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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와 비평][GB24] (20) 안나 콘웨이 Anna Conway

어윤지

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 《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참여작가들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2024 9.7 – 12.1


안나 콘웨이(Anna Conway): 낯섦과 그 이후


어윤지

요동치는 거센 파도를 배경으로 두 개의 거대한 스피커가 우뚝 서 있다. 스피커 사이에는 운동을 멈춘 뉴턴의 요람(Newton's cradle)이 있으며, 그 앞으로 충전 중인 노트북의 형상이 보인다. 눈에 익은 사물들이 배치되어 있지만 어두운 폭풍과 높은 파도의 묘사는 어딘가 불길한 느낌을 준다. 안나 콘웨이(1973-)의 〈알렉사, 시리, 풍경 Alexa, Siri, Landscape〉(2018)은 일상의 조각이 맥락 없이 결합한 초현실적인 풍경으로 관람객을 이끄는 작업이다[도판 1].1) 위 작업은 아마존(Amazon)사의 알렉사(Alexa), 애플(Apple)의 시리(Siri)라는 인공지능을 작품의 표제어로 사용함으로써 인공지능의 발달에 따른 인간 생활의 변화를 암시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스피커와 노트북 등 일상의 물건이 상상의 공간과 결합하면서 독특한 화면을 자아낸다. 이와 더불어 작가는 캔버스의 상단에 오래된 유화에서 볼 법한 금색의 액자 프레임을 추가함으로써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표시하여 우리가 보는 화면이 상상의 그림에 불가하다는 인상을 줌과 동시에, 그러한 상상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작가 본인이 상상한 시각적 환상 속으로 관람객을 초대한다.

이렇듯 콘웨이는 사실적으로 그린 유화를 통해 개인적 기억에 기반한 세계를 캔버스에 건설하는 작가이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들 역시 우리에게 친숙한 사물이나 건축물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그에 어울리지 않는 다른 사물을 병치하거나 왜곡된 형태로 대상을 표현한 초현실적인 화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콘웨이의 작업에서는 두 번째 전시장의 주제인 ‘부딪침 소리(Feedback Effect)’를 직관적으로 드러내듯, 작업 곳곳에서 소리를 내는 기기, 사물들이 관찰된다. 〈알렉사, 시리, 풍경〉과 유사하게 〈하니와 Haniwa〉(2017)에서도 카세트플레이어, 일본 전통 테라코타 기법의 의식용 가면인 하니와(haniwa) 등 서로 연관관계가 없는 기물들이 한 화면 안에 나타난다[도판 2].2) 작업의 배경은 넓은 갤러리처럼 보이는데, 좌대 위의 하니와나 초록색 의자,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공간이 텅 비어있어 누군가의 이해할 수 없는 꿈속에 와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콘웨이는 작업에 사람의 모습을 드물게 등장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하니와〉에서는 바닥 광택 기계를 쥐고 있는 남성이 화면의 가장 어두운 부분, 오른쪽 끝에 서 있다. 이를 통해 파편적이나마 남성이 갤러리 공간을 청소한 인물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으며, 기계의 전선이 하니와와 카세트플레이어를 가로질러 화면의 반대쪽으로 이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작가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 사이의 긴장 또는 연결 등을 나타내고자 했음이 드러난다.

콘웨이는 자신의 작업이 개인적 기억과 역사로 점철된 마음의 심연에서 비롯한 것이므로, 자신의 그림이 타인의 상상 속에서 어떻게 해석되며 이해되었는지 피드백(feedback)을 받는 과정을 기대한다고 밝혔다.3) 따라서 작가는 관객에게 생경한 화면을 제시하면서 시각적 자극을 주는 한편, 그 속에서 관객들이 익숙한 사물을 찾고 무의식을 유영하듯 자유로운 해석과 새로운 서사를 창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질적 요소들의 결합을 통해 관람객과의 소통을 도모하는 콘웨이의 시도는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1896-1966)이 대극 간의 모순이 해소될 수 있는 소통의 구조인 연통관(Les Vases Communicants)으로 ‘초현실’ 개념을 설명한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4) 〈알렉사, 시리, 풍경〉은 익숙한 사물인 스피커를 폭풍이 치는 바다에 낯설게 배치함으로써 새로운 연결을 암시하며, 〈하니와〉는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일본의 하니와 가면과 카세트플레이어가 무의식적 흐름 속에서 결합한 작업이다. 이처럼 인간과 비인간, 공간과 소리의 은밀하고 비가시적인 연결을 시도한 콘웨이의 작업은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소통을 도모한 전통적 초현실주의자들의 작업과 미술사적 궤를 같이한다.

