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규의 집중인터뷰[10/28] 국내 최초 '미술자료 박물관' 연 김달진 소장
관리자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어떤 작가가 언제 어디서 전시를 했고 어떤 미술관이 언제부터, 어떻게 운영됐는지 그에게 물으면 단박 답이 나온다고 합니다. 화가도 평론가도 큐레이터도 아니지만 미술계 사람이라면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요 바로 미술계에서 걸어 다니는 미술사전으로 불리는 '김달진 미술연구소' 김달진 소장입니다. 이번에는 그가 30여년 동안 모아온 미술 자료들을 정리해서 국내 최초로 미술자료 박물관을 열었다고 하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김달진 소장을 초대해 그동안 그가 미술 자료를 모아온 이유와 미술자료 박물관에 대한 자세한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김달진 미술연구소' 김달진 소장입니다. 김달진 소장은 1955년 충북 옥천 출생으로 93년 서울산업대 금속공예과를 졸업했고 99년 중앙대에서 문화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미술 월간지인 '전시계' 기자를 거쳐 15년 동안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서 근무했고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을 역임했습니다. 2001년 김달진 미술연구소를 만들어 소장을 맡고 있으며 전시안내 잡지인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이번달 국내 최초의 미술자료 박물관인 김달진 미술자료 박물관을 개관해 관장을 맡고 있습니다. 월간미술대상 특별상 등을 수상했으며 문화관광부 박물관 및 미술관 정책자문위원회위원과 문예진흥기금사업평가단 심의위원 등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바로보는 한국의 현대미술'이 있습니다.
박인규 : 김달진 미술연구소 소장이셨는데 지난주인가요, 박물관 개관하셨죠, 정확하게 언제였죠?
김달진 : 지난 10월 21일 수요일 개관했습니다.
박인규 : 박물관을 개관하셔서 마음이 뿌듯하실 것 같은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프레시안
김달진 : 제가 꿈꾸던 공간을 만들어서 박물관을 개관해서 기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박물관 하면 머리로 생각하는 절대적인 전시공간의 크기가 있는데 저희가 공간이 부족해서 오시는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맞게 돼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박인규 : 공간이 얼마나 부족하기에
김달진 : 지하에 마련돼 있고 60평입니다. 거기에는 전시관, 수장고, 학예실, 사무공간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상당히 공간이 좁습니다.
박인규 : 200평방제곱미터인데 웬만한 집 규모로 박물관이라고 하기는 작군요.
미술박물관은 잘 알겠는데 미술자료 박물관이에요. 어떤 형태의 박물관입니까?
김달진 : 박물관 하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유물이나 문화재를 전시하는 것들이 박물관인데, 저희 박물관은 1종, 2종이 있는데 저희는 2종 중박물관에 해당하고요. 저희가 갖고 있는 건 미술자료... 단행본이나 화집, 팜플렛, 인쇄물 중심으로 유품 이런 것들을 갖고 있는 자료 중심 박물관입니다.
박인규 : 우리가 미술 하면 회화, 조각, 공예 이런 거 생각하는데 작품이 아니라 전시회 도록, 잡지, 책 그런 것들을 전시하는 거군요.
지금까지 국내에 그런 형태의 박물관이 없었습니까?
김달진 : 없는 것으로 알고 있고 대개 자료실이라고 해서 미술관의 한 부서로서 운영됐지만 자료 자체로 박물관을 만든 건 없었던 사례 같습니다.
박인규 : 그동안 모아오신 자료가 한 30년 이상 모아오셨다는데 전부다 하면 얼마나 됩니까?
김달진 : 처음 중고등학교 때 미술자료 수집부터 해서 지금 한 36년간 모았고요. 작년 2월 평창동에서 통의동으로 이사하면서 차로 했는데 한 이틀간 이사했고요. 그때 그 분량하고 지금 충북 옥천에 있는 4.5톤 차 한 대 분량 해서 토탈 이번에 계상을 해보니 18톤 정도 분량입니다.
박인규 : 36년간 모아온 자료가 18톤이다. 그런데 현재 박물관 크기로는 전체 다 전시가 안 되기 때문에 일부는 고향인 옥천에 가 있다. 36년 동안 18톤이나 되는 자료를 보관하고 유지하려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책이니까 종이인데 좀이 슬기도 하고 습기도 찰 텐데 어떻게 관리하세요?
