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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와 비평][GB24] (15) 알렉스 세르베니 Alex Cerveny

남수영

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전시 참여작가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으로 하여금 작가의 작품 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2024 9.7 - 12.1


회화로의 회귀 : 알렉스 세르베니


남수영

현대미술은 정의할 수 없이 폭넓은 종류의 매체를 사용한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편집된 영상, 쓰레기를 사용하여 만든 입체 작품, 이미 완성된 공산품 등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다양한 매체에 기반한 예술 작품들은 이제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흔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누군가 미술이란 단어가 연상하는 이미지를 묻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2차원의 평면에 그려진 회화의 모습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20세기 중반, 회화의 매체 특정성(medium specificity)에 관한 논의의 장을 제공한 인물인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는 전통적으로 이어져 오던 2차원 공간 속 펼쳐진 3차원 환영을 포기하고 회화만이 가진 특성에 관해 설명한다. 평평한 표면(the flat surface), 캔버스의 형태(the shape of the support), 물감의 속성(the properties of pigment)이야말로 회화가 추구해야 할 본질이라는 그의 주장은 1950년대 미국을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붐으로 이끌었다. 1) 회화와 조각을 분리하면서 시작한 매체 특정성에 관한 논의는 이후,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Epstein Krauss, 1941-)를 비롯한 학자들에 의해 비디오, 사진들로 확장되었고 웹 2.0(Web 2.0) 시대를 거쳐 컴퓨터를 포함한 무수한 물질을 아우르게 되었다. 현대미술에 이르러 범람하는 매체들 가운데 전통적인 매체인 회화는 관람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지도 않고, 다소 지루하다는 인상을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회화에 집중한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 알렉스 세르베니(Alex Cerveny, 1963-)의 작품은 이러한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며 눈길을 끄는 매력이 있다. 고전 회화 형식을 차용하는 그의 독특한 회귀적 행보는 관람자로 하여금 현대에 탄생한 중세의 회화를 목도하는 감상을 일깨우며 서사의 전달이라는 회화의 원초적 목적을 상기시킨다. 2)  

브라질 상파울루 출신의 세르베니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드로잉과 판화를 통해 스스로 미술을 익혔다. 점차 그의 작업 세계는 회화, 도자기, 청동 작업으로 발전하였는데, 현재는 회화에 몰두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제15회 광주비엔날레 본 전시에서 그는 총 6점의 회화 작품을 출품했다.

작가가 캔버스에 묘사한 풍경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제시한 초현실주의적 세상처럼 보인다(도  1). 캔버스의 상단부로 가며 진해지는 푸른 하늘에는 헤르메스의 지팡이 카두케우스의 뱀과 같이 나선형으로 꼬인 신체를 지닌 인간, 하반신이 존재하지 않는 흉상뿐인 인간이 공중에 매달려 있고, 신이 내린 천벌처럼 보이는 불덩이들이 낙하한다. 땅 또한 평범하지 않다. 비옥하지 않은 대지 위로 듬성듬성 자라난 풀과 나무는 불에 타고 있거나 인간을 매달고 있다. 창세기 아담과 이브를 연상시키는 알몸의 인간들 사이로는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일본의 유명 캐릭터인 울트라맨과 같은 아이콘들이 묘사되어 허구 속 숨어있는 실재의 파편을 드러낸다. 

개인적 서사와 사회 정치적 서사를 신화, 성서의 방식을 빌려 캔버스에 담아낸 세르베니는 여정이라는 주제를 채택하여 인간의 삶과 역사의 흐름을 짚어낸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인 <보트 피플>(2024)은 1970년대 전쟁의 여파로 베트남에서 탈출한 수천 명의 난민을 주제로 했다. 보트에 탄 다인종의 인물들은 전쟁, 기아, 자연재해로 고국을 떠나 새 보금자리를 찾는 난민들의 존재를 환기하며 정착하지 못한 채 바다를 떠도는 배는 그들이 겪은 위험한 망명의 현실을 인식하게 만든다. 3) 베트남을 떠난 이들이 자신들을 받아 줄 아시아의 국가를 찾아 떠돌았고 그들 중 몇몇은 표류하여 겨우 캐나다에 도착하였다는 점에서 광활히 펼쳐진 바다 위로 솟아오른 섬들은 정박할 육지는 있으나 정작 난민들을 환대하며 맞아주는 국가가 없음을 상징한다 할 수 있다. 

세르베니 회화의 돋보이는 특징 중 하나인 텍스트는 <보트 피플>에서도 주목할 요소이다(도 2). 작가는 강제 이주를 겪는 이들의 고통을 전달하기 위해 기다림, 망명, 위험을 작중 중심 주제로 설정하고 있는 바다와 관련된 문학적, 역사적 레퍼런스를 가져왔다. 하늘을 빼곡히 차지하는 텍스트들은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의 『모비딕』에서 나오는 장의 목록,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의 등장하는 책 목록, 카스트로 아우베스(Castro Alves, 1847-1871)의 서사시 『흑인 노예선』의 이야기를 옮긴 것이다. 『모비딕』은 19세기 미국의 포경업계가 양극화시킨 미국 동부 지역의 빈부격차와 팽배해진 물질주의, 노예제도의 민낯을 드러내는 소설로 피식민지국의 고통이 종료되지 않고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중해를 떠도는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로 바다에서 방황하는 난민의 삶으로 빗대어 볼 수 있으며 『흑인 노예선』은 노예무역과 대서양의 삼각 무역에 착취당한 국가들의 피해와 제국주의의 가혹함을 나타낸다. 