의식과 무의식, 외부와 내부 세계의 관계를 탐구한 또 다른 작업으로 〈방주 Ark〉(2021)를 들 수 있다[도판 3]. 살펴봤듯이 콘웨이 작업의 제목은 회화의 재현 대상을 꽤 정확하게 지시하는데, 화면의 중앙에는 기다란 선박 모양을 한 방주가 자리한다. 방주의 내부를 자세히 보면 수조로 분리된 여러 개의 작은 세계들이 눈에 띈다. 마치 순차적으로 깨야만 하는 게임의 맵(map)처럼 서로 다른 자연환경에서 각자의 문명을 건설한 듯한 이 소우주들은 방주 안에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이어져 있다. 방주 안에 소우주를 건설한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낯선 것이지만, 일렬로 늘어선 모아이 석상이나 피라미드 등 우리에게 익숙한 형상 또한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계속 서술했듯이 콘웨이가 배치한 화면의 요소들은 서로 연관이 없고 같이 구성된 맥락 또한 없다. 한 인터뷰에서 콘웨이는 작품 속 서사를 사전에 계획하지 않은 채 작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소설에 예상치 못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처럼 미스터리한 존재들이 화면에 나타나는 결과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5)

콘웨이의 작업이 정교한 구상회화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나, 이처럼 사전 연구를 진행하거나 서사를 계획하지 않은 채 생각나는 대로 화면을 만들어가는 작업 방식은 무의식 가운데 화필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오토마티슴(Automatisme) 기법과 유사하다. 오토마티슴이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작업 방식이라는 해석을 그대로 적용해본다면, 이 방주 안의 세계는 콘웨이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위로 뚫린 창밖에서 내리치는 벼락은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 갑자기 요동치게 된 정신세계를 암시하는 장치로 해석할만하다. 한편 방주가 위치한 영역에서 멀어질수록 화면의 원경에는 무엇인가 짓다 만 듯한 두 개의 기둥과 사막과 같이 개방된 풍경이 자리한다. 세밀하게 묘사된 방주와 달리 배경은 평온하면서도 어딘가 심심한 느낌을 준다. 이 작업을 구성하는 화면 전체가 만약 세계를 건설하는 샌드박스 게임(Sandbox game)-자유롭게 창작하는 게임-의 일부라면, 방주에서 멀어질수록 아직 사용자(user)가 탐험해보지 못했거나 미처 기물을 제작하지 못한 상태인 가상의 공간이다. 따라서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작가와 이를 지켜보는 관람객에게 방주는 생경함과 기시감이 뒤섞인 꿈속 풍경인 반면, 방주를 벗어나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공간은 미처 꿈인지 현실인지 파악하기도 힘든, 잠재된 의식 속 미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작인 〈지시: 회전 Instructions: Revolve〉(2023)과 〈지시: 노트르담 Instructions: Notre Dame〉(2024)에서부터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등장한 동물의 존재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도판 4, 5]. 작가는 고전적인 원근법을 이용하여 공간의 기본 틀을 구축하면서 역사적으로 익숙한 장소를 배경으로 택했다.6) 전자의 작업에서는 이집트 룩소르 ‘왕가의 계곡’에 위치한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례 신전’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유적을 뒤로 하고 CGI용 녹색의 크로마키 스크린을 씌운 원탁 위에 스무 마리의 양들이 둥글게 서 있으며, 양옆으론 계단 위에 올라간 양치기 개 두 마리가 관찰된다. 왼쪽 모서리 하단에는 이러한 화면을 연출하는 듯한 인물이 녹색 스크린을 두르고 앉아있으며, 그 대각선으로 있는 촬영용 지미집(Jimmy jib) 카메라는 실제와 연출된 모습 사이의 긴장을 더욱 팽팽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 작업을 어린 콘웨이의 상상에서처럼 동물이 여기저기 등장하는 장면이라고 설명했지만, 각 개체 간의 관계와 동물이 은유하는 상징체계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7) 분명한 점은 오로지 작가가 비교적 익숙한 역사 유적을 배경으로 의미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을 병치함으로써 ‘낯설게 하기’의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듬해 제작한 〈지시: 노트르담〉에서 콘웨이는 노트르담 성당의 내부를 사진처럼 정교하게 묘사했다. 이러한 콘웨이의 치밀한 묘사 덕분에 그의 작업에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지고 이질적 요소들이 동등한 층위에서 서로 어우러지는 듯하다. 한편 상호 간의 비교를 통해 〈지시: 회전〉과 〈지시: 노트르담〉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한 내면의 메시지가 서서히 드러난다. 콘웨이는 노트르담 성당에서 조련사들이 큰 새를 날리기 위해 준비하는 장면을 상상한 결과, 크로마키 천 위를 기어 다니는 조련사들, 올빼미, 매사냥용 후드(falconry hoods)를 쓴 새, 이를 수직으로 촬영하는 카메라를 화폭에 그려냈다. 그리고 두 작업 모두 성스럽다고 여겨지는 장례 신전이나 성당 내부에 비인간 존재가 틈입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작가에 따르면, 이러한 그림들은 동물이 인간의 공간을 탐험하도록 허용되거나, 인간의 공간이 다시 야생화되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즉 콘웨이의 ‘지시’ 시리즈는 인간과 비인간의 소통 혹은 연결을 낯선 우연으로 이루어진 초현실의 이미지로 구현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비행 Flight〉(2024)에서는 이전에 등장한 이미지인 초록색 크로마키 화면, 점보 스크린, 후드를 쓴 새들, 초록색 의상을 입은 조련사, 영화 촬영용 카메라가 다시 나타난다[도판 6]. 콘웨이의 회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배경인 어둡고 파도치는 바다 사이로 영화의 세트장처럼 낯설게 등장한, 이 용도를 알 수 없는 구조물은 작가가 지속해서 말하고자 한 ‘자연으로의 복귀(rewilding)’를 상상하며 구축한 것이다. 이러한 정보를 기반으로 ‘지시’ 시리즈와 함께 〈비행〉을 영화 촬영 중인 세트장을 묘사한 작업이라고 상정해본다면, 조련사들은 크로마키 천과 같은 초록색의 의상을 입고 있어 영화의 후반 작업(post-production)이 끝난 최종 화면에서 그들의 존재는 사라질 것이다. 즉 〈지시: 회전〉에서는 양과 양치기 개, 〈지시: 노트르담〉과 〈비행〉에서는 활공하는 새만이 남게 된다. 작가가 하트셉수트 장제전, 노트르담 성당, 빙하가 있는 바다를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콘웨이는 그저 비인간 존재의 서식지를 본래의 상태로 되돌리고픈 내면의 충동을 동물과 이질적인 요소들이 얽힌 화면으로 풀어냈다고 할 수 있다.