김달진 : 보존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지만 공간 자체가 지하라서 습기가 많이 차고 있고, 지난 여름에는 비가 오면 건물이 낡아서 비가 흘러내려서 플라스틱 그릇을 갖다 놓고 받치기도 하고, 제습기를 돌리고 있습니다.
박인규 : 또 하나 문제는, 구슬이 많아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는데 자료가 18톤이라고 해도 체계적으로 분류해 놓지 않으면 활용 못하는 거 아닙니까. 분류가 잘 돼 있나요
김달진 : 소중한 것들, 일종의 소장품이죠. 소장품은 별도로 관리하면서 진열장에 전시하고 있고요. 일반적으로 미술 도서관이나 자료실처럼 저희가 단행본이나 도록, 화집, 한국십진분류법 KDC에 의해서 도서관 장서처럼 등록해 놨습니다. 등록되지 않는 비도서도 저희의 분류방식대로 돼 있어서 어느 정도
박인규 : 지난주에 박물관을 개관하고 전시회를 하고 계신데, 이건 일반인들에 공개하겠다는 의미 아닙니까. 박물관을 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십니까?
김달진 : 일반적으로 미술자료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저 말고도 많이 있습니다. 자료수집이라는 게 개인 취향에 따라서 자기가 감상하고 만족을 위해서 개인소장을 하고 있지만 저는 자료 자체를 공유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개하겠다는 차원에서 시작해서 저희가 작년 5월 미술자료실로 일반 공개를 했고요. 그 중에서 중요한 자료를 더 집중적으로 관리, 검토, 연구하겠다는 의미에서 별도의 박물관을 시작한 겁니다.
박인규 : 일반 공개는 작년에 시작하셨고 지난주 정식 박물관으로 개관하신 거고, 개관 즈음해서 나름대로 기획전시회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김달진 : 저희가 이번에 개관전을 준비한 것이 한국미술정기간행물1921년부터 2008년까지 87년간을 돌아보는 전시입니다. 미술정기간행물을 한 6가지 섹션을 구별해서 일반적인 미술종합지, 또 하나는 디자인이나 건축, 서예, 사진처럼 한 장르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전문잡지. 또 하나는 미술의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삼성미술관 리움이나 광주시립미술관처럼 기관에서 나오는 기관지, 주로 뉴스레터가 되겠지요. 그리고 미술단체에서 자기네들의 주장이나 사주를 위해서 만들었던 미술단체 동인지. 또 하나는 학회에서 본격적으로 논문을 게재한 학술지, 또 하나는 도록... 정기간행물.. 6개의 섹션으로 구별해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미술과 관련된 모든 정기간행물을 다 볼 수 있다는 거네요. 1921년부터 지금까지
김달진 : 저희가 목록 작성을 해서 보니 330종이 정리됐고 실질적으로 기기서는 잡지의 부침이 심해서 창간호가 폐간호가 된 잡지도 많이 나왔고. 어떤 경우는 자료에는 잡지 이름이 나오는데 실물을 볼 수 없었던 것도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창간호 중심으로 전시는 100여 점 이상 전시되고 있습니다.
박인규 : 1921년부터 현재까지 미술 관련 모든 정기간행물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 자료만은 국내 어딜 가도 볼 수 없다. 자랑하실 만한 자료가 있을 것 같은데요.
김달진 : 꼭 우리만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주관했던 조선미술전람회 도록 2회, 1회가 1921년에 열렸습니다. 그때 그것하고
박인규 : 그게 이른바 선전이라는 거죠? 전신이...
김달진 : 네. 선전 도록이 있고, 또 덕수궁 진열 일본미술품 도록이라고 해서 80가지 나온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저희가 국회도서관이나 한국학연구소 이런 쪽에 알아보니 전질을 갖고 있는 곳이 드물고 저희가 그 중에서 3집, 1936년 발행된 가장 빠른 3집이 이번에 공개됐습니다.
박인규 : 조선왕실이 갖고 있던 미술품들을 조선총독부가 전시했군요.
지금까지 일주일 아직 안 됐습니다만, 관람객들 많이 오셨나요?
김달진 : 지난 주말 같은 경우 하루에 23명 정도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기간이 내년 1월 말까지기 때문에 전시기간이 충분하게 잡혀 있어서 급하게 오시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주로 어떤 분들이 오십니까?
