서울 종로구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서울 종로구를 배경으로 한 〈만남의 광장〉이 광주의 지역성을 대표하는 전시에 소환된 이유는 무엇일까?
정현준은 일상 속 깊숙이 스며들어 눈치채기 어려운 혐오와 편견을 밝혀내는 작업을 꾸준히 해 왔다. 그는 <만남의 광장>에서 서울 한복판 길거리 포장마차가 즐비한 종묘광장공원 일대에서 이른바 ‘길포바둑’을 두는 노인들을 피사체로 선택했다. 작가에게 노인들은 한국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나 있는 존재이다. 정현준은 그들의 이야기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을 자신의 피사체로 제시한다.(도판 1)
<만남의 광장>에는 “바둑 상대만 잘 만나면 젊어진다”는 노인부터 “바둑 한판에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노인까지 ‘위기오득(圍棋五得)’, 즉 바둑으로 얻은 삶의 진리를 말하는 16인의 길포 바둑기사(棋士)들이 등장한다. 2) 그 속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다. 34년간 공무원 생활을 한 사람, 45년간 유흥업소에서 종사한 사람, 과거 불미스러운 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 되었던 적이 있는 사람 등등. 구치소에서 배운 바둑을 이른바 ‘법무두 바둑’이라고 부른다며 은어를 알려주기도 하는 등, 모든 기사들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렇게만 보면 <만남의 광장>은 한국 사회의 소외된 노인들을 조망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전형적인 다큐멘터리로 보인다. 그러나 작가는 16강, 8강, 4강, 준결승, 결승으로 이어지는 토너먼트 과정을 극적인 미장센으로 탈바꿈하며 뻔한 전개를 거부한다. 상대방에게 대국을 제안하는 한 노인은 카메라를 향해 영화 〈대부〉의 명대사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나 하지”를 어설프게 내뱉는다. 대국 도중 위기에 처한 또 다른 노인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대사를 빌려 살고 죽는 것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또 어두운 연극무대처럼 홀로 핀조명을 받으며 담배를 태우고, 그 가운데 수를 고민하는 노인의 모습은 마치 맥베스의 비장함마저 연상시킨다.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결승전이다. 그중 결승 2국의 배경은 소양강이 흐르는 강원도 인제 군축교이다. 대국의 결승 주자인 길포 7단 구본욱 기사와 길포 3단 이봉기 기사는 대국을 펼칠 장소로 소양강을 선택했다. ‘선수탑승차량’이라는 글자가 새빨간 테이프로 붙여진 새하얀 자동차를 타고 그들은 진행 MC까지 대동한 채 군축교로 향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대국을 펼치는 시퀀스는 현실주의와 신비주의를 접붙여 놓은 듯 초현실적인 화면을 연출한다.(도판 2) 여기서 대국을 펼치는 장소는 신선들이 바둑을 펼치는 무릉도원으로 격상된다. 또한 낡았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종로 샤론웨딩홀에서 펼쳐지는 결승 3국 및 시상식에서 조악한 화관을 머리에 쓴 채 상패를 수여받는 기사의 모습 역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처럼 촌스럽고 투박하지만 유머러스하고 환상적인 연출을 통해 바둑을 모르는 관객도 대국에 몰입하게 된다.(도판 3)
정현준에게 영상이라는 매체는 단순히 동시대 미술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수단으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그의 영상은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노인들을 가시(可視)의 영역으로 끌고 온다는 점에서 매체와 주제가 부합한다. 카메라를 응시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어설픈 연기를 펼치는 기사들과 이러한 장면을 영화적이고 연극적인 기법으로 제시한 연출 모두 영상이라는 매체 내에서 복합적으로 기능한다. 결국 매체를 통해 ‘소외된 노인’은 ‘길포바둑 기사’라는 존재로 변모한다. 이러한 영상매체의 탐구는 기존의 관성이 만들어낸 이미지들이나 불확실한 것들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작가의 태도와도 이어져 있다.3)
