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전시 참여작가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으로 하여금 작가의 작품 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2024 9.7 - 12.1
폐허, 잔해, 기억 : 데니즈 악타시Deniz Aktaş의 도시 풍경
이수
풍경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잠시 튀르키예 Türkiye 이야기를 하자. 도시와 유적들, 폐허에 관한 짧은 이야기가 될 터인데, 물론 이들이 튀르키예에서만 특별한 존재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를 건너뛰고서 오늘날의 튀르키예에 대해 말하기란 쉽지 않다. 튀르키예의 두 도시 이스탄불과 디야르바키르의 폐허를 그려내는 작가 데니즈 악타시(Deniz Aktaş, b.1987)(1)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라면 더욱 그러하다.
튀르키예, 정식 명칭 튀르키예 공화국은 서아시아의 아나톨리아반도와 동남유럽 발칸반도 동트라키아에 걸쳐 흑해, 지중해와 맞닿은 국가다. 튀르키예는 유럽과 아시아의 연결점이라는 지정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좌표를 점유한다. 그 때문에 오랜 시간 많은 민족과 국가가 이 땅을 거쳐 갔다. 사람들은 자리 잡기 위해 싸웠고, 서로 섞이었으며, 때론 빼앗겨 떠났다. 기원전 1200년경에는 그리스인들이 살았다. 기원전 6세기에 페르시아 제국에 정복되었고 기원전 334년에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가 진출했다. 기원후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이곳에 비잔틴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세웠다. 콘스탄티노폴리스가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되기까지 17번의 공방전이 있었다. 11세기에는 셀주크 왕조의 셀주크 튀르크인들이, 1243년엔 이슬람 계열 왕조 룸 술탄국이 우세했다. 1453년 동로마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이스탄불이 됐다.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 지역 대부분을 통치하며 6세기 가까이 전성기를 누렸다. 세월이 흘러 1878년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의 존속을 위협하였을 때,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영국에 협력한 대가로 발칸 북부 영토를 빼앗겨야 했다. 제국은 영국과 러시아 양측의 압력 아래 세계 1차 대전에 참전, 패배한다. 1918년 승전국들은 오스만 제국을 완전히 해체하려 들기에 이른다. 이에 맞선 무스타파 케말과 봉기군은 튀르키예대국민회의에서 항전을 외쳤고 마침내 앙카라를 새 수도 삼아 땅의 이름이 ‘튀르키예 공화국’임을 천명했다.
격변의 역사를 거친 튀르키예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보유한 국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튀르키예 땅에 뒤얽힌 시간은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로 남았다. 인터넷 등지에서 작은 화제였던 튀르키예의 한 건축물은 보기 좋게 퇴적된 지층처럼 각기 다른 시대의 유산을 머금고 있다. 건물의 최하단부는 로마 제국 양식으로 지어졌다. 그 위에 차례로 비잔틴 양식, 오스만 제국 양식, 튀르키예 현대 양식의 층이 쌓여 한 채의 건물을 이룬다. “말 그대로 역사 위에 서 있는” 이 건물처럼, 여러 양식의 혼재야말로 튀르키예 풍경의 정체성인 것이다. 언덕을 따라 늘어선 무너진 성벽과 각기 다른 종교의 사원, 성과 기둥들은 땅을 스쳐 간 사람들이 치열하게 남긴 삶의 흔적이다.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모두의 울림》(2024) 본전시 2관 ‘부딪침 소리’에 걸린 회화 다섯 점의 작가 데니즈 악타시의 고향 ‘디야르바키르 Diyarbakır’ 역시 로마 제국 시절 콘스탄티우스 2세가 쌓은 성벽이 구시가지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유적지다. 작가의 작업 거점이기도 한 디야르바키르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 요지에 위치한 탓에 반복되는 침략에 시달렸으며 성벽의 주인이 수없이 바뀌었다. 그런 디야르바키르의 성벽이 만들어낸 마을의 모습은 독특하다. 부서진 벽의 한 면만이 덩그러니 남았는가 하면 잘려 나간 계단은 허공을 향해 뻗어 있다. 무너진 부분을 여러 차례 보수한 결과 보수부의 재료와 양식이 서로 맞지 않아 짜임새가 다른 천을 기워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기다란 벽 안쪽으로 주택과 신식 건축물이 성벽의 일부인 양 맞붙어 들어서 있다. 디야르바키르의 주민들은 성벽 앞 펼쳐진 잔디밭을 공원 삼아 하늘 아래 놓인 잔해 사이를 관광객과 함께 유유히 거닌다. 악타시가 지속적으로 ‘폐허’라는 주제에 천착하는 까닭은, 잔해와 폐허가 디야르바키르에서 나고 자란 그의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리라.
