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 《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참여작가들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2024 9.7 – 12.1
성 티우: 글로벌 자본주의의 구조를 탐색하기
조소연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Pansori, a soundscape of the 21st Century≫(2024)(이하 ‘광주비엔날레’) 본전시 2전시실에는 성 티우(Sung Tieu, 베트남, 1987-)의 <시스템의 공허 System's Void>(2024)가 자리 잡고 있다. 티우는 독일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로, 1992년 5살의 나이로 아버지를 따라 독일로 이주했다. 티우는 “아버지는 동독에 남아 있던 제철소의 계약직 노동자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이미 독일에 계셨다.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를 따라갔지만, 독일에 거주할 법적인 이유가 없었다. 몇 달마다 체류 비자를 갱신해야 했고, 복지를 요구할 수도 없었으며 일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비밀리에 현금을 받는 일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라고 자신의 이주에 관해 차가운 기억을 회고했다.1)
어린 나이부터 이민국의 관료적이고 딱딱한 시스템을 마주한 티우는 작업에서도 이주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풀어낸다. 티우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함부르크 미술대학(HFBK University of Fine Arts Hamburg)과 런던 골드스미스(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하고, 2014년에 첫 번째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의 첫 개인전 ≪줘 이 오이 Troi Oi≫의 제목은 베트남어로 놀람과 아쉬움을 표현하는 감탄사 ‘줘 이 오이(Trời ơi)’를 영어식 표기로 바꾼 것이다. 베트남 교포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대변하는 감탄사를 통해 티우는 이들의 생활환경을 솔직하게 제시했다. 1990년 독일이 재통일되고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독일 정부는 합법적 재정 지원 수단을 확보한 사람들만이 거주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그간 다양한 고용 관계 아래에서 노동해 온 베트남인들은 비교적 본인의 생계 능력을 증명하기 쉬운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그중에서도 정교한 독일어 능력을 요구하지 않고 비교적 적은 초기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플로리스트가 인기를 끌었다.
플로리스트들은 주로 지하철 역사에 가게를 차렸는데, ≪줘 이 오이 Troi Oi≫는 이들이 베트남 이민자를 표하는 중요한 정체성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티우는 실제로 베를린 동물원(Zoologischer Garten) 역사 안에 위치한 꽃집에서 워크숍을 진행하고, 한정판 스웨터를 판매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정판 스웨터가 판매되면 꽃집 주인은 일정 비율의 매출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는 대중적인 장소에 위치한 꽃집의 유통 시스템을 활용하여 꽃집을 경제적 안정의 장소로 구상하는 행위였다. 스웨터는 스웨덴과 베트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패션 디자이너 누 즈엉(Nhu Duong)과 협력한 결과물이다. 특히 의류라는 매체는 독일 파견 베트남 노동자들의 시작이 주로 청바지나 스웨터를 만드는 방직 공장에서 일했다는 점에서 이주와 디아스포라 형성의 발단이며, 독일 재통일 이후 베트남 소유 기업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잘 피력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2) 즉 티우는 의류를 통해 베트남 이주민들의 역사적 시작점을 시각화하고, 이를 지역 커뮤니티와 소통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이렇듯 예술가로서 활동을 시작할 초반 티우는 이민자로서의 경험을 풀어내는 데 집중하였다. 작가는 이주노동자 2세로서 베트남 디아스포라 커뮤니티의 생생한 증언을 수집하고, 이들의 실제 생활환경이 드러내는 한계를 분석하고 시각적으로 제시하였으며, 그러한 문제의식을 사회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러한 사유를 통해 작가는 독일 내 베트남 이주민의 역사가 동시대 사회의 계급주의 그리고 패권적 글로벌 자본주의의 영향 하에 있음을 주장하게 되었다. 본인의 경험으로 말미암은 개인의 문제에서 점차 사회 구조적인, 거시적인 시각을 담지하게 된 것이다.