한국 사회에서 노인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태극기 부대’, ‘틀딱’이라는 비하적 표현이 일상표현으로 자리 잡은 한국 사회에서 노인들은 스스로의 존재를 지운다. 노인을 주제로 한 정현준의 또 다른 작품 〈노인과 호랑이〉에는 서울 곳곳을 은둔하며 누비는 노인 오기동이 등장한다. 그는 노인이 되면 대한민국에서는 갈 곳도 없고 숨어 다니게 된다며, 노인을 젊은이가 불편할까봐 이곳저곳 밀려나는 존재로 규정한다.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은 퇴직을 앞둔 산림청 공무원 강순석이다. 호랑이와의 대면을 꿈꾸며 이 산 저 산을 다니는 강순석을 따라 작가는 산에 오른다. 산을 오르던 중 낙엽더미에 묻힌 버섯을 무더기로 발견한 강순석은 말한다. “자세히 봐야 있당께.” 한국 사회의 노인들은 산 속 버섯처럼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눈 앞에 두고도 이들을 보지 못한다. 아니, 보려 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만남의 광장〉에서 흐르는 신나는 배경음악은 도리어 우리를 서글프게 만든다. 노래 속 주인공들 모두 여기가 아닌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밤이 새면은 첫차를 타고 행복어린 거리로 떠나갈 거예요” (혜은이, 제3한강교)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배호, 황성옛터)
“고개 들고서 오세 손에 손을 잡고서. 청춘과 유혹의 뒷장 넘기며.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러요.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한대수, 행복의 나라로)
이 노래들을 듣다 보면 아일랜드의 시성(詩聖) 윌리엄 예이츠(William Yeats)가 쓴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Sailing to Byzantium」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예이츠는 관능적 육체와 향락, 유한한 젊음에 탐닉하는 이 아름다운 세계에 노인을 위한 곳은 없다고 한탄한다. 이 위대한 시인은 결국 불멸의 지성과 예술의 세계인 이상향 비잔티움으로 떠나 영혼의 해방구를 찾고자 한다. 즉, 겉모습은 늙어 초라할지언정 영혼, 지성이 빛나며 노인의 가치를 알아보는 신성한 곳으로 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곳은 노인들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껴안고 있는 젊은이들, 나무 위 새들
- 죽어가는 세대들 - 은 노래 부르고
연어가 뛰는 폭포, 고등어 가득한 바다,
물고기, 짐승, 새들은 여름 내내 찬미하네
잉태되고, 태어나고, 죽는 어떤 것이든
관능적인 음악에 사로잡혀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를 모두 경시하네
노인들은 하찮은 존재
영혼이 손뼉 치고 노래하지 않는다면
지팡이 위에 걸쳐진 낡은 코트일 뿐
육신의 옷이 해져 갈수록 더 크게 노래하네
영혼을 위한 노래를 가르치는 학교는 없고
자신의 장엄한 기념비를 공부하여야 하네
그래서 난 바다를 항해하여
신성한 도시 비잔티움으로 왔네
그러나 우리는 예이츠가 노래했던 것처럼 이들을 저 먼 이상향으로 떠나보내선 안된다. 이들의 ‘나 여기 있다’는 외침을 들어야 한다.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 동은은 바둑을 왜 좋아하냐는 질문에 “침묵 속에서 죽을 힘을 다해 싸우는 게 좋아서”라고 답한다. <만남의 광장> 속 기사들에게 길포바둑은 결국 살기 위한 조용한 외침이다.