데니즈 악타시는 디야르바키르와 이스탄불, 파리를 오가며 디지털 콜라주 기법을 활용한 흑백 잉크 펜화를 그리는 작가다. 그는 인간이 떠난 도시의 잔해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풍경화에 구현해 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다만 악타시의 풍경화 속 폐허를 이루는 요소는 그의 고장에서 쉽게 연상되는 고성과 성벽이 아니라 현대 튀르키예의 건축 자재와 쓰레기들이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에 소개된 작품 <경계 지어진 Bounded>(2023)의 프레임 안에는 수풀이 우거진 들판 사이로 지붕 없이 일렬로 선 건축 구조물 두 채가 보인다. 구조물 안과 자재 사이에서 자라나 밖을 향해 지평선까지 뻗어나간 풀들은 건물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흐리고 땅과 하늘의 구분을 지워내 화면 전반에서 현실감을 걷어낸다. <남은 것들 Remains>(2023)의 4/5가량을 차지한 화제(畵題)는 물웅덩이다. 웅덩이 위로 낮은 건축물 두 채가 옅게 비친다. 곳곳에 뒹구는 벽돌과 쓰레기, 돋아난 잡초와 부러진 나뭇가지가 이곳을 깨끗하게 정비할 누군가가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2024년 발표한 두 점의 신작 <흩어짐 Scattered>과 <깨짐 Broken>은 풀밭에 흩어진 콘크리트 벽돌, 깨어진 수박을 다룬다. 마른 잡초 줄기와 자갈이 굴러다니는 맨바닥은 풀 한 포기까지 선명하다. 그 위 놓인 벽돌과 수박들은 인간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감지할 수 없는 가운데 ‘흩어지고’ ‘깨어진’ 자신을 내보일 뿐이다. 디야르바키르의 특산물인 수박과 현대 건축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콘크리트 벽돌이 나란히 방치된 광경은 무어라 정의 내리기 힘든 감정을 끌어낸다.