김달진 : 미술에 깊이 관심있는 분들요. 미술이론가나 평론가, 현재 미술잡지 간행물을 만들고 계신 분, 어떤 경우는 미술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 다양한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아직 많은 분이 왔다 가신 건 아니지만, 와서 보신 분들은 어떤 말씀을 하고 가시던가요?
김달진 : 어떤 경우엔 잡지 이름만 알고 있었던 잡지인데 여기 와서 실물을 본다. 그런 것에 굉장히 관심있어 하시고. 또 전에 나왔던 잡지의 판형이라든지 표지디자인들이 달라졌던 미술자료, 정기간행물을 통해서 미술의 흐름을 한 번 되짚어보는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박인규 : 김달진 관장께서는 미술 관련 자료를 36년 동안 모아오셨다고 했는데 그럼 고등학교 때부터 같은데 어떻게 해서 모으시게 된 건가요?
김달진 : 실제로는 36년이 더 되고요. 중학교 때 처음 우표수집이나 담뱃갑, 이런 것들을 모았어요. 그러다 그 당시 주부생활이라든지 여상, 이런 여성잡지에서... 예를 들어 이달의 명화, 해서 그때는 지금처럼 그림이나 도록, 화집이 없었던 시절이죠. 그 그림을 한 장의 인쇄물을 통해서 그림수집이 아니라 자료수집을 시작했었고
박인규 : 어려서부터 수집벽이 있었군요
김달진 :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1972년도 지금 경복궁 안쪽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 근대미술 60년전이라는 대규모 기획전이 열렸습니다. 그 전시를 보면서 제가 그동안 미술자료 수집을 서양 명화만 모았는데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자료를 본격적으로 봐야 한다는 마음의 다짐, 각오가 생겨서 그때부터 36년이고, 그 이전부터 모아왔던 자료들이죠. 지금이야 많이 달라진 풍속이지만 옛날 청계천 7,8,9가 고서점이어서, 헌책방 다니면서 주로 발품팔아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 ⓒ프레시안
박인규 : 김관장님의 약력을 보니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5년 동안 자료담당을 하셨다던데, 거기서 계속 하시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을 미술관을 키웠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어떻게 나오시게 됐어요?
김달진 : 가슴아픈 것도 담겨 있는데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근무를 하고 덕수궁 근무를 시작하면서 그 당시에는 자료실이 없었고요. 그 당시는 국립현대미술관에 큐레이터라는 직제도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오광수 선생님이 전문위원으로 한 분 계시면서 모든 전시나 큐레이터 일을 하셨고. 그때 관장님이 전시장 하나를 비워서 전문위원실, 자료실이라는 간판을 붙여주신 거죠. 거기서부터 자료실을 시작했던 겁니다.
박인규 : 한 가지 궁금한 건 이런 식의 미술자료박물관, 전시관 이런 것들이 외국에도 잘 돼 있습니까?
김달진 : 외국은 저도 많은 걸 탐방하거나 가보지는 않았지만, 예를 들어 퐁피두센터나 미국의 게티미술관, 그런 곳들은 한 부서로서, 그것 자체가 지금 예를 들어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경우는 자료실 직원이 두 명 정도지만 외국의 사례를 보면 10여 명 이상 아주 조직적으로 운영하고 있죠.
박인규 : 박물관에서 미술 관련 자료들을 모으는 부서가 상당히 조직적으로 되고 있다. 우리나라 국립현대미술관에도 이런 자료들을 모아서 분류하는 데가 있지 않습니까?
김달진 : 저희가 작년에 연구보고서 프로젝트에 공동연구자로 참여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 실태조사를 제가 담당했고, 그래서 제가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서 각 도에 있는 미술관을 실제 가서 조사했는데, 전체적으로 예를 들어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곳도 1년에 많은 예산 중에서 전체 예산에서 자료수집, 구입비가 1% 미만입니다. 상당히 열악하죠. 근무인원은 국립현대미술관은 두 명이지만 다른 미술관들은 한 명, 아니면 아예 전담직원이 없어서 어느 미술관 같은 경우는 자원봉사자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으니까 굉장히 열악하죠.
