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 《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참여작가들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2024 9.7 – 12.1
케빈 비즐리: 면화의 기억, 재료의 서사
윤다혜
뛰고, 뒤집고, 면화 한 뭉치를 따야 하지,
뛰고, 뒤집고, 하루에 한 뭉치를 따야 하지.
나와 내 아내는 면화 한 뭉치를 딸 수 있지,
나와 내 아내는 하루에 한 뭉치를 딸 수 있지.
하느님, 면화 한 뭉치를 딴다니,
하느님, 하루에 한 뭉치라니.1)
이 흑인 영가(靈歌)에서 언급되는 '면화 한 뭉치'는 약 226kg에 달하는 1베일의 면화를 뜻한다. 물론 사람이 하루에 그만한 양의 면화를 수확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노래는 미국 남부의 면화 농장이 계속 확장되고 면화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흑인 노예들이 항상 최대의 효율로 목화를 수확하도록 강요받았음을 암시한다. 18세기 초부터 유럽 제국주의 열강은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며 남부에 대규모 면화 농장을 조성했고, 플랜테이션 농업에 필요한 방대한 노동력을 충족하기 위해 600만 명 이상의 흑인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이후 19세기에는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면화 생산량이 증가하여 면화 산업이 미국 경제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이면에는 흑인 노예 전체의 4분의 3 이상이 면화 농장에서 착취당하는 비극적인 현실이 존재했다.
순백의 면화에 서려 있는 수 세기 동안의 핏빛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하게 들리면서도, 그 익숙함으로 인해 인식적으로 무뎌진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예제도가 폐지된 현재에도 미국 남부의 목화지대(cotton belt)는 면화 재배의 중심지로 남아 있어 남부라는 지정학적 장소성과 면화 산업 간의 연결고리는 여전히 견고하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케빈 비즐리(Kevin Beasley, 1985-)는 면화와 같은 주변의 일상적 사물에 얽힌 개인적 기억을 강조하고 그것을 미국 사회의 권력 구조 및 인종적 문제와 교차시킴으로써 세대 간의 공유된 기억과 역사를 일깨운다.2)
조각, 사운드,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케빈 비즐리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가족사, 그리고 고향인 버지니아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더 넓은 문화적 맥락을 작품에 녹여낸다. 그의 고향인 버지니아는 작품의 주요 재료인 목화솜의 원산지이자 그가 목화솜을 소재로 삼게 된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 2011년 여름, 비즐리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버지니아주 발렌타인으로 향하던 중 가족이 대대로 소유하고 있던 농장에서 목화밭을 발견한다. 이 목화밭은 미국 남부에서 흑인으로 성장했던 그에게 가혹한 억압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여 강렬한 분노와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그 역사와 자신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느낀 비즐리는 목화솜을 비롯한 주변 사물과 자신 사이의 연결 지점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목화솜이나 의복처럼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사물을 재료로 삼아 이를 추상적 형태로 조합한다. 이러한 방식은 재료와 연결된 작가 개인의 서사를 전달하는 동시에 그 재료가 함축하는 역사적·산업적 배경과 정치적·경제적 구조를 떠올리게 하는 연상 작용을 유도한다.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의 2전시관 중앙에 자리한 세 개의 육중한 설치물과 벽면에 걸린 두 개의 조각은 <현장 모듈 Field Module>(2024)이라는 제목을 공유한다(도 1, 2). 온통 솜으로 뒤덮여있는 듯한 다섯 작품을 면밀히 관찰해 보아도 ‘현장 모듈’이라는 용어는 쉽게 와닿지 않는다. 언뜻 모호하게 느껴지는 이 제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들이 모두 가공되지 않은 면화를 주재료로 삼고 있다는 점과 함께, 비즐리가 면화 생산 과정과 그에 사용되는 도구에도 주목한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그는 남부의 목화밭에서 봐왔던 ‘면화 모듈(cotton module)’에 6년간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면화 모듈은 모듈 빌더(module builder)가 목화밭을 지나가며 꼬투리를 수확하고 이를 압축해 만든 직육면체 혹은 원기둥 형태의 솜뭉치이다. 면화를 잔뜩 뭉쳐 거대하게 쌓아 올린 형상의 <현장 모듈 (지오드) Field Module (Geode)>, <현장 모듈 사다리꼴 (수확 정맥) Field Module (Harvest Veins)>, <현장 모듈 IH (흑인과 블루스) Field Module (Black and Blues)>는 수확된 목화밭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듈의 모습과 닮아있다.