작품들을 전시장에서 처음 마주하노라면 이들이 흑백 사진이리라는 착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작품 바로 앞까지 다가가 주의 깊게 화면을 응시한 뒤에야 액자 속 삼 센티미터 이내로 분절된 얇은 선들을 발견하고 작품이 사진이 아닌 드로잉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만큼 악타시의 회화는 치밀하고 섬세하다. 선들은 서로 포개어지거나 겹치는 일 없이 작가의 노련한 제어 아래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바람에 휩쓸리듯 한 방향으로 그어졌다. 그래서인지 화면에는 흑백 이미지의 짙은 명암이 만들어내곤 하는 무게감이 쉬이 침투하지 못한다. 노이즈처럼 분절된 선들은 분명 풍경을 재현하고 있지만 공간의 깊이까지 재현하려 들지 않는다. 악타시 작품의 기묘한 평평함은 <경계 지어진 Bounded>(2023)에서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작품 내 건축물들은 원근법에 맞추어 성실하게 화면을 구획 짓고 있으나 중경에 가서는 뒤엉켜 자란 풀숲 사이로 사라져 버린다. 건축물과 잡초를 묘사한 선들의 밀도가 완전히 동일해지자 둘의 위계는 사라지고 회색빛 대기 속에서 융합된다. 마치 안개가 걷히는 순간 함께 흩어져버리기라도 할 듯이. 펜을 잡은 손으로 재구축한 풍경이 빚어내는 불합리한 평면성은 악타시의 풍경화를 현실의 재현보단 기억 혹은 꿈속 순간의 일부를 표현한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폐허, 그러나 정작 인간은 어렴풋한 흔적으로만 감지되는 악타시의 공허한 풍경화들은 W. G 제발트(W. G. Sebald, 1944-2001)가 소설 『토성의 고리 Die Ringe des Saturn』(1995)에서 그려낸 서퍽 지역을 연상시킨다. 소설의 화자는 1992년 8월 개인적인 작업을 끝낸 뒤 그의 안에 번져가는 공허감에서 벗어나고자 영국 동부 도시 노리치 아래로 뻗은 빈 지역 서퍽주로 여행을 떠난다. 그는 여행지에서 광활한 하늘 아래 방치된 채 식물에 덮여 썩어가는 건물 잔해들을 마주한다. 그것들은 세계대전이 끝나자 손쓸 수 없이 버려진 건축물들이었다. 공허와 우울을 떨쳐내고자 떠난 여행은 도리어 화자에게 역사의 부조리와 몰락만을 보여주었고, 전율의 시간을 보낸 화자는 일 년 뒤 온몸이 마비된 채로 노퍽 노리치의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토성의 고리』는 병실 침대에 누운 작중의 화자가 오직 기억을 통해 서퍽의 풍경을 다시 불러내어 머릿속으로 써 내려간 글을 후에 엮은 소설이다. 제발트 소설의 묘미인 출처를 알 수 없는 빛바랜 흑백 사진들이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정서인 우울과 쓸쓸함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폐허를 담은 흑백 사진과 화자의 일인칭 서술이 여행길을 따라 합쳐지며 화자 세대의 것이 아닌 기억, 즉 우리 세대가 겪지 않은 전쟁의 트라우마를 불러오고, 이 과정을 함께하는 독자는 역사의 폭력과 마주한 사후세대의 허구적 기억 앞에서 혼란해진다. 제발트가 소설 속 서퍽주에 구축한 아포칼립스적 폐허는 화자에 의해 재구성된 과거와 화자가 살아가는 현재, 즉 서로 맞물리지 않는 두 시간 축 사이에 작은 교차점을 여는 공간이다. 조각나버린 과거는 폐허 속에서 나의 것이 아닌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제발트는 잊혀선 안 될 비탄을 노래하기 위해 한 편의 우울한 꿈과 같은 풍경 안에서 스스로 길을 잃는다.
다시 튀르키예 이야기로 돌아온다. 악타시 풍경화의 주인공이자 그의 출신 국가 튀르키예는 도시 재개발로 인한 잡음에 시달리고 있다. 악타시의 또 다른 작업 거점이기도 한 도시 이스탄불은 과거 로마, 라틴,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던 튀르키예의 최대 도시로 한때 그리스인들에게 ‘이 폴리(Η πολή)’, 즉 ‘이 도시’로 불리었을 만큼 대도시 그 자체를 상징한다. 하기아 소피아 성당과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톱카프 궁전 등 동로마 제국과 오스만튀르크 시절의 유적으로 가득한 이곳은 1985년 구도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010년에는 구도심을 보수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된 과도한 난개발과 유적 파괴로 인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지위를 박탈당할 위기에까지 놓였다. 2002년 이슬람주의 정당 정의개발당이 집권한 이후 이스탄불은 빠르게 예전 모습을 잃고 있다. 본격적인 전 국가적 재개발의 시발점은 2011년 동부 도시에서 발생한 규모 7.3의 지진이었다. 정부는 오래된 건물과 도로 시설을 대규모 사상자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대대적인 보완을 예고했다. 계속되는 원주민 주거지 퇴거 조치와 과도한 재개발을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가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어도 갈등은 잦아들지 않는다. 2013년에는 이스탄불 탁심광장의 게지공원 재개발 반대에서 시작되었던 생태주의 시위가 이슬람주의 정의개발당의 보수성에 대한 반정부 시위로 확대되기도 했다. 자본과 권력이 결합한 재개발이 불러일으킨 혼란스러운 정세 가운데 정부는 노후한 집과 상가를 부수고 아파트와 호텔, 신식 시설을 짓는다. 한 여행객은 이제 디야르바키르는 너무도 빨리 변해, 잠시 방문하지 않은 사이 다른 고장과 같이 되어버린다고 말한다. 구글 스트리트뷰로 본 디야르바키르와 이스탄불의 교외 지역에는 최신식 아파트와 슬레이트 지붕, 돌로 쌓은 금 간 성벽과 매끈한 가로등 헤드가 즐비한 공원이 번갈아 나타났다.
