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산책자의 시선》전은 경기문화재단 2016 문예진흥 시각예술창작지원 사업 “생생화화”의 일환으로 2016년 선정된 기성 작가 19인의 신작 발표전이다.
경기문화재단은 경기도미술관과 협력하여 창작 지원금 지원과 비평가 매칭, 발표 공간 제공과 전시 기획 지원을 결합하여 시각예술 분야 문예진흥의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였으며 올해로 4년차를 맞이하였다. 금년에는 청년작가 부문과 별도로 기성작가 부문을 신설하며 19인의 기성작가를 선정하였고 그 결과 40대부터 60대까지 자기세계를 유의미하게 구축한 중장년작가의 신작 시리즈를 대거 12월 15일부터 2월 5일까지 경기도미술관 《산책자의 시선 In the Flâneur’s Eyes》 전에서 만날 수 있다.
작품세계가 원숙기에 접어든 중장년 작가 19인은 사회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예술가 본연의, ‘산책자’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전시의 제목인 “산책자의 시선”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의 도시를 배회하고 관찰하던 일군의 도시 탐색자들, 학자와 예술가, 시인들을 지칭했던 “산책자 flâneur”의 개념을 차용한 것이다. 당시의 예술가들이 자본이 발달한 도시의 풍경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근대 도시를 비판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면, <산책자의 시선> 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혹은 위기에 처한 동시대의 풍경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관찰하고 있다
‘산책자’들은 그 시대의 풍경을 텍스트로 삼아 그것을 분석함으로써 그 시대를 해석하도록 만들어준다. <산책자의 시선>전에 참여한 19인의 산책자들은 한국의 동시대를 텍스트 삼아 이 시대의 다양한 속살을 드러낸다. 주제와 경향으로 선정된 작가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은 2016년 대한민국이 품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상기하게 만든다.
박형근, 피쉬훅-51, 시화, 2016, c-프린트, 100×150㎝
기록의 스펙터클, 그리고 그 이면 – 정재철, 박형근, 방병상, 윤사비
해양쓰레기의 경로를 탐구하고 수집하고 기록하는 정재철의 작품 <블루 오션>은 바다 쓰레기라는 전지구적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작가는 환경에 대한 어떤 해결방법도 선언도 제시하지 않지만 쓰레기 그 자체를 ‘전시’하는 것으로 미술이 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제기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시화 간척지를 ‘혼돈계’로 상정하고 육지도 바다도 아닌 그 땅을 몽환적이고 혼란스런 공간으로 담아내는 박형근의 시선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땅을 유영한다. 사진이 담아내는 시화 간척지의 풍경은 하나하나 작가가 만들어낸 풍경의 미장센이 살아있는 인간계와 자연계의 “중간지대”가 되어 버린다.
방병상이 담아낸 전쟁무기들의 기록은 사진이 담아내는, 그러나 차마 다 담아내지 못하는 살상무기의 스펙터클, 기계와 무기에 대한 인간의 경외감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는다. 방병상은 어렵사리 촬영한 전쟁무기의 스펙터클을 해체하고 조작한다. 여기서 “전쟁을 위한 기술과 사진술의 성질이 겹쳐진다...군사지역 프로젝트의 사진들은 실제로 일어난 현실이지만 동시에 가상적으로 기획된 특정적 시간에 관한 기록이자 문명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평론가 정현).
윤사비의 작업은 숫자라는 어떤 정확성의 근거처럼 사용하는 하나의 도구에 대한 사유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경제가치 000원’ 등등의 서술들이 마치 객관성을 전제한 숫자로 추상적이고 가상적인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현대사회의 여러 풍경을 작가는 ‘추상대수학’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추상대수학’전에서 이러한 숫자의 추상성을 모색했던 작가는 이번 ‘추상대수학 2’ 시리즈에서 그 추상의 기록에 기반한 평면적인 압축, 설치로 추상과 구상, 그리고 객관과 주관에 대해 질문한다.
