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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민지 : Pictures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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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 눈에서 손까지
[Pictures] 류민지 개인전


안소연  미술비평가

* 한여름,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녘에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는 차창 앞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파리 시내의 거리를 이동하며 촬영한 영상으로 짧은 영화를 만들었다. <바위에 새겨진 손(Les Mains Négatives)>(1979)은, 차가운 파란색 대기에 둘러싸여 있는 크고 검은 형상들을 손으로 더듬듯 느리게 움직이는 카메라의 시선을 좇는다. 뒤라스는 “네거티브 핸드(Main Négative: 스텐실 기법으로 바위 표면에 손가락을 벌려서 손 주위에 안료를 바르는 방식으로 제작)”라는 동굴 속 수수께끼 같은 손 그림에서 출발해, 미명의 파리 시내에서 검은 실루엣으로 서성이는 피식민지인들을 향한 사랑을 영화 속 독백으로 쏟아낸다. 오래된 과거 혹은 역사에 대한 기억은, 아무런 이미지조차 없이, 새벽의 푸른색 대기가 서서히 걷히면서 검은 형상들이 태양 광선에 의해 흰색의 유령처럼 선명해지는 역설적인 허구 속에서 되살아난다. 뒤라스 자신의 과거[피식민지인들의 형상]와 헤아릴 수 없이 오래된 역사의 흔적들[네거티브 핸드를 감싼 물감 자국들]이, 8월의 새벽 빛 속에서 유령처럼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 류민지의 <새벽 그림자>(2024)는, 천천히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단지 가시적인 것이라고는) 검은색과 파란색의 추상적인 대비뿐이었던 뒤라스의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화면을 덮은 이 가시적인 것의 결여는, 뒤라스의 독백이 떠올려 주었던 것처럼 동굴 벽에 새겨진 네거티브 손 이미지의 시각적인 반전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막달레나 동굴에서 발견된 손 그림은, 마치 카메라 앞에 서 있던 (부재하는) 어떤 이들의 현존을 증명하는 사진처럼, 동굴 벽에 손을 대고 텅 빈 (네거티브) 실체의 가장자리 윤곽을 색의 흔적으로 남겨 놓았던 것이다. 뒤라스가 인적 드문 새벽의 파리 풍경에서 시각적으로 기록하려 했던 것은, 흰색의 (혹은 부재하는) 유령을 비추는 검고 파란 “새벽 빛”이었을 지도 모른다. 
   류민지는 “새벽 그림자”를 말한다. 두 개의 캔버스를 연결한 <새벽 그림자>는 동굴 벽에 새겨진 “네거티브 핸드”처럼 부재하는 것의 형상이라는 모순을 보여준다. 창을 통해 들어온 파란 새벽 빛이, 투명한 창과 텅 빈 벽을 가상의 공간처럼 일렁이는 두께로 겹쳐지며 깨어나게 했다. 류민지는 새벽의 파란 대기가 유리창을 투과하여 건축적 공간의 내부로 들어와 그 투명한 경계에서 일어나는 마술적인 시공간의 변형을 감지했다. 가시성의 현저한 결핍, 마치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잠”과 “깨어남” 사이의 망설임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그는 파란 새벽 빛을 검은 형상[그림자]을 떠받칠 공간으로 받아들인다. 이때, 왼쪽 그림과 오른쪽 그림의, 분명 하나의 형상일 것이라고 생각한 새벽 그림자의 검은 실루엣은 두 개의 공간으로 기이하게 분절돼, 어떤 시각적 간극을 호소한다. 
   <새벽 그림자>에서, 류민지는 새벽이라는 초현실적 시공간이 환기시키는 비가시성에 대한 접근과 함께 “기억”을 매개로 시각적 형상의 출현을 시도한다. 빛과 그림자의 관계로 자연스럽게 설정된 화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의 “보기”는, 두 개의 캔버스로 구분한 이질적인 검은 선의 병치에 더욱 집중하게 한다. 그는 작업 초기부터 일상적인 풍경에 주목해, 주로 밤과 새벽의 어둠과 빛에 의해 왜곡 및 변형된 장면에 직관적으로 접근한다든가, 창문을 매개로 구획되고 지워지고 중첩되는 등의 현상을 탐구하는 식으로 풍경에 대한 회화적 표현을 모색해 왔다. 이번 개인전 《Pictures》(2024)에서,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직접 목격한 풍경을 기억에 의존해 드로잉으로 옮긴 후, 잔상처럼 기억에 의해 매개된 비가시적 흔적을 캔버스 위에 회화적 제스처로 옮길 적당한 구실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비)가시적 경험이 신체적인 시각장의 문턱을 넘어 임의의 형상을 기억해 내는 회화적 체험으로 이행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파란색 물감이 캔버스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새벽 빛이라는 구역을 설정하고, 그 위로 어둠과 공간 내부에서 반사된 다른 광원의 빛이 쌓여, 투명한 유리창과 텅 빈 벽은 시각적인 후퇴와 전진을 거듭하며 일렁이는 공간의 파동을 구축해낸다. 이 색채의 구역 안에 검은 그림자의 형상을 출현시키기 위해, 그는 기억이라는 “사실”과 “허구” 사이의 범주를 가져온다. 류민지는 창가에 서 있던 식물의 선적인 형태가 그에게 가시적 경험을 촉발시켰던 새벽녘의 기억을 가져와, 푸른 빛이 유리창을 뚫고 직접 전진해 오는 오른쪽 캔버스에서 짧고 조심스러운 붓질을 통해 검은색 식물의 형상을 신중하게 눈으로 더듬어 감싸듯 그렸다. 나머지 왼쪽 캔버스에는 다른 선이 출현하는데, 정황 상 그림자다. 굵고 큰 선이 빛과 어둠 속으로 다시 후퇴하듯, 그의 붓질은 식물의 형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빌미로 실체 없는 공간의 구역을 손으로 더듬듯 행위의 질감을 남긴다.  

