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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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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속 현대미술전

  • 전시분류

    단체

  • 전시기간

    2013-02-20 ~ 2013-05-26

  • 참여작가

    곽인식, 권영우, 김봉태, 김환기, 서세옥, 하인두, 유영국, 이성자, 하종현, 한묵 등.

  • 전시 장소

    아람미술관

  • 유/무료

    유료

  • 문의처

    02.1577.7766

  • 홈페이지

    http://www.artgy.or.kr

  • 상세정보
  • 전시평론
  • 평점·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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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뷰어

교과서에 실린 회화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살펴보고 미술교육에서 현대미술사의 중요성을 재조명.




미술관에 들어온 미술교과서!

교과서 속 현대미술



- 전시명 : 교과서 속 현대미술

 - 기간 : 2월 20일(수) ~ 5월 26일(일) / 매주 월요일 휴관

 - 시간 : 10시 ~ 6시 / 매주 월요일 휴관

 - 장소 :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 주최 : 고양문화재단

 - 후원 : 고양시

 - 입장료 : 3,000원(20인 이상 단체 2,000원)

           * 장애우, 국가유공자 단체가격 적용 

           * 만2세 이하 및 65세 이상 무료

 - 문의 : www.artgy.or.kr / 031-960-0180  

 - 참여작가 : 45명

곽인식,권영우,길진섭,김기린,김기창,김환기,노동식,도상봉,류경채,문신,박병춘,박서보,박수근,박영선,백남준,변종하,변시지,서세옥,유영국,육근병,이규선,이성자,이우환,이응노,이이남,이인성,이재효,이준,이중섭,장우성,장욱진,전혁림,정광호,차창덕,최소영,최영림,하인두,하종현,한묵,윤형근,홍상식

 - 출품작 : 80여점



미술관에 들어온 미술교과서, 교과서 속 작품이 눈앞에!


- 구상미술, 추상미술, 다양한 재료와 매체를 활용한 작품 등 한국현대회화의 흐름 조명

- 박수근, 김환기, 장욱진, 유영국 등 한국 현대미술 대표주자들의 작품 집결


유별난 미술애호가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딱딱하다', '지루하다' 라고 한다. 사회생활에 바쁜 성인들 뿐만 아니라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정서가 풍부한 시기인 초·중·고 학생들 역시 미술을 부담스러워하기란 마찬가지다.

실제로, 학교 미술시간에 교과서에 등장하는 작품에 대해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교감하는 학생은 흔치 않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술 과목의 목표(일상생활과 산업에 필요한 조형예술과 기술에 대하여 일반적인 이해와 기초적인 기능을 얻어 생활을 명랑하고 여유 있게 영위할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길러 개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평화적이며 문화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자질을 기르는 것)와 의미를 달성하기란 결코 녹록치 않다.


이에 고양문화재단(이사장 최성 고양시장, 대표이사 안태경)은 미술을 보다 친근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미술교과서 속에 한 컷, 작은 사진으로 등장하는 작품들을 실물로 선보이는 <교과서 속 현대미술展>을 마련했다. 전시는 교과서 속에 등장하는 방대한 작품 중에서 한국 현대회화의 전반적인 흐름을 기준으로 삼아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와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Section 1. 자연을 통한 미술의 발견

1부 ‘자연을 통한 미술의 발견'에서는 자연으로부터 일상에 이르는 조형미의 표현을 살펴본다. 

사람들은 산과 강, 그리고 계절마다 바뀌는 나뭇잎과 꽃 등의 자연 물에서 영감을 얻어 단순히 형과 색을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창조적인 활동으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예술가는 조형미의 원천이 되는 자연미를 통하여 조형적 질서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이를 작품에 응용하여 창조적인 활동을 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풍경화, 인간에 대한 탐구에서 등장한 인물화, 일상적인 사물 표현의 정물화 등과 관련해, 서구 미술기법을 받아들여 한국 현대미술을 이끌기 시작한 1900년대 초반 생 작가 도상봉, 이인성, 박수근, 장욱진, 이중섭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Section 2. 조형요소로 만나는 미술

2부에서는 ‘조형요소로 만나는 미술’을 주제로 한 전시가 진행된다. 

우리는 자연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선, 색, 형태 등의 조형요소가 주는 느낌에서 새로운 질서를 발견하며 미적인 충족감을 갖기도 한다.

이는 인간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이상으로 내면의 미적 욕구와 창조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때문에 자연물의 형태나 색채를 변형시키고 추상화하여 표현하게 된 것이다.