박인규 : 미술자료 수집과 정리에 아직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김달진 미술자료 박물관이 갖고 있는 자료가 다른 미술박물관이나 화랑, 미술 관련 단체보다 낫다 장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달진 : 자료는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운영하는 한국미술기록보존소가 있지만 그곳은 접근성이 떨어져서 한 번 가는 건 실질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저희는 어쨌든 미술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인사동, 가장 사람들이 오기 좋은 인사동이 좋은 건 알지만 저희 여건이 부족해서 거기서 가까운 경복궁 근처에 마련해서 일단 접근성이 뛰어나서 좋다고 말씀드릴 수 있고요. 우리나라의 근현대 작가의 중요한 작가 280명의 개인파일이 있습니다. 이중섭이나 박수근, 김한기 같은 작가들의 파일을 꺼내면 신문보도나 잡지기사, 작품도판, 이미지 이런 것들을 갖고 있어서 한눈에 작가를 연구할 수 있는 기초자료가 되고. 우리 미술의 가장 최근 화두가 됐던 진위문제에서 기초자료가 될 수 있죠. 이런 것들이 다른 곳들과 차별화된 저희 자료박물관의 하나의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박인규 : 김달진 관장님에 대해서 걸어다니는 미술사전이다, 금요일마다 화랑가를 돌아다녔다고 해서 금요일의 사나이다, 이런 별명이 있다고 하는데, 혹시 자료수집을 하시면서 어려웠던 일,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있으십니까?
김달진 : 처음에 자료수집을 하러 인사동 화랑가를 다닐 때 처음에는 굉장히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매주 나타나서 무거운 쇼핑백을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거둬가느냐 생각했는데 그런 것들이 결국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그런 데에 제대로 정리가 돼 있었고. 또 청계천 고서점 쪽에 가면서 어느 여성잡지나 시사주간지에 나와 있는 나의 신작이라든지, 저는 그림 한 점이 필요해서 그걸 사려고 하면 매주 신간은 어렵고 과월호를 사게 되죠. 서점 주인한테 이걸 한 장 뜯어서 팔라고 하면 그걸 뜯어서 팔면 책이 버려지는데 뜯어서 팔 수 없다, 거절하시는 분도 있고. 한 장 뜯어서 10원 20원 주고 사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굉장히 추억에 많이 남아 있고. 때론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소중한 자료들을 고서점이나 자료를 찾다 보면 발견해서 입수했을 때 추억에 많이 남고, 소중한 자료였던 것 같습니다.
박인규 : 그야 말로 36년 동안 발품팔아서 모은 자료들인데 혹시 전시회라든가 박물관 가고 싶은 분들이 위치도 모를 것 같은데. 박물관 자료들을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홈페이지 같은 게 있습니까?
김달진 : www.daljin.com 저희 미술사이트가 미술 쪽에는 알려진 대로 하루 700에서 1000명이 들어오는 가장 콘텐츠가 풍부한 사이트입니다. 거기에 사전예약, 전화예약을 하시면 되고 일주일에 월수금 2시에서 6시까지 일반적으로 자료나 필요한 것을 열람하도록 공개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미리 예약해야 되는 거군요
김달진 : 박물관 전시는 전시기간 동안에는 볼 수 있고, 일반적으로 도서실 개념의 자료를 열람하려면 신청을 받아서 무료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전화번호는 어떻게 됩니까?
김달진 : 730-6216입니다.
박인규 : 김달진 미술연구소를 하시다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까지 만드셨는데, 그 외에 미술 관련해서 하시는 일이 또 있다고 들었습니다. 서울 아트가이드라는 잡지를 만드신다는데, 어떤 잡지입니까?
김달진 : 저희가 한 2001년 12월에 김달진 미술연구소가 개소했고 그 이듬해 2002년 1월에 서울아트가이드라는 미술 무가정보지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서울 중심으로 전국 400개 이상의 미술관, 화랑, 전시장의 한 달 소식을 담아내는 무가지입니다. 이런 것들은 매월 초 미술관 화랑을 통해서 무료로 배포되고 있고, 필요하신 분들은 우표값 15000원 내고 개인적으로 받아보고 있고. 서울 아트가이드를 발행하고 있고, 최근 들어서 아트맵이라고 해서 격월간으로
박인규 : 예술지도
김달진 : 네. 한 장 짜리 지도로 보여주는 서울 중심의 화랑 전시일정, 국문판, 영문판으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9월달에 daljinbook.com이라고 해서 좋은 전시를 하고 도록이나 화집들이 만들어졌던 미술관이나 화랑들이 그냥 창고에 쌓여있는 것들을 필요한 사람들이 구매할 수 있게 만들어서 미술자료를 소통시키는 중간역할을 하는 사이트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미술자료 수집부터 연구소, 박물관, 공연, 전시회 관련 잡지, 영역을 넓혀가고 계신데 궁금한 건, 그런 박물관을 유지하려면 상당한 자금이 들 텐데 돈 문제에서는 어려움이 없습니까?
