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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전설, 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 전시분류

    개인

  • 전시기간

    2024-11-11 ~ 2024-12-31

  • 참여작가

    천경자

  • 전시 장소

    고흥분청문화박물관 고흥아트센터

  • 유/무료

    무료

  • 문의처

    061-830-5990

  • 홈페이지

    http://www.buncheong.goheung.go.kr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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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 명:  찬란한 전설, 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전시일정:  2024.11.11.(월)~12.31.(화) 51일간 
(개막일 포함, 휴관일 매주 월요일 제외, 44일간)
◇전시시간: 9:00~18:00 (마지막 입장 17:00)
◇전시장소:  고흥분청문화박물관 (고흥군 두원면 분청문화박물관길 99), 고흥아트센터 (고흥군 흥양길 10)
◇입장료: 무료
◇전시내용:  회화작품 58점, 유품 및 아카이브


천경자_1970년 파리시절


- 천경자를 낳은 고장, 고흥에서 열리는 첫 전시
- 천경자 탄생 100 주년을 기념하는 전국 유일의 단독 전시
- 작품, 친필편지, 희귀 사진 등 아카이브 자료 전시
- 출품작 58점은 소장가와 기관의 대여작으로, 그동안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 선보여



고흥군(군수 공영민)은 오는 2024년 11월 11일부터 12월 31일까지‘찬란한 전설, 천경자’를 주제로 고(故) 천경자 작가의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천경자 작가의 차녀 수미타 김(김정희)이 예술총감독을 맡아 천경자 작가의 사진, 친필편지 등 다양한 자료 뿐 아니라 다양한 시대의 작품을 통해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주제전시 <찬란한 전설, 천경자>에서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과 유품을 최초로 선보여 전시를 찾는 관람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게 된다.
전시 작품은 ▲탱고가 흐르는 황혼 ▲만선 ▲화혼 ▲굴비를 든 남자 ▲길례언니 Ⅱ ▲정 ▲파리시절 유화 등 채색화 29점, 드로잉 23점, 화선지에 먹 6점, 아카이브 100여점 등 총 160여점이다.
관람객들은 ‘길례언니’, ‘청춘의 문’, ‘꿈과 바람’, ‘파리시절’,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자유로운 여자’, ‘찬란한 전설’, 총 7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를 따라가며 천경자 화풍의 변화와 그의 인생, 시대 배경을 접하게 된다. 

주제전 외에 특별전, 연계전이 진행되는데, 주제전시는 고흥분청문화박물관에서, 특별전시는 고흥아트센터에서, 연계 전시는 남포미술관에서 열리게 된다.

맨션나인 주관으로 열리는 특별전시 <청년작가, 천재화가 천경자를 기리고 그리다>에서는 공모에 선정된 청년작가 82인이 ‘천경자 화백’을 기리며 각자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작품을 출품한다.

남포미술관에서 열리는 연계 전시 <색채의 향연>에서는 천경자 화백의 제자와 국내 채색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아울러, 천경자 작가의 회화와 드로잉 작품을 재해석한 이이남 작가의 미디어아트 프로젝트도 함께 선보인다. 천경자 작가의 작품의 중요한 테마인 ‘고흥의 바다와 자연’, ‘여성성’을 미디어아트를 통해 역동적이고 몰입적인 경험으로 승화시키는 이 프로젝트는 관람객이 작품안으로 들어가 시각적, 청각적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된다. 시대와 매체를 초월해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된 천경자 작가의 예술세계는, 그의 예술적유산이 오늘날 관객에게 강렬하게 다가갈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공영민 군수는 “천경자 작가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큰 별로 그의 작품에서 묻어나는 독창적인 색채와 강렬한 감성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분들이 천경자 작가의 예술적 여정을 함께 느끼고 작품이 주는 깊은 감동을 경험하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수미타 김 예술총감독은 ‘화가 천경자는 독창적인 화풍과 솔직한 글, 그리고 용기 있는 삶으로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 선구자적 예술가였다.’ ‘그리고 그는 많은 사람에게 그리움을 남기고 떠났다’ 면서 ‘이 특별전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슴에 간직한 그리움과 아쉬움에 대한 응답이다’ 라고 전시의 의의를 밝혔다.

