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예린
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 《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참여작가들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2024 9.7 – 12.1
아몰 K 파틸(Amol K Patil): 그 도시에 초대 받은 이 누구인가?
박예린
《판소리―모두의 울림》(2024)의 첫 번째 소주제 ‘부딪침 소리’는 인적, 물적 자원을 과도하게 수탈하고 소모하는 인간의 의해 포화된 공간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양상의 갈등을 다룬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인 인도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 주 뭄바이(Mumbai)는 불협화음으로 세계의 그 어디보다 시끌벅적한 곳일 것이다. 깨끗하고 매끈하게 빛나는 마천루와 고급 주택을 벗어나면 길거리는 릭샤와 경적 소리를 내뱉는 자동차들로 언제나 혼잡하고, 사람들은 도시 어디에나 붐비며, 하늘에는 매연이 바닥에는 오물과 쓰레기 더미로 가득하다.
인도 뭄바이 출신으로 뭄바이와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아몰 K파틸 (Amol K Patil, 1987-) 의 예술 작업은 그가 태어난 도시의 역사가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거주와 노동, 카스트 계급 문제를 다룬다.1) 1920년 영국 정부에 의해 설립된 봄베이 개발부(Bombay Development Department, BDD)는 당시 급증하는 뭄바이 도시 노동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1920년대 중반, 저렴한 4-5층짜리 주택인 차울(Chawl)을 건설하는 대규모 주택 계획을 세웠다. 차울은 사생활 보장은 커녕 좁은 공간을 다수가 공유하는 최소한의 주거 환경을 제공했는데, 이마저도 뭄바이의 도시화와 이민 노동자들의 과도한 유입으로 급격히 슬럼화 되어 점차 벌레가 들끓고 흐르는 물도 구할 수 없는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공간이 되었다. 그곳에는 주로 농촌에서의 빈곤과 차별을 피해 노동 기회와 사회적 이동을 꿈꾸며 도시로 이주한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했다. 그 중 많은 수는 인도 사회에서 사회적 차별과 억압을 받아 왔던 최하층 카스트인 “불가촉천민” 달리트(Dalit) 출신이었다. 차울은 기차역 인근 등 경제 활동의 중심지인 도시 중심부에 밀집 해 있어 최근 도시의 난개발, 주택 정책, 급격한 경제 발전에 하나 둘 재개발되고 있다. 그에 따라 인도 경제 성장의 기반을 떠받쳐 온 많은 수의 달리트 주민들이 퇴거로 점점 도시의 가장자리로 내몰려 갔다. 이렇게 인도 최대의 경제 및 문화 산업의 도시 뭄바이의 발전은 달리트 계급의 열악한 거주 환경과 노동 조건, 사회적 차별과 분리와 연관된 것이었다.
도시의 문제는 예술가 집안의 삼대, 파틸의 할아버지-아버지-그리고 작가 본인에게로 이어지는 개인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전통적으로 달리트는 천하다 여겨졌던 기술과 예술 분야에 종사했다. 아몰 K 파틸의 할아버지 구나지 파틸(Gunaji Patil)은 중상류 계급이 주로 사용하는 공식 언어인 영어나 힌디어가 아닌 마하라슈트라 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지역 언어인 마라티(Marathi)로 쓰인 인도의 장르시이자, 사회비판적 성격을 지닌 포와다(Powada)를 노래하는 가수인 사히르(sahir)였다. 마하라슈트라 주 서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 란자(Lanja) 출신이었던 그는 마을과 마을을 오가며 영국 식민 통치와 계급 제도의 폭력성과 불평등을 비판하고,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인도 초대 법무부 장관이자 카스트 제도 철폐를 헌법화한 B. R. 암베드카르(Bhimrao Ramji Ambedkar, 1891-1956)의 업적을 찬양하는 노래를 소리 내는 음유 시인이었다.2)
할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란자에서 뭄바이로 올라와서 청소부로 일하기 시작했다. 하수구와 변소 청소, 오물 및 시체 처리, 도축, 무두질, 세탁, 이발과 같은 일들은 힌두교적 관점에서는 불경스럽고 불결한 일로 최하층 카스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 키산 파틸(Kisan Patil)도 청소부 일을 하면서, 여가 시간에는 뭄바이 남부 빈민가에서 극단을 창설하여 정치적인 내용의 연극을 올리는 극작가로 활동했다.3)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한 카스트 남성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관한 실험적인 희곡이었다. 그러나 달리트 출신이었던 키산의 작품은 영어가 아닌 마라티 어로 쓰여졌기에 뭄바이의 연극계 엘리트 커뮤니티에서도 주목받지 못했다. 할아버지와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기억하고 세대를 넘나들어 그들의 유산과 대화하면서, 뭄바이 차울의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한 아몰 K 파틸의 작업은 2010년대부터 도시의 가장 어둡고, 낮고, 작은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공명해 왔다.
예컨대 2018년 개인전 《Sweep-Walking》(Metta Contemporary, Mumbai, India)에서 그는 아버지의 친구인 아닐 투에베카르(Anil Tuebhekar)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허리에 라디오를 차고 스케이트를 타면서 빗자루로 거리를 청소하는 노동자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세상의 소리를 차단하는 것은 그가 취하는 일종의 항의적 제스처였다. ‘더럽고 냄새 나는 존재’인 청소 노동자는 식당이나 술집, 버스나 호텔에 물을 마시러 가는 것조차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일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4) 현재 카스트 제도는 법적으로 철폐되었지만, 말 그대로 ‘만질 수 없는’ 불가촉천민 달리트가 냄새 때문에 ‘만지고 싶지 않은’ 청소부의 존재로 여전히 이어질 때 카스트 계급제도와 자본주의 계급제도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이 된다. 투에베카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가는 1년 반 동안 본인이 실제로 청소부가 되어, 먼지 나고 냄새 나는 버려진 물건을 수집하는 과정과 그 결과물을 비디오와 파운드 오브제 설치로 선보였다.
