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호 leeseonho@nate.com
故이영욱 소방관의 가족 이연숙님
출처: 소방청TV
지난 9월 뉴스를 접했다. 소방청과 민간에서 공동기획한 행사를 취재한 내용이었다. 행사는 디지털 기술로 순직 소방관 세 분의 모습을 복원해낸 액자사진을 명절맞이 깜짝 선물로 유족과 그 동료들에게 건네며 반응을 살피고 위로하는 기획이었다. 참신하고 감동적인 기획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 오늘날 인공지능(AI)을 위시한 기술의 사회적 ‘쓰임’이 어디에 있는지 묻고 있는 것 같았다. 기술의 쓸모는 이른바 딥페이크 성범죄가 아닌 문화공공성에 가닿아야 한다고 무언의 항변을 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보훈’에 관심이 많다. 보훈은 사회적 헌신에 대한 존중과 예우이고 그것을 기리는 일이다. 순직 소방관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일평생 헌신하고 그로 인해 희생된 분들에 대한 보훈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일 것이다. 문화기관도 마찬가지다. 박물관은 국민국가의 산물이다. 그 사회 공동체가 구축한 정신문화의 근간을 드러내고 퍼뜨린다. 문화기관이라면, 그러한 뉴스와 같은 사례들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전시와 교육 등 문화영역으로 적극 수용해야 한다. 사회문화적 의미에 대해 시민들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적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공동체를 돌아보고 통합하는데 복무해야 한다.
발터 벤야민은 1939년 기술발전과 예술작품의 관계를‘아우라의 상실’로 설명한 바 있다. 순직 소방관 유족에게 액자사진의 ‘진위’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진품과 복제품의 구분이 더는 의미가 없다고 했다. 법 제도와 첨예한 생명윤리 논란이 거듭되는 인공지능(AI) 기술에 일상의 대부분 잠식당하고 있다. 여전한 기술복제시대의 문화공공성과 그 책무에 대해 전국 문화기관들에 감히 제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