허구에 실재를 섞는 세르베니의 전략은 텍스트에서도 등장한다. 작가는 난파선에 날짜를 적고 유명한 해적의 이름, 캐나다 전역에 위치한 베트남 음식점의 이름들을 텍스트에 포함하며 그림의 서사를 단순 허구로 치부할 수 없게 한다. 이는 마치 우리가 직접 보고 들을 수는 없어도 분명히 존재하는 고통받는 이들을 기억하자는 작가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그의 회화 속 인간은 일반적인 인간의 신장을 가지고 있거나 산보다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등 규정되지 않은 크기를 자랑한다. 한 화면에 담겨 있으나 각자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들은 고립되어 있으며 이들이 머물러야 할 구역이 분할된 것과 같은 시각적 착각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공간적 분리의 형태적 특징은 중세 시기 글을 모르는 이에게 성경의 이야기를 전파하기 위해 제작되었던 제단화의 형식과도 닮았다. 중세 제단화는 주로 나무 또는 캔버스를 이용하여 다중적인 구조로 제작되었고, 패널마다 구역을 나누어 성경의 내용을 담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단화는 교회의 제단 위나 뒤에 설치되어 교회를 찾은 이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주지시키곤 했다. 때로 제단화에는 그림뿐만이 아닌 텍스트로 첨부되었는데,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는 보조적인 기능을 하였다. 이미지로 이루어진 스토리텔링으로서 이러한 제단화의 형식은 관람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속삭이는 세르베니의 회화와 유사점을 띈다. 

중세 제단화의 목적은 성경 이야기의 전파에 있었으나 그 종착지에는 믿음을 통해 인간을 천국의 안락함에 인도하려는 종교적 교리가 있다. 일전에 인터뷰에서 세르베니는 ‘움직이는 예술’, ‘서거나 앉도록 강요하는 예술’, ‘고정된 지속 시간을 견뎌야 하는 예술’에 항상 피곤함을 느꼈고 그러한 미술과 멀어지기 위해 회화라는 편안함과 안정감의 장소로 회귀했다 말한 바 있다. 그가 추구하는 회화란 다른 세계와의 만남을 촉진하는 내면의 접촉이다. 현대미술을 이루는 매체의 바닷속에서 그가 회화를 선택한 까닭은 안식에 닿으려 한 중세 미술의 묘리와도 비슷한 맥락이 있다. 세르베니가 예술 활동을 시작한 1980년대 브라질에서는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에 대한 반발로 회화로의 복귀를 선언한 이탈리아 신표현주의에 경도된 작가들에 의한 회화의 재발견이 자국 미술계를 휩쓸었었다. 하지만 그가 회화를 선택한 이유는 이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정규 미술 교육과정을 따르지 않은 세르베니는 배경적 맥락을 필수적으로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현대미술과 다른 노선을 걸어야 할 필요성을 체감했다. 이에 그는 미술을 이외 학문과 마찬가지로 연구와 지식의 분야로 간주하고 예술가들에게 학문적인 배움을 강요하는 것은 부차적이고 무가치한 일이라 생각했다. 인쇄업자, 신문 삽화가로 생계를 꾸렸던 그에게 회화는 설명이 필요 없는 삶과 가장 근접한 예술이자 근본적인 예술이었다. 4)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휴식처, 그리고 삶의 예술. 작가의 메시지는 결국 회화에 정착하였다. 『언더 블루 컵』(2011)에서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회화에서 시작한 자기 본질에 대한 가리킴(pointing-to-itself)이 매체 특정성이란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의 유래는 중세의 길드에 의해 재현작업을 위한 토대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준비된 회화의 2차원적 토대는 평평한 단면 위로 허구적 공간을 직조해내고 그 안에 배우들을 입장시켜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욕망을 일게 한다. 인간이 살면서 겪는 평범한 일상, 사회정치적 이슈, 도덕적인 책임, 역사적 문제들을 우리에게 전하는 스토리텔러로서 세르베니가 회화란 매체에 이끌렸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 옛날, 이야기를 ‘보기’ 위해 교회에 방문했던 중세인들과 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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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영 (1999)
상명대학교 조형예술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재학 중. 종교미술이 융성했던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회화에 관심을 두고 있다. 



1) 클레멘트 그린버그, 『예술과 문화』. 조주연 역 (경성대학교출판부, 2019), 346. 

2) 알렉스 세르베니, 브라질 상파울루 출생

웹사이트 : https://www.alexcerveny.com,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alexcerveny

3) “Alex Červený participates in the 15th Gwangju Biennale” 
https://millan.art/en/noticias/alex-cerveny-participa-da-15a-bienal-de-gwangju/ (2024년 11월 19일 검색)

4) 세르베니는 대중예술, 만화, 비잔티움 미술이 자신의 주요 참고자료라 말한 적이 있다. Matteo Bergamini, “Tropical studio #3: Alex Červený e la perseveranza della pittura”, tropical studio, 4 Ottobre 2024. 
https://art-frame.org/index.php/it/2024/10/04/alex-cerveny-intervista-brasile/ (2024년 11월 21일 검색)




알렉스 세르베니, <거룩한 땅>, 2023, 캔버스에 유채, 56x75cm, 개인 소장, 도판제공 남수영




알렉스 세르베니, <보트 피플>, 2024, 캔버스에 유채, 80×240cm, 작가 및 밀란 (상파울루), 도판제공 남수영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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