비즐리의 작업은 과거와 현재, 나타남과 사라짐 같은 겉보기에는 상충하는 개념들이 흐릿해지는 지점을 고찰하며, 이러한 접근 방식은 <현장 모듈> 연작에서도 발견된다.3) 면화 모듈은 자동화된 면화 농업의 산물로, 수확량과 가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된 산업적 발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 모듈> 연작은 각기 조금씩 다른 외형과 색채를 지니고 있으며 작가의 수작업으로 재료의 배치와 형태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일률적이고 규격화된 모듈과 차이를 보인다. 이를 통해 비즐리는 전통적인 수작업과 현대화된 농업 기계라는 두 대립적인 방식을 연결하고 충돌시킨다. 예컨대, 농업 기계가 발명되기 전, 잘 열린 목화 꼬투리를 일일이 손으로 수확하던 노동 집약적 작업과 오늘날의 기계화된 수확 방식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작품 안에서 작가의 수작업과 현대 농업이 창출한 모듈 방식 사이에 긴장감이 형성되며, 전통적 수확에서 현대화된 과정에 이르기까지 면화 농업의 역사적 파노라마가 재구성된다.
<현장 모듈> 연작 중 중앙의 세 설치물을 차례로 살펴보자면, <현장 모듈 (지오드)>는 면화의 본래 색에 가까운 흰색을 띠는 반면에 붉게 염색된 <현장 모듈 사다리꼴 (수확 정맥)>은 부제가 암시하듯 면화 수확에 수반되는 노동의 고통을 연상시킨다. <현장 모듈 IH (흑인과 블루스)>는 검은 바탕에 하얀 줄을 더해 흑인의 정체성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색 조합을 보여준다. 여기서 ‘IH’는 모듈 빌더를 포함한 각종 농기계를 판매하는 기업 ‘Case IH’를 연상시키는 한편, ‘흑인과 블루스’는 가수 알 재로(Al Jarreau, 1940-2017)의 노래이자, 목화지대였던 미시시피 유역에서 발원한 블루스의 역사를 지시한다. 이처럼 비즐리는 제목에도 섬세한 변주를 주어 무관해 보이는 요소를 결합하고 서로 다른 세대를 소환하는 시도를 통해, 과거와 현재, 산업화와 문화를 오가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내러티브를 형성한다.
벽면에 설치된 <현장 모듈 (신시사이저)Ⅰ Field Module (Synthesizer)Ⅰ>과 <현장 모듈 (신시사이저)Ⅱ Field Module (Synthesizer)Ⅱ>는 비즐리가 ‘평판(slab)’이라 명명한 조각 유형에 속한다. 이 조각들은 목화솜과 각종 옷가지가 겹겹이 쌓이고 엉긴 그대로 굳어져, 마치 현대 문화의 소비재들이 박제된 두꺼운 퇴적층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작품 캡션에 따르면 이 작품에는 면화 외에도 작가가 직접 수집한 하우스 드레스, 티셔츠, 신발끈, 농구 유니폼, 이발용 앞치마, 키친타월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물건들이 사용되었다. 형형색색의 솜뭉치 틈새로 드러난 하우스 드레스는 비즐리의 조모가 입었던 옷과 비슷한 무늬의 선명하고 화려한 패턴을 지닌 것으로, 작가의 조모가 대대로 물려받은 버지니아의 가족 농장과 목화밭, 그리고 미국 남부의 친밀한 가정 공간으로 관람자를 초대하며 작품에 개인적인 맥락을 부여한다.