점, 선, 면, 색, 형태와 같은 조형적 요소를 통해 한국 추상미술의 세계를 열었던 김환기, 유영국 등을 필두로 이성자, 한묵, 곽인식, 권영우, 서세옥, 하인두, 하종현, 김봉태 등 교과서 속에 등장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Section 3. 현대미술의 다양성

3부에서는 ‘현대미술의 다양성’에 대한 탐구가 이뤄진다. 

현대미술과 과거의 미술을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성 가운데 하나는 미술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의 결과로 미술 재료와 표현 매체가 무한히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일상용품의 등장과 더불어 영상재료와 매체의 탄생은 새로운 표현에 대한 가능성을 넓혀줄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의 아이디어를 담는 특별한 미술 문화 그 자체가 되어 가고 있다. 

나뭇잎, 솜, 빨대, 라면, 청바지, 철사 등 소소한 일상용품을 미술품으로 승화시킨 이재효, 정광효, 노동식, 홍상식, 박병춘, 최소영, 정광효의 작품과 영상매체를 이용한 육근병, 이이남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장욱진, 유영국, 이인성, 백남준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포함하여 교과서에서만 보던 작품이 생생하게 눈앞에서 펼쳐지는 <교과서 속 현대미술展>은 관객들이 미술의 매력을 한결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어린이집과 유치원 및 초·중·고 학생 단체관람에 대한 특별 혜택으로 어린이와 청소년 관객의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주요 작품 및 작가 소개


박수근 朴壽根 l 1914-1965 

1914년 강원도 양구 출생.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고 1932년 제 11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채화 ‘봄이 오다’를 출품하여 입선, 화단에 등장하였다. 8.15 광복 후 6.25전쟁 중 월남하여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다가 1952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특선으로 입상하였다. 1958년 이후 미국 월드하우스 화랑, 조선일보사 초대전, 마닐라 국제전 등 국내외 미술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1959년 제8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추천작가, 1962년 제11회 전시에서는 심사위원을 지냈다. 

작품경향은 회백색을 주로 하여 단조로우나 한국적 주제를 서민적 감각으로 다룬 점이 특색이다. 절구질하는 여인,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 길가의 행상들, 아기를 업은 소녀, 할아버지와 손자 그리고 김장철 마른 가지의 고목들 등 삶의 힘겨움을 탓하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의 무던한 마음을 그렸다. 박수근은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진 마음을 그려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예술관을 지니고 있다’라고 말하며, 이것은 곧 그의 예술의지가 되어 서민의 모습을 주관적 감정으로 파악한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철저한 평면화 작업을 통해 모든 개인의 감정에서 독립된 완전한 객체로서의 서민을 그리고 있다. 

대표작에 <아기를 업은 소녀>(1950년대), <빨래터>(1954), <나무>(1965) 등이 있다.



김환기 金煥基 l 1913-1974 

1913년 전남 신안군 기좌도(지금의 안좌도) 출생.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니시기시로 중학교(錦城中學校)를 나왔다. 이후 한국에 돌아왔다가 다시 일본으로 밀항하여 1933년 니혼대학(日本大學) 미술과에 입학하였다. 1936년 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아방가르드 연구소를 조직하는 한편 이과회와 자유전 등에 출품, 신미술(아르누보) 운동에 참여하였고, 8·15광복 후에는 신사실파를 조직,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하였다. 1965년 이후 미국에 정착하여 작품 활동을 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구체적인 이미지 대신 연속적인 사각 공간 속에 점묘를 배열하였으며, 한국 근대회화의 추상적 방향을 여는데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광복 이후부터 프랑스로 건너가기까지의 한국적 모티프 발견으로 일관했다고 할 수 있다. 1963년 뉴욕으로 떠난 이후에는 어려운 생활을 하며, 점,선,면으로 구성된 추상화 작업을 완성시켜 나갔다. 대표작으로 <어디에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론도>(1938), <피난열차>(1951) 등이 있다. 1970년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도상봉 都相鳳 l 1902-1977

1902년 함경남도 홍원에서 출생. 일본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서양학과를 졸업하였고, 광복 후 숙명여대 교수로 있으면서 국전 창설에 가담, 제1회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미협 이사장 등 미술 관련단체를 주도하면서 미술 행정가로서도 활동하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서양화가로서 고전적인 예술세계를 지키는데 충실하였으며, 도자기의 샘물 도천(陶泉)이라는 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의 백자를 사랑하여 백자나 라일락을 소재로 한 많은 정물화와 풍경화를 부드러운 필치로 묘사하였다. 정물화는 탄탄한 구성과 완벽한 형태, 여기에 조선백자를 중심으로 목가구 등을 배열해 격조 높은 화면을 완성한 작가라는 평을 얻었다. 예술원상, 국민훈장모란장, 문화예술상을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항아리와 국화>(1954) 등이 있다. 1970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길진섭 吉鎭燮 l 1907-1975