* <유리, 먼지, 나무 그림자>(2024)는, 낮이지만 밤의 감각을 가졌다. <새벽 그림자>와 마찬가지로 캔버스를 (반)투명하게 덮고 있는 시각적 개념은 유리다. 류민지의 회화는 (표면이) 두껍지 않다. 대신 그는 밤의 감각을 가져와 시각적 경험의 촉각적 변형을 시도함으로써, 특유의 두께를 쌓는다. <유리, 먼지, 나무 그림자>와 나란히 걸린 <오른쪽 위 창문>(2024) 역시 유리를 통한 시각적 변형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뒤라스가 차창 앞에 카메라를 고정시켜 이중의 유리[창문과 렌즈]로 새벽 빛을 뚫고 기억의 (허구적) 형상과 마주하고자 했던 것처럼, 류민지는 유리가 매개하는 평면을 통해 현실의 풍경을 기억의 장치로 한 꺼풀씩 벗겨낸 후 화면에 재배치한다. 
   <빛을 향해 걷는 두 사람>(2024)은 얼마나 허구적인가. “네거티브 핸드”의 수수께끼처럼, 텅 빈 부재의 형상을 감싸고 있는 푸른 색의 물감 흔적이 이 회화의 전부 같다. 밤의 감각이 감싸고, 빛의 굴절이 은폐하는, 일련의 비가시성의 혼돈 속에서 그는 회화적 감각으로 선회한다. 실패한 “눈”의 역량은, “기억”이라는 불확실한 구역을 스스럼 없이 관통한 후, “손”이라는 시각에 대한 네거티브의 감각에 도달한다. <벽과 붓질>(2024)은 그러한 네거티브의 감각이 역력하다. 추상적인 색채와 붓질뿐만 아니라, 무언가 지워지고 누락된 것 같은 형상이 표면에 부유한다. 유리 대신 오래된 건물의 외벽을 회화 평면에 가져다 놓은 그는, 먼지 낀 유리처럼 얼룩 같은 흔적을 뭉쳐 놓은 듯한 저 붉은 외벽의 파동을 흰색의 자국들로 조심스럽게 누른다. 이렇듯 서로의 감각을 상쇄시키듯 조율하며 어떤 힘의 균형 상태에 닿고자 하는 그의 회화적 감각은, 시각과 촉각, 낮과 밤, 눈과 손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엿본다. 

* 《Pictures》라는 전시 제목이 아우르는 범주는 드로잉과 회화 사이의 단절과 지속을 통해 매만져진다. 류민지의 작업은 그가 직접 경험한 시각적 풍경에 대한 드로잉 과정을 거쳐 회화적 변형의 단계로 이어진다. 애초에 가시성을 박탈 당한 현실에서의 비실재적 시각 경험은 (굳이 드로잉의 과정을 생략한다면) 회화와 유사한 감각을 공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꽤 사실적인 사생을 통한 풍경화라고 생각할 정도로 가시성에 충실한 드로잉의 과정을 동반할 때가 있고, 본 것을 다시 보며 이전의 경험을 다시 기억하듯, 그린 것을 다시 그리며 기억을 굳이 고정시키지 않는다. 기억이 매개한 그의 회화적 감각은, 사실과 동떨어진 허구적 형상에 가까운 두께를 만들어내면서 재현과 추상의 지각과 인식마저 봉인해 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100장의 드로잉이 걸린 공간에 함께 놓인 <빛을 향해 걷는 두 사람>은, 마치 그림을 그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듯 빛과 빛을 감싼 어둠을 향해 걷는 두 개의 마음을 상상하게 한다.
   <새어 나오는 노을>로 이어지는 두 개의 감각은, <조각난 달>과 <둥근 불빛>에서도 반복된다. <벽과 붓질>에서 부유하는 흰색 얼룩처럼, 부재하는 빛[노을]을 감싼 어둠의 형상과 실체 없는 초록 그림자를 평면에 그려 넣기 위해 역설적이게도 텅 빈 동그라미[불빛]가 필요했던 모순을 보여준다. “벽”과 “붓질”의 관계가 암시하듯, 그는 회화의 평면 위에서 (순수하지 않은) 기억의 붓질을 시도한다. 시각적인 것인지 촉각적인 것인지, 낮인지 밤인지, 빛인지 어둠인지 조차 분명하지 않은 기억(의 왜곡과 변형)을 회화의 대상으로 가져와 붓질의 타당성을 찾으려 한다. 현실 풍경을 회화의 세계로 옮기면서, 그는 기억이라는 변환의 장치로 붓질의 수행성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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