김달진 : 상당히 많이 있죠. 그나마 서울아트가이드가 7년이 지나면서 자리를 많이 잡아가고 있고, 그걸 바탕으로 저희가 자료를 수집하고 있고. 또 최근 들어 저희가 많이 알려져 있어서 새로 나온 신간들은 서울아트가이드에서 소개하기 때문에 많이 기증본이 들어오고 있죠. 박물관 일을 하다 보니 오래된 걸 구입하게 된다든지 하면 망설여지죠. 1929년 나온 조선미술사 같은 책이 인터넷 사이트에 떴어요. 이걸 100만원 주고 사야 되느냐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100만원 주고 샀는데 1929년에 나온 초간본이죠. 상당히 소중한 자료라서, 원활하게 돈이 부족하니까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주춤하고 그런 점에서 안타까움이 많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정보화시대를 맞아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게 하려면 디지털화해서 데이터베이스화해야 되는데 이런 건 무한정 돈과 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정부 차원이나 관심이 많은 기업들에서 지원된다면 저희가 전부 다 무료로 하고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박인규 : 약간 다른 질문인데, 최근에 TV드라마도 나오면서 김홍도와 신윤복. 조선시대의 유명한 화가죠, 굉장히 관심들이 많은데 혹시 이 부분과 관련된 자료도 갖고 계십니까?
▲ ⓒ프레시안
김달진 : 저희는 우리나라 근현대 자료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은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풍속화가들이고 또 그 분들에 대해서는 교과서를 통해서라든지 많이 알려졌습니다. 최근 들어서 신윤복이 바람의화원에서 여자로 설정해서 소설로 쓰여지고, 드라마까지 연결되면서 거기에서 관심이 폭발됐던 것 같아요.
박인규 :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게 그건데, 신윤복이 여자냐 아니냐... 맞습니까? 근거 있는 겁니까?
김달진 : 저는 남자로 알고 있고요. 미술사가라든지 그런 분들도 다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단지 소설에 의해서 꾸며진 건데 일반적인 흥미,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그런데, 어쨌든 신윤복이 생몰년이 정확히 잘 안 알려진 면이 있지만 미술사 쪽에서는 정확하게 남성, 남자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인규 : 많은 부분이 안 알려져 있긴 하지만 신윤복은 남자임이 확실하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자. 이제 원하시던 박물관도 부족하지만 개관하셨고 아직 하실 일이 많을 것 같은데 혹시 못다하신 말씀 있으시면 정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달진 : 그동안 저는 해왔던 일이 미술자료 전문가로서 해왔던 일이 많은데요. 그동안 우리의 미술활동이나 이런 것들이 전시 위주, 눈에 보여지는 가시적인 것의 활동이 너무 넓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기초가 되는 인명사전이라든지 미술연표, 한 작가에 대한 연보, 이런 내면적인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연재도 하고 자료를 모아오고 있는 우리나라 현대작가 인명사전들, 거기에 담아내려고 하는 건 작고작가입니다. 이중섭, 김한기, 이들은 워낙 유명하고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개인 화집이나 자료가 많지만, 그래도 평생 화가라는 이름으로 살다가 타계하신 분들이 작고하는 동시에 묻혀지고 잊혀져버리는데 그런 것들을 인명사전을 만들어서 어느 정도 가이드 역할을 하면 더 관심있는 분들이 가이드 아니면 인명록을 근거로 해서 집중적인 연구를 해야지 현대미술에 대한 깊이도 넓어지고 범위도 확대되는 거겠죠. 또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어느 작가에 대한 정확한 조사에 의한 연보, 우리나라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미술연표, 이런 것들을 집중적으로 해서 단행본까지 만들어내려고 하는데 빨리 착수해서 좀 더 체계화된 걸 남겨야겠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박인규 : 왕성한 미술활동도 중요하지만 그걸 정리하고 체계화해서 일원화할 수 있는 작업들이 필요하다. 앞으로 김달진 미술자료박물관에서 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많은 활동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달진 : 많이 관심 가져주시고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김달진 미술자료 박물관'을 연 김달진 관장을 초대해 그가 36년간 동안 미술 자료를 모아온 이유와 미술자료 박물관에 대한 자세한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