1907년 평안남도 평양 출생. 일본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서양화과에 재학하며 서화협회전람회와 조선미술전람회에 여러 차례 입선하였다. 1932년에 졸업 한 후 서울에서 활동하면서 1934년에는 이종우, 장발, 구본웅, 김용준 등과 목일회를 조직하고 2회의 작품전을 열었다. 1938년 일제의 탄압으로 목일회가 와해된 후 1940년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당시 현대적인 표현 감성이 엿보이는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교수가 되었고, 조선조형동맹 부위원장을 비롯하여 조선미술동맹 서울지부 위원장 및 중앙위원장 등을 지내면서 좌익의 미술계를 이끌었다. 1948년 황해도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 밀입국하여 참가한 뒤에 월북하였으며 평양미술학교 교원,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옹진바다 전망>(1956),<종달새가 운다>(1957), <금강산 신계사 가는 길에>(1962) 등이 있다.


 


차창덕 車昌德 l 1903-1996

1903년 출생. 파란화가로서 강신석, 권옥연, 김영주, 김원, 김훈, 도상봉, 박청홍, 백영수, 윤경득, 이마동, 장욱진, 황염수와 같이 활동했다. 6·25전쟁 동안에는 부산에서 활동하여 첫 번째 개인전을 1952년에 부산에서 갖기도 했다. 1955년 제4회 국전에서 입선하며 본격적인 국내활동을 시작했다. 그 이후 서울에서 1959년과 1960년에 두 차례 개인전을 갖고 1960년에 재경 서양화가 초대합동전(장소: 전주미국공보관/주최: 전북일보사)에 참여했다. 당시 참여 작가로는 도상봉, 심형구, 김인승, 김환기, 박영선, 박득순, 장리석, 손응순, 차창덕, 박상옥, 윤중식, 김종하, 박수근, 임직순, 최덕휘, 유경채, 최영림, 김 원, 이대원이 있었다. 1962년부터 64년까지 서울에서 연이어 개인전을 열었고, 1966년~1968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현대미술전에 참여했다. 그 후 1970년에는 미국 시카고로 건너가 활동을 이어갔다. 



 

문신 文信 l 1923-1995 

1923년 일본 쿠슈 출생. 도쿄에 거주하며 1945년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를 졸업하였다. 이후, 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마산, 부산, 대구 등지에서 ‘회화와 부조 전시회’를 개최했고, 1967년부터는 파리로 건너가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쳤다. 이시기에 그는 회화보다 추상적이고 환상적인 형태의 스케일이 큰 조각 작업에 더욱 열중했고, 파리와 유럽 각지의 국제적인 조각전과 조각심포지움에 초대되었다. 문신은 쇠처럼 단단하고 검은 목질의 아프리카산 흑단나무와 소나무 등을 힘겹게 깎고 파내고 표면을 다듬어 마치 철조나 청동 작품 같은 느낌의 형상미를 독특하게 창출하며, 뚜렷한 독자세계를 완성했다. 이후, 1980년에 귀국하여 고향인 마산에 정착하였고, 브론즈와 스테인리스 금속 작품의 옥외 조각과 대형 환경 조각을 열정적으로 제작하여, 전국 곳곳에 설치했다. 타계 직전에는 자력으로 자신의 미술관을 마산에 건립하였고, 마산 경남대학에서 문신의 세계적 예술 활동과 향토 문화 공헌을 칭송한 명예 문학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또한 1991년에는 프랑스 정부에서 예술문학기사 훈장을 받았다. 



장욱진 張旭鎭 l 1917-1990

1917년 충청남도 연기군 출생. 장욱진이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과 함께 고향에서 서울로 옮겨왔다. 1939년 일본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에 들어갔다. 일본이 저지른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에 장욱진은 대학을 마치고 귀국한다. 곧이어 징용에 끌려갔다가 해방을 맞는다. 해방 뒤에는 국립박물관 직원으로 일했다. 2년 만에 박물관을 그만 둔 장욱진은 김환기, 이중섭, 유영국 등과 함께 신사실파 동인에 참여했다. 그는 그리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그리기보다 대상의 형태만 그리는 방식을 좇았다. 산과 강이 어우러진 전원, 집과 가족, 그리고 나무와 가축이 있는 마을 등 자연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소재를 화폭에 담았고, 이런 그림 방식은 한평생 계속되었다. 장욱진의 그림은 ‘아동화’ 또는 원시시대에 그려진 바위 그림인 암각화를 닮아다 하여 ‘원시화’로 불리기도 한다. 장욱진은 소재의 아주 핵심적인 것만 그려 가장 단순한 그림을 만들었다. 그가 한평생 입에 담고 살았던 “나는 심플하다”는 말이 그대로 그림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대원 李大源 l 1921-2005

