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금박 장식이 인상적인 작가 서수영의 작업은 다양한 상징들로 이루어진 함축적인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작업은 몇 가지 특징적인 사물들을 통해 견인되고 있다. 그것은 궁궐과 소나무, 모란, 그리고 하늘을 나는 독수리와 매 같이 강한 상징성을 지닌 것들이다. 이들은 모두 전통적인 상징체계를 통해 해석해 볼 수 있다는 공통점들을 지니고 있다. 절대 권력과 신성, 욕망이나 소원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상징체계를 지지하는 것은 단연 금박에서 발현되는 독특한 분위기이다. 주지하듯이 황금은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자 절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태양을 황금의 인간이라 불렀으며, 서구에서는 황금은 태양을 상징하며 재생과 불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화면에 나타나는 금빛 휘황한 색채는 이러한 상징성과 일정부분 부합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궁궐 그림의 대표 격인 <일월오봉도>와 해와 달이 등장하고, 더하여 부귀영화를 상징하며 화왕(花王)으로 일컬어지는 모란이 등장하면 작가의 지향과 상징의 내용은 보다 여실해 진다. 작가는 분명 절대 권력의 지엄한 권위와 부귀영화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와 지향에 주목하고 있다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지향이 그러한 가치에 대한 긍정이나 추종인지, 혹은 혐오나 경계인지는 보는 이의 몫일 것이다. 작가의 작의(作意)는 그 몽롱하고 현란한 금빛의 아련함 속에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소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작가의 작업은 분명 전통 회화와의 일정한 연계를 지니고 있다. 작가가 이러한 정형화된 형상의 읽기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재해석을 통해 또 다른 의미를 제시하는 것은 흔히 말하는 전통과 현대의 접점 모색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작가의 의도는 전통적 형상의 답습을 통한 기능적 재현은 아닐 것이다. 화면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듯이 그것은 풍부한 회화적 요소와 조형적 배려를 전제로 하고 있다. 특히 기성의 이미지들을 복합적으로 차용하여 중첩시킴으로써 파생되는 새로운 의미의 전개가 바로 핵심일 것이다. 이는 작가가 단순한 전통적 이미지의 차용이라는 제한적이고 소극적인 단계를 넘어 그 속에 내재된 시간의 역사를 현대에 되살려 읽어 냄으로써 전혀 다른 메시지를 개진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일단 작가의 작업은 특별한 재료에서 비롯되는 독특한 표현을 전제로 하고 있다. 화면에는 휘황한 금박을 과감히 도입하고 일정한 입자를 지닌 석채를 활용하여 명징한 원색들을 현란하게 구사되고 있다. 특히 파쇄 된 금박의 조각들은 몇 개의 이미지들로 구성된 화면의 단순함을 극복함과 동시에 회화적 표현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빛을 반사하며 발광하는 금빛은 다분히 자극적인 것이다. 이러한 재료와 표현은 강한 장식적 경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차하면 경박하고 표피적인 현상에 함몰될 염려가 다분한 것일 뿐 아니라, 그 자체의 개성이 대단히 강한 것이기에 이를 순치시켜 작가의 의도에 여하히 순응케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작가가 거칠고 강한 개성을 지닌 석채를 통해 조형의 근간을 설정하고 제한적으로 금박을 도입하여 변화를 도모함은 바로 이러한 염려에 대한 조형적 배려로 읽혀진다.
매와 독수리, 그리고 모란과 같이 화면에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는 이미지들은 대단히 흥미롭다. 그것은 익히 익숙한 형상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만 예의 금박과 궁궐, 혹은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건축물 등과 연계되어 더욱 선명한 형상으로 각인되고 있다. 날카로운 부리와 강렬한 눈빛의 맹금류들은 당연히 공중을 지배하는 패왕의 권위를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는 어쩌면 화려하지만 한없이 침잠하는 그윽하고 은근하게 빛을 발하는 황금색을 통하여 이러한 권위의 시간성과 현재성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절대 권력의 권위를 상징하고 위엄과 신성을 드러내던 것들은 시간의 세례를 거치면서 지극한 침묵에 들고 있다. 권위는 현상이고 위엄은 한시적이다. 오늘이라는 현재의 시간 앞에 놓인 것은 절대 권력이나 신성의 상징으로서의 권위가 아니라 단순한 유물로서의 소재이자 대상일 따름이다. 그 속에서 부귀를 추종하고 영화를 갈구하는 인간의 속된 욕망은 황금빛이 그러하듯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이라는 서로 다른 가치 사이에서 작가는 과거를 회상하고 오늘의 세태를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작가의 작의는 그 금빛처럼 몽롱하고 은밀하기에 임의의 해석은 경솔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휘황한 금박의 찬란함이 단순히 장식적 취향에 머무르거나 기성의 읽기를 답습하지 않고 특유의 독특한 회화적 가공 과정을 거쳐 또 다른 메시지로 읽혀짐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해석 역시 어색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전통과 현대라는 상이한 가치의 접점에서 볼 때 작가의 작업은 그 미묘한 경계를 아우름을 자신의 개성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전통적인 조형관과 심미관, 감상체계 등은 원용하지만, 이를 보다 주관적인 해석을 통해 재가공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주관화의 과정은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점진적인 것이다.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작업들이 현대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동양회화 자체의 정체성 역시 회의되고 있는 현실에서 작가가 취하고 있는 절충적 단계는 어쩌면 안정적인 토대를 확보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묘사나 재현의 기교적인 것의 제약에서 벗어나 질료의 특성과 강한 조형적 효과를 추구하는 것은 작가 역시 현대라는 시공에 대한 일정한 이해를 반영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개성 강한 재료들의 충돌과 대비를 통해 전통 회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강렬한 표현 역시 이러한 시공 인식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작가의 무게 중심은 전통적인 것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더욱이 그것이 상징성 강한 기존의 텍스트를 원용하는 경우 이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개별적인 해석과 표현은 작가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바에 보다 구체적이고 육박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빛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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