앞서 필자는 서울 종로구를 배경으로 하는 〈만남의 광장〉이 왜 광주에서 주목받아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오랜 시간 서울의 중심부였던 종로는 현재까지도 상업의 중심지이며, 종묘를 비롯한 고궁이 보존되어 있어 이른바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그중에서도 노인들이 주로 모이는 ‘종로3가’는 독특한 공간이다. 왜냐하면 이곳은 2000년대 재개발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이 야기한 갈등을 겪은 공간이나,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던 공간과 겹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섬처럼 동떨어진 ‘종로3가’의 고립된 이미지는 300km 떨어진 광주의 이미지와 중첩된다.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 발전사에서 오랜 시간 소외되었지만, 그 지정학적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고 나날이 늘어나는 광주는 또 다른 ‘종로3가’이다. 이런 의미에서 <만남의 광장>은 ‘광주 밖의 무수한 공동체들과 연대 의식을 도모할 수 있는 공통의 기억’을 이끌고자 한 광주파빌리온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작품일 것이다. 지난 여름 비엔날레를 방문한 이들에게 광주 시내의 지하도는 잠시나마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고마운 보행통로였다. 그리고 그 지하도를 가득 채운 것은 그곳에 모여 바둑을 두고 있는 수많은 노인들의 모습이었다. 이처럼 ‘길포바둑’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광주비엔날레는 이번 광주파빌리온 기획에서 “무등산과 무등의 중층적 의미가 절대적인 이상향에 머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즉 무등은 연대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을 가능케 하는 태도가 되어야 하고,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개인과 공동체를 잇는 사고방식의 근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4) 철학자이자 예술비평가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에 따르면 예술가는 관객과 언어를 공유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몸담는 있는 물질적 세계를 공유한다. 결국 특정한 기술의 예술은 관객이 사는 실제 세계를 바꾼다. 이로써 그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노력하고 이로 인해 그들의 감각과 태도는 바뀐다.5)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만남의 광장> 속 노인들과 그들의 문화는 비로소 현전한다. 정현준의 작업은 사적 기억과 공적 기억 사이를 횡단하며 사회문화적, 지정학적 상황에 대한 대화를 촉발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국 사회의 노인들을 새롭게 인식한다. 편견과 혐오의 기원을 탐구하고 이에 맞서는 것. 소외된 자들이 기약 없는 이상향이 아닌 진정한 무등으로 항해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날 예술가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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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재은(1990-) mudigkeit@naver.com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재학. 중남미문화원 병설박물관 학예사로 근무했으며, 전후 유럽 아방가르드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1) 정현준(Jung Hyeonjun)은 부울경(김해장유)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이다. 개인전으로는 공간 힘에서 열린 《유리와 동굴》(2023. 12. 8.-2024. 1. 21.)이 있고, 단체전으로는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린 《N ARTIST 2023: 더 느리게 춤추라》(2023. 3. 17.-8. 27.)와 《경남·전남 청년작가 교류전: 오후 세 시》(2024. 4. 5.-5.26.) 등이 있다. (작가 인스타그램 @chonnom666, 만남의 광장 인스타그램 @spacemannam)
2) 바둑에서 위기오득은 제1득 득호우(得好友, 좋은 친구), 제2득 득인화(得人和, 인심(人心)의 화합), 제3득 득교훈(得敎訓, 교훈), 제4득 득심오(得深奧, 마음이 깊고 오묘한 경지에 듦), 제5득 득천수(得天壽, 천수를 누림)를 뜻한다.
3) 《경남·전남 청년작가 교류전: 오후 세 시》 브로슈어 중 작가 인터뷰
https://gam-exhibition.site/3pm/artists/junghyeonjun.html (2024년 11월 5일 검색)
4)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광주파빌리온 《무등: 고요한 긴장 Equity: Peaceful Strain》 기획의도
https://artmuse.gwangju.go.kr/pj/pjExhibit.php?pageID=artmuse0209000000&action=view&exhiCd=&exhiTp=N&lang=KOR&eSeq=869 (2024년 11월 17일 검색)
정현준, 만남의 광장, 2021, 24분,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제공 심재은
정현준, 만남의 광장, 2021, 24분,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제공 심재은
정현준, 만남의 광장, 2021, 24분,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제공 심재은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