1921년 경기도 파주 출생. 1971년 반도화랑에서의 개인전을 비롯해, 1975년부터 갤러리현대에서 8회의 전시를 갖고,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해외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1967년부터 1968년까지 홍익대학교 교수 및 총장을 역임했다. 특히 산과 들, 연못 등 자연을 주제로 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작가는 추상미술이 유행했던 1950년대, 1960년대부터 산과 들, 연못 등 자연의 풍경을 그리는 구상주의를 고집하여 한길을 걸어왔다. 특히 과수와 들과 산으로 집약되어 있는 전원 풍경은 그가 많이 쓰는 소재이다. 자연의 형상을 점과 선으로 표현하여 공기와 빛의 존재를 느낄 수 있으며, 율동감 있는 터치로 생동감 넘치는 화면을 구사한다. 특히 빠른 필치의 리듬감과 따뜻하고 밝은 원색은 회화적인 느낌을 더하여 준다. 이상범 시인은 ‘서양물감으로 그린 동양화’라 하였고, 조병화 시인은 ‘세밀한 터치와 깊은 관찰과 재생적인 색깔의 배치가 무리 없는 구도와 능숙한 미의 농도는 완전히 독립된 풍부하고도 여유 있는 그의 그림세계를 이루고 있다.’라고 평한 바 있다. 1989년, 1993년에 대한민국예술회장을, 국민훈장 목련상을 수상하였다. 



이인성 李仁星 l 1912-1950

1912년 경상남도 대구 출생. 한국 근대화단에서 약관의 나이로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혜성처럼 나타난 아소(我笑) 이인성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지보(至寶)’, ‘양화계의 거벽(巨擘)’으로 불리며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1950년 비운의 총기 오발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후 그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점차 대중으로부터 잊혀져가는 작가가 되고 말았다. 그의 작품과 예술세계는 그 동안 몇 차례의 추모전과 유작전을 통해 일부가 공개된 적은 있으나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대작들과 예술성 짙은 현존 작품들이 대대적으로 한자리에 전시될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비슷한 연배의 이중섭, 박수근 등이 국민적 화가로 부상하는 동안에도 1931년부터 1936년까지 조선미전 연속 6회 입선 이후, 불과 26세의 나이로 추천 작가에 올랐던 이인성에 대한 일반인의 인지도는 높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이나 화단에서는 그의 천부적 재능과 조형적 감각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한묵 韓默 l 1914-

1914년 서울 출생. 1935년부터 1970년까지 일본 가와바타화학교(川端畵學校)에서 수학하였다. 1935년까지 오과회 회원으로 중국 대련에서 전시를 개최한 바 있으며, 광복 후 대한미협 회원(1951~1959), 기조회 동인(1952), 모던아트협회 창립회원(1954~1959)으로 활동했다. 1955년부터 홍익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가서는 반회화적인 소재를 사용하는 일종의 꼴라주 작업을 시도하며 회화의 물질성과 순수성의 구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때때로 들로네를 연상시키는 컴포지션의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의 작품 경향을 화면 속 공간이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볼 때, 1970년을 기점으로 평면 구성시기와 이후의 공간 다이나미즘 시기로 양분할 수 있다. 전반기 작품이 주로 화면 속 공간의 2차원적 평면성에 대한 탐구였다고 한다면 후반기의 작품은 1969년 인간의 달 착륙을 계기로 작가가 화면 속에 담고자 한 우주적 시공간, 4차원적 공간감을 구현하고 있다. 그는 1971년부터 아뜰리에 17판화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계속하였으며, 상파울로 국제비엔날레(1975), 카뉴국제미술페스티발(1980), 영국 국제판화 비엔날레(1984), 한국현대미술 어제와 오늘전(1986)등에 참가하였다.