현재 조각, 드로잉, 텍스트, 사운드,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며 활동하는 티우는 이러한 거시적인 시각에서 관료주의와 법률적 체계가 제국주의적 폭력을 행사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구체적으로 티우의 작업은 정보 통제와 감시 및 검열이 우리의 집단의식을 지배하는 방식을 살피며 이에 내재한 복잡한 권력관계를 다룬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된 티우의 작업 <시스템의 공허>는 그중에서도 미국의 수압파쇄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도판 1] 수압파쇄법은 고압의 액체를 직접 심층에 주입하여 파쇄하고 매립된 에너지를 채광하는 방법으로, 지하수 오염이나 지진을 야기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 채굴 방법이다. 전시실에 설치된 거대한 검정 파이프는 파쇄 과정에 투입되는 고압의 액체를 표현한 사운드를 방출하고 있다. 이 파이프들은 사막처럼 보이는 모래 언덕에 파묻혀 있는데, 이는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문제가 에너지 산업과 이윤의 논리에 따라 파묻혀 버린 상황을 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뒤쪽에 설치된 영상에서는 알 수 없는 숫자들의 조합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는 마치 조용하지만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관료주의적 인증의 과정처럼 보이기도, 파쇄 과정에서 누락되고 은닉되어 버린 정보의 부유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티우는 이처럼 글로벌 자본주의 구조에서 그들의 논리에 따라 누락되고 잊힌 정보를 되살린다. 최근 티우는 표준화와 측정법, 정량화라는 주제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데 2023년 밀라노에서 열린 ≪The Ruling≫과 2024년 베를린에서 열린 ≪Perfect Standard≫가 그 대표적인 예시다. 티우는 이 전시에서 1897년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를 식민지로 점령하던 당시 기존의 측량법을 미터법으로 바꾼 일화를 언급한다. 당시 측정 단위의 변화는 토지 측량, 세금 측정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임금이나 노동 등 인도차이나 문화권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 구체적으로, 식민지 이전의 토지 측정 기준인 디엔시치(điền xích) 또는 트엉도닷(thước đo đất, 토지 측정용 자)는 프랑스에 의해 0.47미터에서 0.40미터로 반올림되었다. 이를 통해 사실상 프랑스에는 14.89%의 흑자가 발생했다고 티우는 언급한다. 그리고 미터법은 인도차이나의 삶을 하노이에 있든 파리에 있든 모든 유럽의 장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으로, 프랑스의 행정가가 더 쉽고 편하게 인도차이나를 착취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었다고 주장한다.3)
이에 티우는 ≪The Ruling≫에서 전통적인 베트남 측정 단위를 되살려 123개의 나무 자를 제작하고 방을 가로지르도록 배치했다. 또한 작가는 프랑스 기준에 따라 변경되었던 0.40미터의 자 166개를 추가로 생산했는데 여기에는 프랑스의 식민지 통치에 관한 다양한 통계 자료, 예를 들면 베트남 노동자들의 임금 자료 인도차이나의 경제적 지표 등을 새겨 넣었다. 마지막으로 바닥에는 알코올을 주입한 빵 여러 개가 놓여 있는데 0.07미터만큼 주입하여 측량법의 변화를 중요한 식량인 빵으로 암시하였다. 이어서 ≪Perfect Standard≫에서 작가는 2023년 전시에 사용된 자를 다시 배치하였으며, 전시장 가운데에는 오와 열을 맞춰 배치된 초록색 연료통과 마찬가지로 자로 잰 듯 반듯하게 배치된 검은색의 타일들을 질서 있게 정렬하여 측량과 표준화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인 생각을 전달하기도 했다.
티우는 줘 이 오이(TROI OI), 이스트 런던 케이블(East London Cable) 등 여러 예술 집단에 소속되어 있으며, 그중 여러 제도적 서사 속에서 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물결을 주목하는 아시아 아트 액티비즘(Asia Art Activism, AAA)에도 속해 있다. AAA는 ‘아시아’, ‘예술’, ‘액티비즘’ 세 가지를 주제로 연구하는 다양한 예술가, 큐레이터, 연구자들이 소통하는 단체로 ‘아시아’를 논쟁의 여지가 있는 패러다임으로 여기며 이주자 및 거주민 커뮤니티의 다양한 서사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단체다. 이처럼 티우의 활동은 다양한 방식의 연대를 도모하며 꾸준히 기존의 관행을 타파하고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제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구조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그의 시선을 쌓아 나가고 있기에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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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소연 (1996-), chelsea8672@gmail.com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사학과 수료. 이강소작업실, 대안공간 루프,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에서 코디네이터 및 연구용역으로 근무했다. 여성주의와 사회참여적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호모 아르스 Homo-Ars≫(2022,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원본 없는 판타지 Fantasy without Original≫(2023, 온수공간) 등을 공동 기획했다.
2) 이지민, 「독일의 베트남 동시대 미술로 본 베트남 디아스포라 미술의 확장 가능성: 성 티우(Sung Tieu)의 전략을 중심으로┘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23), 41.
3) 성 티우의 웹사이트를 참고. https://sungtieu.com/projects/perfect-standard#1. 또한 성 티우의 인스타그램은 다음과 같다. @sungtieu
성 티우, <시스템의 공허>, 2024, 5채널 사운드 및 조각 설치, 모래, 가변 크기, 60분 연속재생.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