해당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으로 제15회 카셀 도큐멘타(2022)에서 선보였던 퍼포먼스 〈Sweep Walkers〉(2022)는 풍부한 연극적, 음악적 요소로 채워져 있다. 퍼포머들은 청소용 브러시를 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전시 공간을 돌아다녔고, 라디오에서는 파틸의 할아버지가 쓴 가사를 활용해 카스트 제도에 대한 격렬한 비판의 가사를 지은 포와다 음악가 얄가르 산스크리틱(Yalgaar Sanskrutik)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렇게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감각적 요소는 할아버지의 음악과 아버지의 연극적 퍼포먼스, 그리고 시각 예술가인 본인에게 세대에서 세대로, 사회의 부조리에 목소리를 내는 한 개인에서 공동의 삶으로 연결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마라티 어에는 ‘상위 카스트는 지식이 있고, 농부는 곡식이 있지만, 불가촉천민은 노래가 있다’는 속담이 있다. 달리트 사회에서 예술은 단순히 정서의 표현이 아니라, 집단적 기억과 저항의 매체였던 것이다.
제15회 광주비엔날레의 첫 번째 갤러리에 자리한 〈그 도시에 초대 받은 이 누구인가? Who is invited to the City?〉(2024) 또한 영상 작품의 소리와 어둑어둑한 전시장 한복판에 매달린 전구의 빛의 감각, 벽에 누운 드로잉과 사람처럼 서 있는 청동 조각의 연극적 결합으로 도시의 거주지 정치와 계급에 따른 사회적 분리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다[도판]. 작품 제목은 계급화 된 노동에 따라 도시의 특정한 장소들에 누가 접근할 수 있고 누가 저지되는지를 직설적인 목소리로 묻는다. 동시에 작고 은은한 전구의 빛, 그리고 벽에 기댄 채 도열해 있는 긴 막대 형태의 질박한 청동 조각들이 “거칠고 정중하며, 달콤하고 조용한” 그의 작품을 구성한다.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나레이션의 일부는 통렬하고 격정적인 문체의 저항시로 알려진 인도의 시인 남데오 다살(Namdeo Dhasal, 1949-2014)의 시를 발췌한 것이다. 다살은 카스트 제도와 자본주의적 착취를 배격하자는 취지로 1970년대에 인도 뭄바이에서 벌어진 사회 운동 ‘달리트 팬더(Dalit Panthers)’ 운동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작가는 다살의 목소리를 빌려 꿈과 열망을 좇아 뭄바이에 정착한 가난한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을 시적 언어로 풀어낸다. 상상했던 도시에 도착한지 오래지 않아 그들은 “꽃도 없고 / 잎도 / 나무도 / 새도 없”는 현실을 마주했을 것이다. 이들은 도시에 초대 받지 못한 존재, 소외된 어둠이기에.
영상 작업은 나레이션과 함께 어두운 풀숲에서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작은 무리의 불빛들로 보여주지만, 어둠 속에서 걷는 이들은 그럼에도 식별되지 않는다. 말없이 고요하게 걷기만 하는 영상 속 존재들은 쳐다보기만 해도 부정해지는 불가시천민(Thurumbar)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전시장 곳곳에 손과 발을 달고 있는 소박한 청동 조각이 손과 발을 만지는 것도 부정한 불가촉천민을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거칠고 작은 손과 발이 첨단에 각각 붙은 채 길게 뻗어나가는 청동 조각의 형태는, 마치 이들이 걸어 온 발걸음과 실천 행위의 궤적을 그린 것만 같다. 하나의 손에서 다른 손으로. 그 다음 손에서 또다른 손으로.
은은한 전구 빛과 순간 번뜩이는 영상의 플래시, 자연의 은은한 소리와 힘 있는 시인의 목소리는 아몰 K 파틸의 작업에서 저항으로서의 감각이다. 진동을 만들어 내는 소리와 빛 에너지는 일종의 변혁의 역동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벽에 도열한 작은 청동 조각들처럼 하나의 손에서 또 다른 손으로 이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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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예린(1995- ) yaerinpark.baguette@gmail.com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 수료. 수원시립미술관 및 광주비엔날레재단에서 근무하였으며, 《제11회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2023, 아마도예술공간)에 기획자로 참여하였고, 《레테》(2023, 서교예술실험센터)와 《매끄러운 세계와 골칫거리들》(트라이보울, 2024)을 공동기획하였다.
1) 아몰 K 파틸, 인도 뭄바이 출생. 작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amolkpatil/?hl=ko
2) 포와다는 17세기 후반 달리트 공동체에서 발생한 시 장르로, 인도 독립 이전에는 영국 식민 통치 저항, 민족 운동 등의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민중 음악이었다. Kusum Tripathi, “Powada: Marathi poetry of valour,” PORWARD Press,
https://www.forwardpress.in/2016/02/powada-marathi-poetry-of-valour/ (2024.11.24. 최초검색).
3) 아몰 K 파틸의 이름에 삽입된 ‘K’는 아버지의 이름 키산(Kisan)의 이름을 딴 것이다. Parjna Desai, “Amol Patil,” FRIEZE, https://www.frieze.com/article/amol-patil (2024.11.25. 최초검색).
4) Kerstin Winking, “Interview with Amol K Patil: ‘About Sweep Walking’,” December 2015,
https://kwinking.com/2015/12/01/amol-k-patil-interview-kerstin-winking-stedelijk-museum-amsterdam-mumbai-collaborations/ (2024.11.26. 최초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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