장우성 張遇聖 l 1912-2005

1912년 충청북도 충주 출생. 18세 때 이당 김은호 문하로 한국화에 입문한 이후, 평생 한국화 작업을 하는데 전념했다. 전통적인 문인화의 격조를 현대적으로 변용 시켜 새로운 한국화의 경지를 개척해 온 한국화의 대원로로, 그의 예술의 기본은 고고하고 격조 높은 문인정신과 회화적인 감각과 기술을 이상적으로 조화시킨 정신과 형식의 일치에 있다. 간략한 대상의 설정과 여백의 공간 구성을 통한 그의 화면에는 정(靜)과 동(動)의 세계가 함축된 놀라운 직관의 세계가 자리한다. 또한 문인화의 정신세계를 다루되, 현실과 사회상황으로부터 다양한 소재를 채택하여 자칫 빠지기 쉬운 관념의 함몰로부터 의연하였다. 결국 그는 한국적 전통의 현대적 변용이라는 우리 한국화의 과제를 자신의 화폭 안에서 개척해 왔다고 할 수 있다. 1921년 선전에서 입선하여 화가로 등단한 이래, 연속 4회 특선으로 추천작가, 서울대 미대 교수직을 거쳐 워싱턴 동양예술학원을 개설해 후학을 지도하는 등 예술가로서의 작업과 미술교육자로서의 길을 함께 걸어왔다. 



변시지 邊時志 l 1926- 

1926년 제주 출생. 작가는 주로 제주의 바람과 바다와 말을 그린다. 한 마리의 조랑말과 쓰러져 가는 초가와 소나무 한 그루와 마침내 이 모든 것을 휘몰아치는 바람의 소용돌이가 있다. 그의 이러한 풍경 속에는 어김없이 구부정한 한 노인이 바람을 마주하고 서 있는데, 이러한 회화의 기본 구도 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비애와 고독감이 고즈넉하게 녹아 있다. 화면 전체가 장판지색 혹은 황토빛으로 처리되어 있고, 풍경과 인물은 먹선의 고졸한 맛과 역동성이 함께 어울려 장대한 대자연의 율동으로 형상화된다. 어려서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수업을 받고, 23세에 일본의 광풍회전 최고상을 수상하여 화제를 모았던 그는 귀국하여 서울대, 서라벌예대, 교수를 역임하다 다시 제주로 돌아간다. 실로 40여년만의 귀향이었다. 변시지의 그림은 얼핏 보기에 제주의 풍물이 시적으로 처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소재들은 인간존재의 근원적 상황을 드러내기 위한 부수적인 소도구일 뿐 제주 풍경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풍물시가 아니다. 풍경으로 그의 작품 속 인물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우수이고 그 표현의 저돌성은 모두 아름답고 개성적이다.



박영선 朴泳善 l 1911-1994

1911년 평안남도 평양 출생. 17세 때에 아동미술작품 공모전에 출품함으로써 화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김관호, 김찬영 등이 개설한 평양 삭성회 회화연구소에 다니면서 유화를 공부하고,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등단한 뒤, 일본에 유학해 가와바타미술학교를(川端画学校) 졸업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한국과 일본의 서양화가들이 공동 결성한 단광회에 가입해 활동하였고, 호전적인 미술작품을 전시한 결전미술전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이로 인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가운데 미술부문에 포함되었다. 광복 후인 1946년 좌익 계열 미술인 모임인 조선미술가동맹이 김주경을 중앙집행위원장으로 추대해 결성되었을 때 중앙집행위원과 회화부 위원장을 맡았으나, 이후 조선미술가동맹이 조선미술동맹으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정치 논리가 미술에 개입하는데 대하여 반대하고 순수미술을 옹호하여 우파적 입장을 개진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 홍익대학교, 서라벌예술대학, 중앙대학교 미술대학의 교수를 지냈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역임했고, 1969년 3․1문화상, 1982년 국민훈장 문화장을 받았다. 특히 누드화를 포함하여 여성을 소재로 한 인물화를 즐겨 그렸는데 색채와 구도를 강조하는 화풍은 서양화의 우아함과 세련됨이 가득하여 현대적인 느낌을 주며 여성의 얼굴도 서구형으로 묘사된다. 1955년부터 4년간 프랑스에 유학하여 활동하면서 작품에 큰 변화가 일어나 이 시기를 기점으로 크게 두시로 나뉘어진다. 파리 유학 전에는 사실주의적 경향이 강했으나, 유학 후에는 환상적이고 추상적인 화풍으로 변화했다.

 


이성자 李聖子 l 1918-2009

1918년 전라남도 광양 출생. 1935년 동경의 시부야에 있는 짓센여자대학(実践女子大学)에 입학한다. 1951년 프랑스로 건너가,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들어가 유화, 목판화를 비롯, 70년대 이후의 도자기 등 모든 조형작품에 동양적 향취와 이미지를 담은 방대한 규모로 꾸준히 제작했다. 한국적 사상과 시정을 프랑스 미술계의 흐름 속에 합류시키는 대표적인 본보기가 되었고, 이후 프랑스는 물론 세계전역에 걸쳐 작가로서의 지위를 굳혀온 원로 작가이다. 이성자는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 자연과 도시의 기계문명 사이에 놓인 메울 수 없을 것 같은 간극을 뛰어넘고자 했다. 1960년대에는 고국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여성과 대지’라는 주제에 담았고 1970년~1980년대에 ‘중복’과 ‘도시’를 거쳐 1990년대에는 ‘극지로 가는 길’ 시리즈를 통해 인류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이성자는 여성 미술가로는 유일하게 반세기가 넘도록 프랑스에서 활동하면서도 여전히 한국 현대미술사의 한 부분을 확립한 작가이다. 1991년, 2002년 프랑스정부 예술문학훈장(Chevalier, Officier), 2009년 프랑스 BNP Paribas가 후원하는 한불문화상, 대한민국 문화관광부로부터 문화훈장을 수상했다.