오래된 유적의 고장에서 나고 자란 악타시는 건축 현장의 산업 쓰레기와 거주자가 떠난 재개발 지역의 집터, 길 한편에 쌓인 폐타이어나 바닥을 뒹구는 시멘트 벽돌을 계속해서 포착해 나간다. 감정이 절제된 필치로 옮겨낸 메마른 장소들. 퇴거 조치에 휘말린 누군가가 비워둔 집터, 건설이 중단되었거나 혹은 막 재건축이 시작되려는지도 모를 공터들은 명확한 단어로 고정되지 않고 모호한 채로 도시민들의 의식을 부유하는 우울이다. “파괴, 폐허, 잔해, 쓰레기는 자연스러운 과정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가 살고 일하는 튀르키예의 변하지 않는 운명이다.” 제발트가 인류의 정신에 남은 폭력의 상흔을 되불러내려 그의 것이 아닌 기억 속을 걸었다면, 악타시는 많은 것이 뒤바뀌게 될 도시 풍경 안을 헤매며 대기에 감도는 불안을 감지하고 수천 번의 선으로 묘사할 폐허를 찾아 나선다. 오늘날 만들어질 폐허의 풍경은 고향의 성벽과 다른 모습을 띠고 있을 테지만 여전히 모두 같은 땅에 있다.
데니즈 악타시의 흑백 회화 다섯 점이 깨끗이 칠된 흰 벽 면 위에 걸렸다. 돌로 성벽을 쌓듯 고되게 그어졌을 회화는 묻는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 이전의 모든 것은 파괴되어야만 하는지.
ㅡㅡㅡㅡㅡ
- 이수(1998) eatpraylove214@hanmail.net
역사에 이미지가 기록되는 방식, 그리고 기록되지 못한 이미지들에 관심이 있다. 미술사와 문헌정보학을 공부했고 시·도립미술관 미술 아카이브 구축과 전시 기획에 수차례 참여했다. 국내외 미술 아카이브의 운영 및 활용 사례를 연구하며 글을 쓴다.
1)데니즈 악타시(Deniz Aktaş, b 1987)는 튀르키예 디야르바키르에서 태어났다. 마르마라 대학교(Marmara University)에서 학사 학위를, 이스탄불 예디테페 대학(Yeditepe University)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스탄불과 파리를 거점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2016년 파리 시테 레지던시 프로그램(the Cité Internationale des Arts artist residency program)에 참여했다. 2018년 artSumer에서 개인전 《인간 없는 땅 No Man’s Land》을 개최했다. (작가 SNS @aktasdenis)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모두의 울림》(2024) 본전시 2관 “부딪침 소리”에 전시된 데니즈 악타시의 작품들.
데니즈 악타시(Deniz Aktaş), <경계 지어진 Bounded>, 2023, 종이에 잉크, 106x140cm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