비즐리는 이에 그치지 않고 관람자가 평판 조각 속 재료들을 자유롭게 탐색하고 서로 연관 지으면서 서사를 보다 넓은 사회적 맥락으로 확장하도록 의도했다. 흑인 노예들의 손을 거친 솜과 면직물이 의복으로 만들어지던 시대부터 합성 섬유로 옷을 대량 생산하는 현대 의류 산업까지 아우르는 재료 배치는 각 사물에 내재한 사회적 배경, 다시 말해 노예제도와 인종차별, 현대사회의 경제 체제를 잇는 연결고리로 볼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 정치철학자 알렉스 캘리니코스(Alex Callinicos, 1950-)가 “신세계 플랜테이션 농장의 노예 사용은 자본주의가 세계 체제로 처음 등장하는 데서 중심 구실을 했다. …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인종차별은 자본주의가 세계적 수준에서 가장 유력한 생산양식으로 발전하던 결정적 시기에 개발됐다"고 주장한 바 있듯, 자본주의의 궤적과 깊이 얽혀 있는 인종차별의 교묘한 뿌리는 합리적 경제 논리라는 미명 아래 과거 목화밭에서부터 그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4)
한편 두 개의 평판 조각에는 전자 신호로 음색을 생성하는 전자 악기인 ‘신시사이저’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비즐리는 사운드 아트를 비롯해 이를 활용한 퍼포먼스 작업을 활발히 펼치며 소리를 매개로 한 예술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 광주 비엔날레 출품작에 사운드 작품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신시사이저’나 ‘흑인과 블루스’와 같은 부제를 통해 작품에 음악적 요소를 간접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그는 소리의 진동에서 느껴지는 촉각적 감각을 포착해 소리를 물질적 재료와 동등한 대상으로 다룬다. 일례로, 키네틱 조각 및 사운드 작업 <풍경 속: 면화 조면기 모터>(2012-2018)에서 비즐리는 1940년부터 1973년까지 앨라배마주 메이플스빌에서 사용되었던 조면기를 레디메이드로 전시하고 기계의 모터 소리를 변형하여 사운드적 요소를 더했다. 그만의 물질적 결합 방식이 반영된 사운드 작업은 조각 작품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 역사, 인종, 노동 등과 연관된 기호들로 층층이 쌓인 역사의 퇴적물을 드러냈다.
마치 신시사이저가 전자 신호를 하나씩 쌓아 하나의 곡을 완성하듯, 그리고 면화 수확의 고됨을 노래하던 흑인 영가의 구절과 웅웅대는 소음을 내며 돌아가는 조면기가 빛바랜 면화의 유산을 다시금 펼쳐 보이듯, 비즐리는 자신의 삶이 담긴 재료들을 한데 조합해 재료 간의 연결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의미 범위를 확장하고 미국 남부의 역사를 형상화한다. 이는 곧 망각과 억압에 저항하는 행위이자, 기억의 단단한 존재감을 드러내어 침묵을 깨뜨리는 발화다. 이로써 그의 작품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축적한 아카이브일 뿐만 아니라 재료들이 품은 다양한 층위의 역사적 서사를 기록하고 재조명하는 매개체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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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다혜(1998-) dahyeyoon39@gmail.com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수료. 이화여자대학교 블록메이트(미술사학과 X 서양화전공 교류모임) 비평 매칭 참여(2024)
1) 자크 앙크틸, 『목화의 역사: 흰 황금의 대서사』, 최내경 역 (가람기획, 2007), 294-295.
2) 케빈 비즐리 Kevin Beasley 미국 버지니아 태생으로 현재 뉴욕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작가 SNS: @kevinmbeasley
3) “Kevin Beasley On How Specters Shape His Art”, Adrastus Collection, https://adrastuscollection.org/kevin-beasley-specters-shape-art/ (2024년 11월 25일 검색).
4) 알렉스 캘리니코스, 『인종차별과 자본주의』, 차승일 역 (책갈피, 2020), 29-45.
케빈 비즐리, <현장 모듈 (지오드) Field Module (Geode)>, 2024,
폴리우레탄 수지, 미가공된 버지니아산 목화, 티셔츠, 탄소 섬유, 탄소 강, 스테인리스 강,
296.5×187.9×121.6 cm,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사진 제공: 윤다혜)
케빈 비즐리, <현장 모듈 (신시사이저)Ⅰ Field Module (Synthesizer)Ⅰ>, 2024,
폴리우레탄수지, 변형된 하우스드레스, 미가공된 버지니아산 목화, 변형된 티셔츠, 콘페티티셔츠, 레오파드무늬 플라스틱가방, 신발끈, 변형된 농구유니폼, 콘페티 스웨트팬츠, 콘페티 이발용앞치마, 키친타월, 콘페티포장백, 알루미늄, 폴리에틸렌,
212.7×243.8×5 cm,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사진 제공: 윤다혜)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