전혁림 全爀林 l 1916-2010

1916년 경상남도 통영 출생. 1938년 부산미술전에 <신화적 해변>, <월광(月光)> 등의 작품을 출품하여 입선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가기 시작하였다. 그는 현대미술의 전위적 조형 방법으로서 전통을 표현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 해방 후 감격과 좌절을 겪고 1948년 통영문화협회 창립 동인에 참여했다. 6.25 이후 부산에서의 유랑 생활을 거쳐 국전에 입선했다. 피난지 부산의 화단은 전혁림의 토대를 굳혀주었다. 비록 지방성이란 특징이 있다하더라도 창작의 보고 노릇을 했다. 고향을 지키며 싱그러운 물빛을 안고 살아가는 지역작가로서 지역성을 적극적으로 예술세계의 토대로 삼으며 꾸준한 제작생활을 하였다. 1979년 ’계간미술‘에서의 과소평가 받는 작가로 소개되면서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에 도약기를 맞이한다.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뽑혔고, 2005년 <구십,아직은 젊다>展을 여는 등 말년에도 왕성히 활동했다. 2005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의 전시를 관람하고 가로 7m x 세로 2.8cm의 초대형 그림 <통영항>을 구입, 청와대 인왕홀에 전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 통영 봉평동에 자신이 30여 년간 살던 집을 헐고 2003년 5월 개관한 전혁림미술관에는 그의 작품 8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유영국 劉永國 l 1916-2002

1916년 경상북도 울진 출생. 우리나라 모더니즘의 제1세대 작가이다. 1930년대 후반, 당시로선 가장 실험적인 추상미술을 시도하여 우리나라 현대미술사에 추상미술의 발판을 놓았으며, 이후 꾸준히 추상에 바탕을 둔 자기세계의 심화를 보여준 작가이기도 하다. 1965년에서 1990년까지의 25년간은 그가 초기에 시도한 기하학적 구성의 견고한 추상에 근간을 두면서 강렬한 색채와 탄탄한 면 분할을 추구한 시기로서 작가의 연령으로 보아 가장 왕성한 의욕을 피력해 보였던 시기이며 조만간 더욱 완숙의 경지로 무르익어가는 진전의 면모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유영국 작가의 화면은 가장 기본적인 기하학적 패턴에 의해 성립되기 때문에 더없이 간결한 인상을 준다. 삼각과 원, 그리고 일정한 직선의 띠들이 교차하면서 만들어 놓는 여러 기하학적 면 분할에서 벗어나고 있지 않다. 어떻게 보면 이와 같은 구성요건은 대단히 간결하면서 동시에 차가운 논리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54년 이후 그의 화면은 대단히 제한된 원색을 기조로 하면서 때때로 거울과 같이 투명하게 처리된 표면을 통해 화사하고도 경쾌한 기운으로 점철되었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색채와 톤은 90년대인 최근의 작품에까지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서세옥 徐世鈺 l 1929-

1929년 경상북도 대구 출생. 1950년에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였다. 재학 중이었던 1949년 1회 국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였으며, 1960년 묵림회전 창립에 참가하여 이후 묵림회의 실질적인 리더로서 동양화의 혁신운동에 앞장섰다. 졸업 이후에는, 월전 장우성에게 배웠다. 같은 세대의 동양화가 중에서 가장 혁신적인 인물로 부각되었고 정통 동양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회화를 시도하였다. 1950년대에는 점과 선의 파격적인 수북 추상작업으로 한국현대미술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인간의 바탕으로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에 대한 관조와 명상을 통해 자연에 동화되고 자연에 귀의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찾고자 하였다. 이 '인간' 시리즈 중 하나인 <군무(群舞)>는 몇 개의 단순한 선으로 사람의 형상을 표현하면서도 동작과 표정이 매우 풍부하여 함축적이고 단순화된 인간의 형상과 묵법의 기운이 빚어내는 특유의 공간구성을 보여 준다. 국전에 비구상부를 설정하는 데 크게 공헌했으며, 전통회화에 있어서 비구상적 경향을 주도했다. 1963년 상파울루비엔날레를 위시해서 한국현대미술 프랑스 순회전, 칸느 국제회화제, 한국현대미술 유럽 순회전, 한·중 미술 교류전 등 각종 국제전과 순회전에 출품하는 한편, 갤러리 현대, 일본 우에다 화랑, 파사데나 퍼시픽, 아시아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하인두 河麟斗 l 1930-1989