박영균, 2016년보라Ⅰ, 2016, 캔버스에 아크릴, 196×484㎝
문제는, 다시 리얼리즘 – 박은태, 박영균, 이흥덕, 조현익
노인과 노숙자의 모습과 낡아서 사용가치가 없어진 기계의 모습을 병치한 박은태의 <늙은 기계> 시리즈는 역사가 다루지 않는 주변부의 삶을 기록한다. 세밀한 묘사로 표현된 노인들의모습을 늙어서 이젠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는 녹슨 농기계들과 나란히 배치한 박은태가 그리는 풍경은 다시금 ‘리얼리즘’이라는 테제를 상기시킨다. 고전적인 리얼리즘이 삶의 심연에서 개연성과 필연성을 발견하고 총체적인 세계를 상정한다면 이 시대의 리얼리즘은 그러한 개연성이 모두 끊어진 “서로 무관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하는 시인의 방식이 하나의 단서가 될지 모른다”(평론가 홍지석). 박영균은 자신의 작업실에서 시작된 풍경이 연결시킨 바깥세계의 풍경을 한 화면에 중첩한다. 그것은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만나는 이 시대의 현장들이고 그것은 서로 단절되어 있지만 이질적인 것들의 연결은 새로운 시(詩)가 될 수 도 있다.
기독교의 삼면화의 형식을 빌어 담아낸 이시대의 죽음의 아이콘들의 나열을 보여주는 조현익의 <믿음의 도리>는 우리가 우연히 잡아챈 현실의 작은 끄나풀이 거대한 심연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작가가 우연히 발견한 흔한 오브제 ‘믿음의 도리’라 적혀있는 교회 전단지 하나에서 촉발된 죽음과 종교, 믿음과 도리에 대한 작가의 사유, 그리고 그것에 대한 묘사는 2016년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은유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흥덕의 <지하철 퍼레이드>역시 작가가 무심히 바라보고 상상한 지하철 밖 풍경, 작가가 상상한 인간군상의 삶의 현실에 대한 리얼한 묘사로 아수라와도 같은 현실사회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김보중, 그냥노는땅, 2016, 캔버스에 유채, 194×260㎝
풍경을 해체하다 – 김보중, 김지은, 최경선, 천대광, 김현철
산책하면서 바라본 땅의 풍경을 담은 김보중의 작업은 풍경의 새로운 지형, 혹은 시선의 다른 언어를 담고자 한다. 버드 아이드 뷰로 땅을 묘사한 그의 작업은 사실 인간의 눈의 위치에서 바라본 삶의 근원, ‘땅’에 대한 서술이다. 이 땅과 어우러진 인간의 모습은 최경선의 작업에서 발견한다. 작가의 작업은 <아버지의 정원>이라는 대주제 아래 자연과 도시 속에 위치한 인간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담고 있으며 그의 그림 속 인간들이 서 있는 땅의 풍경은 “인물이 위치한 공간 자체의 신비를 숙고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평론가 현시원) 이 두 작가의 작업에서 땅은 새로운 색과 얼굴로 나타난다. 김현철의 작품 <진경>은 진경을 담은 풍경화라는 제목과는 모순되는 해체되고 추상화된 자연의 풍경을 담는다. 푸른색, 검은색으로 묘사되는 바다와 검은 묵으로 묘사되는 땅의 풍경이 어우러진 이 풍경은 심상의 묘사이고 정신성의 묘사이다.
도시의 풍경은 김지은과 천대광의 작품에서 해체되고 다시 구축된다. 김지은은 도시의 소위 ‘변두리’의 공사현장을 포착한다. 그녀가 담아낸 화면속의 콘크리트들은 사실적이면서도 추상적이다. 그 추상화된 콘크리트들은 그림 곳곳 벽면 곳곳에 구축된다. 그리고 작가는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도시의 장면이 곧 허물어질 수 있는 폐허임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평론가 현시원)
천대광은 아예 가상의 지역을 구축한다. 자신이 기거하는 양평이라는 지역을 작가의 개인적인 기준에 따라 재배치하고 구획하고 원형을 찾아간다. 그것은 근대화라는 미명아래 난개발을 거친 한국의 소도시들에 대한 비판이자 “건축물을 등고선 삼아 양평이라는 공간적, 사회적 지형을 매핑하려는 시도”(평론가 김성은)이다.