콘웨이의 작업 속 비인간과 인간, 의식과 무의식, 내면과 외부 세계는 서로 대립 항을 이루면서도 작가의 상상력으로 한데 어우러진다. 그리고 작가는 상상으로 만들어 낸 장면(scene)의 관찰자로 관람객을 초대함으로써 그들에 의해 작품 속 서사가 해석되고 다시 창작되기를 기대한다. 생경함과 기시감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 관계를 만들고 낯설게 하기의 전략을 통해 미스터리한 느낌과 시각적 충격을 자아내는 한편, 작가와 관람객의 자유로운 소통 역시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생경함과 기시감’을 느낀 이후 펼쳐질 이야기까지 제시하지는 않는다. 알렉사와 시리의 등장 이후 삶의 풍경은 어떻게 될지, 새들이 문명의 공간이나 자연으로 되돌아가면 어떻게 될지 결말을 알 수 없는 긴장감만 암시할 뿐이다. 그 이후(post)를 해석하고 상상하는 일은 우리의 몫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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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윤지 (1997-)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미술 연구 온라인 플랫폼 담당 학예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국공립미술관의 소장품 조사 및 아카이브 연구 사업에 참여했다. 《호모-아르스》(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2), 《원본 없는 판타지》(온수공간, 2023), 《상상된 공공성: 싱가포르 퍼포먼스 아트 아카이브 연구》(2024) 등을 공동으로 기획한 바 있다.



1) 안나 콘웨이는 1973년 미국 콜로라도 듀랑고에서 태어나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이다. 콘웨이는 쿠퍼 유니언 대학(Cooper Union)에서 미술 학사를, 컬럼비아 대학(Columbia University)에서 미술 석사를 취득했으며, 구겐하임 펠로우십(Guggenheim Fellowships Award)과 두 번의 폴락-크래스너 재단 지원금(Pollock-Krasner Awards), 미국 예술 문예 아카데미상(American Academy of Arts and Letters Award)을 수상했다. 콘웨이의 작업은 뉴욕 현대 미술관 PS1(MOMA PS1), 미국 예술 문예 아카데미, 캠퍼 현대 미술관(Kemper Museum of Contemporary Art), 올버니 대학 미술관(University Art Museum at Albany), 프랄린 미술관(Fralin Museum of Art), 이탈리아 콜레찌오네 마라모띠(Collezione Maramotti)에서 전시된 바 있다. 

2) Kate Sutton, “Anna Conway,” Artforum, 

3) 안나 콘웨이와의 이메일 (2024년 11월 28일).

4) 이은주, 「초현실주의 미술에 나타난 초현실의 특성 연구-이질적 요소 간의 소통 구조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7), 45.

5) Bob Nickas, “Artist Anna Conway Paints What Is in the Shadows,” CULTURED, July 21, 2022, 

6)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가이드북』, 2024, 65; 광주비엔날레에서 〈지시: 회전 Instructions: Revolve〉(2023)은 2024년 작으로 표기되었으나, 작가에 따르면 2023년도에 제작되었다. 안나 콘웨이와의 이메일 (2024년 11월 28일).

7) 이어지는 작업에 대한 작가의 설명은 안나 콘웨이 인스타그램 게시글 참고
    @annaconwaystudio / https://www.anna-conway.com



Alexa, Siri, Landscape, 2018, Oil on panel, 76.2 x 62cm. ⓒ Anna Conway.



Ark, 2021, Oil on panel, 115 x 173cm. ⓒ Anna Conway



제15회 광주비엔날레에 전시된 〈지시: 회전〉과 〈지시: 노트르담〉



Flight, 2024, Oil on Canvas, 92 x 122 cm. ⓒ Anna Conway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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