1930년 경상남도 창녕 출생. 1954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였다. 1957년 20대 청년 작가들의 전향적 단체였던 현대미술가협회 창립에 참가, 1962년까지 김창렬, 박서보 등과 앵포르멜(informel : 제2차 대전 후의 비구상화의 한 수법, 또는 그 작가들 그룹의 호칭) 및 추상 표현주의 운동에 열정을 쏟았다. 그 뒤 약 10년간 기하학적 골격의 색면 추상 작업으로 이행하였다. 그 표현 정신은 불교의 선(禪)사상의 심취를 반영한 <회(廻)>, <윤(輪)> 등의 명제에 시사되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는 그간의 기하학적 구조를 벗어나 유동적인 파상선과 확산적인 기호 형상으로 불교 사사의 심의화를 한층 선명히 한 화면을 추구하며, <밀문(密門)>, <만다라(曼茶羅)> 등의 명제를 붙였다. 그것은 서구적 추상주의 회화에 대한 동양적 또는 한국적 표현 정신의 발로이자 그에 따른 창작적 조형 추구의 시현이었다. 그를 위하여 불화(佛畫)·단청(丹靑)·민화(民畫)·무속화(巫俗畫) 등 전통적 한국미의 본질 및 그 조형적 정신성이 내면적으로 자유롭게 원용되었다. 1959년~1969년 조선일보사 현대작가초대전, 1969년 상파울로 비엔나레, 1971년 인도의 트리엔날레와 카뉴회화제 등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1976년 국제조형작가회의 한국 대표, 한·불 미술협회 부회장, 국전 초대 작가, 1978년~1989년 한성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이이남 李二男 l 1969-

1969년 전라남도 담양 출생. 이이남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옛 명화를 재해석한다. ‘디지털 기술은 신통하게도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준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이남의 영상 작업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 경이었다. 유수한 국제 아트 페어에서 여러 번 참가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 앞에서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다. 그의 작품은 영상을 조작하는 첨단과학과 고전의 만남이란 화두에서 시작한다. 액자틀이나 병풍으로 위장된 LCD모니터 속에서 일어나는 영상 작업이란 점에서 비디오 모니터 속에서 진행되는 비디오 아트의 형식과 닮은 점이 많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지닌 특징이라면 고대의 명화, 현대의 걸작이 차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완료되어진 작품에 또 하나의 생명을 가함으로써 고전이나 현대의 걸작을 재해석하고 있다는 변주의 미학에서 그의 창작의 요체를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고전과 현대의 만남이란 독특한 상황 속에서 비로소 빛을 발한다. 고전과 현대문명, 정지와 움직임, 공간과 시간, 평면과 입체, 완성과 상황, 존재와 인식 등 대립적인 차원 속에서 긴장을 획득해가고 있다. 백남준 이후의 또 하나의 영상의 혁명을 조용히 추진해가고 있는 작가이다.

 


이재효 李在孝 l 1965-

1965년 경상남도 합천 출생. 1992년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였다. 그의 작품은 국내에서 다수의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졌으며, 서울의 미술회관에서 '현대조각회전', 대만의 고웅시립미술관에서 '한국, 일본, 대만 조각 교류전', 그리고 일본의 현대 조각전 등에 전시되어 왔다. 그는 한국 문화부 제정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으며, 1998년 오사카 트리엔날레에서 조각부문 대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세계는 동양미학에 순응한다. 그러기에 그의 조형적인 관적인 관점은 자연성을 매개로 하는데 집중된다. 자연 그대로의 성질, 즉 자연성을 조형의 원리로 채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작업들은 자연물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조형적인 개입을 최소화하는 데 의미를 둔다. 이는 자연물질을 이용하고 그 원형을 살리면서 얻을 수 있는 조형미에 대한 현대적인 고찰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추구하는 조형적인 이상은 자연에 필적하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이다. 자연에서 재료를 채취하고, 철을 재지로 하는 여러 가지 오브제를 활용하여 자연에 육박하는 조형언어 및 어법을 구사하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 자연을 원형으로 하여 그를 흉내는 것이다. 재료가 지닌 물성에 따라 접근방식이 달라지긴 하지만, 그 자신의 작업은 궁극적으로는 자연의 번안에 다름 아니라는 대전제를 충족시키려는 데 있다.