인생이라는 연극-김지섭, 장성은, 민성홍, 방&리
아시바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미술관이라는 권위적인 공간을 전복하는, 유연하고도 개방적인 공간을 구성하여 그 속에서 관객과 작가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시도를 진행했던 작가 김지섭은 이번 전시에서 <자리 바꾸기>라는 이름으로 가평의 아시바 미술관과 경기도미술관의 ‘자리 바꾸기’를 시도한다. 김지섭이 ‘능연(能緣)’이라 부르는 관객 혹은 작가의 행위가 구현되는 설치를 이번 전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민성홍의 작품 <다시락(多侍樂)>은 떠나가는 것들을 위한 굿, ‘다시래기’를 위한 무대를 제작한다. 거대한 거주 단지가 재개발의 이름 아래 자신의 근거지를 버리고 떠나는 현장에서 작가는 켜켜이 기억이 쌓인 버려진 이삿짐들로 다시래기 굿을 위한 도구를 제작한다.
장성은의 작업은 일상에서 펼치는 우리 스스로의 연극을 형상화한다. 잘 정리된 미장센 안에 선 인물들은 자신들이 일상 속에서 연기하는 우리의 감정을 형상화한 오브제를 입고 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맞닥뜨리는 자아의 변화무쌍하게 다른 모습을 연극으로 해석한 작가가 묘사하는 현장의 모습이 존재한다. 방&리의 <아레나>는 어쩌면 이런 일상의 연극 자체를 위한 무대를 선사한다. 특히 현대 소셜 미디어의 발전 속에서 자아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과시의 현장을 엿볼 수 있는 듯 방&리의 작업은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현대의 소통 방식을 ‘전시’한다.
박은태, 아빠, 2016, 장지에 아크릴, 138.5×102㎝
인간이라는 그 근원 – 임승천, 한효석
어떤 가상의 스토리 속에 존재하는 공간을 구상하여 전시하곤 했던 임승천의 조각은 세기말의 풍경처럼 기묘하고 기형적인 공간과 인간 군상을 보여줬다. 그런 그가 이번 전시에서는 <미싱링크>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진화 속에서 빠뜨린 연결고리 즉,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비정형의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효석에게 살아있는 또는 살아있었던 신체를 다루는 건 작업 전반에 가치에 관한 화두가 된다. 그것은 생명이 무엇인가를 묻는 행위이고 더 나아가 사회적 삶에서 이 생명이 어떻게 판단가치의 기준이 되는지를 묻기 위함이다.”(평론가 정현) 한효석 작가는 12명의 다양한 인종과 성별, 지역의 인물들의 실물 캐스팅된 작품을 높은 좌대에 올려 우러러보게 만든다. 평범한 이 인간들의 생명 자체의 위대함을 우리는 놓치고 사는 건 아닌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이다.
《산책자의 시선》전은 이러한 다양한 19명의 작가의 작품제작을 김해주, 현시원, 정현, 홍지석, 김성은 등 다섯명의 평론가들의 비평과 해석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경기문화재단이라는 공공재단의 지원과 평론의 조력, 경기도미술관의 전시연출이 어우러진 <산책자의 시선>전은 그런 의미에서 공공기획의 의미와 방향성에 대해 모색해 볼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경기문화재단이 작품 제작비를 지원하고 경기도미술관이 전시를 기획하여 작가의 신작의 기획부터 진행과정까지를 함께 모니터링한 전시의 작품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는 12월 16일 2시 작가 워크숍을 통해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