박병춘 朴昞春 l 1966-

1966년 충청북도 영동 출생. 작가가 산수화를 그리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강원도 정선을 처음찾은 시기로 치자면 근 20년 남짓한 세월을 산수화를 품고 그리면서 보냈다. 작가의 화두는 흔한 말로 한국화의 현대화에 맞춰졌고, 이를 시현하기 위해 여러 다양하면서도 의미 있는 시행착오와 형식실험을 거치면서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지나쳐왔다. 그리고 지금 그 세월이 남긴 흔적을 반추해본다. 작가는 기회 있을 때마다 평면작업과 함께 오브제 작업(라면산수, 비닐산수)을, 그리고 공간설치작업을 병행해왔다. 2차원의 평면 속에 갇혀있던 산수화를 3차원의 실제 공간 속으로 불러낸 것이며, 이로써 산수화의 개념을 재해석하고 있다. 나아가 평면그림에서조차, 비록 그림에 지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그림의 안과 밖을 들락거리는 어떤 상태, 그림 속에 내가 들어있다고 하는 어떤 느낌을 암시해온 전통 산수화의 이념을 좀 더 실감나는 경험의 층위로까지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광호 鄭廣鎬 l 1959- 

1959년 충청북도 대전 출생. 1977년 미술에 입문하고자 결심하였으며 1979년 미술 대학에 입학하여 현대주의 미술에 관심을 두고 수업에 임하였고 주변의 예술계를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1994년 전후를 기점으로 조각과 회화의 집이 되는 전통적인 입체공간과 평면공간의 위상을 자신이 만드는 오브제를 통하여 다른 위상에 놓이도록 하는 실험을 시작하였다. 오 브젝트에 대한 우리의 경험이 미술사적으로 이미 낡은 형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요즈음, 그의 오브젝트는 그러한 미술사적 기류의 탈성화에 가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성화에 가담하려는 보수적 의지로 읽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육근병 陸根丙 l 1957-

1957년 전라북도 전주 출생. 경희대 미술교육과와 동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16회의 개인전과 17회의 그룹전을 가졌다. 국제전으로는 92년의 〈DOCUMENTA9〉과 1998년의 〈스피드(Speed)〉 등이 있다. 97년의 독일 칼스루히에서의 ZKM(International Award for Video Art)외에, 4회의 수상 경력이 있다. 육근병의 작업은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눈이자 시선이다. 그의 작업은 항상 무언가를 보고 있다. 그의 이러한 시선에 노출된 것들은 동양 전통사상에 기반을 둔 유기적 우주관에서 현대의 미디어 테크놀로지가 갖는 가상현실의 공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결합을 시도한다. 그의 시선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바로 이러한 '시선', '바라봄'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방식이다. 즉 그의 시선은 삼라만상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시선의 차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며, 이러한 양상은 우리의 전통적인 샤머니즘과 현대 서구의 시뮬라크라의 공간을 아우른다. 그의 시선은 그 이질적인 대립과의 공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작가는 그 모두를 넘어선 또 하나의 시공간, 작가의 섬세한 감수성에 포착된 새로운 의미들을 제안 하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지점이 그와 동시대의 다른 비디오 작가들과의 변별점을 찾을 수 있다. 



 최소영 崔素榮 l 1980-

1980년 경상남도 부산 출생. 천위에 스케치를 한 뒤 청바지를 오려 붙이거나 탈색하여 꿰매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은 사용된 청바지의 조각들이 특유의 질감과 색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독특한 형태를 지닌다. 천 조각들을 수없이 자르고 비비고 탈색하여 완성하는 노동집약적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의 과정에서 작가는 표면을 밀도 있는 완성단계에 이르도록 하기 위하여 수십 회 이상 천 조각들을 배치한다. ‘젊음의 상징’인 청바지를 오려 붙여 도시풍경을 표현한 작품은 낯익은 연민과 참신함이 함께한다. 오밀조밀하게 붙여진 청바지 작품은 청바지 특유의 질감과 색상을 잘 살려 생동감이 넘친다. 청바지 작품은 2000년 작가가 미대 2학년 때 탄생했다. 흔히 사용하는 재료를 떠나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 오라는 과제 덕분이었다. 가족들이 입던 청바지는 물론 헌 옷 수거함까지 뒤져 청바지 사냥에 나섰다. 남들이 입다버린 헌 청바지를 모아 작업하고 청바지 더미 속에서 살고 있는 작가는 이제 청바지를 보기만 해도 그 사람의 자세, 태도, 버릇, 취향까지 알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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