전시는 11월 1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리며, 입장 마감 시간은 오후 5시이다.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 주제전 7개의 섹션 

주제전_입구


섹션 1: 길례언니
천경자 작가의 창작생활의 모태가 된 고흥의 추억을 직접 소환한 이 섹션은 ‘길례언니’ 시리즈 중 <길례언니II> 가 깊은 응시로 관객을 맞이한다.
길례언니는 천경자가 자서전에서 상세히 기술했던 대로 실존 인물이다. 지역 미술사가의 증언에 따르면, 천경자가 졸업한 고흥보통학교의 졸업생 명단에 천경자보다 3년 선배인 임길례라는 학생이 존재했고 그는 소록도의 간호사가 되었다. 그는 천경자에게 순수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영원한 구원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50년대 작품인 <여인 스케치>의 여성상은 사진으로 남아있는 ‘여동생 옥희’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 천경자가 지극히 사랑했던 누이동생 ‘옥희’가 모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꿈과 바람


섹션 2: 청춘의 문
두번째 전시공간 ‘청춘의 문’ 은 고난과 불행이 겹쳤던 50년대 광주시절, 그러나 화가로서의 원대한 꿈이 열렸던 희망의 시대, 천경자의 50년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천경자는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에 동경여자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인 고흥으로 돌아온다. 불행한 결혼과 집안의 몰락 속에 천경자는 부모와 외할머니와 함께 곧 광주로 이사하게 된다. 그렇게 절망과 청춘, 원대하게 빛나는 희망의 별이 기다리고 있던 ‘1950년대 광주시절’이 시작된다. 당시 전남여고에 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그는 사랑하는 여동생의 죽음과 창자를 에이는 배고픔 속에서도 그림을 그렸다. 또한, 광주에서 평생 사랑했던 남성을 만났지만, 이 사랑 역시 앞날이 불투명했다. 6.25 동란 중이던 1951년, 천경자는 ‘이럴 때 어찌 향기로운 백합을 그릴 것이냐’라고 탄식하며 처절한 삶의 의지를 상징하는 그림을 그리게 된다. 35마리의 뱀이 얽혀 있는 <생태>는 그렇게 태어났다. 그리고 천경자는 이 그림으로 일약 명성을 얻게 되며 당대 화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동료 작가 김환기의 추천으로 홍익대학교 교수로 발탁된다. 이 시절은 천경자에게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시기였지만, 낭만과 공정함도 함께 있었다. 이 무렵 그린 대작 <정 靜>은 1955년 미협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100호 크기의 작품으로, 1950년대 좌절과 희망의 시대를 상징하는 ‘청춘의 문’ 파트의 대표작이다.

‘청춘의 문’ 섹션에 들어서면 오른 편에는 <접시꽃> 이라는 작품이 있고 벽부장 안에 역시 50년 대 작 <꽃> 그리고 드로잉 4점이 있다. 이 드로잉들은 천경자가 모교인 전남여고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 중이었던 때 그린 것이다.  <가족> 이라는 그림은 외할머니, 어머니, 본인의 두 어린 아이들을 그린, 그 당시 천경자가 살던 집 마당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 드는 드로잉이다.  또한 타원형의 테두리 안에 꽃과 인물이 그려진 <드로잉>은 천경자가 전남여고에서 학생들에게 자수를 가르쳤을 때 그려준 디자인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천경자의 제자들은 후에 천경자 교사가 학생들을 위해 자수의 디자인을 그려주었다고 증언한다.
이 섹션에서 주목할 또다른 작품은 이제까지 수십년간 전시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제주도 풍경>이라는 작품인데 원래 제목은 <섬의 인상>으로 1956년 국전에 출품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00호의 대작인 이작품은 세련되고 대담한 색감 사용이 특징으로 50년대 천경자 작품 연구에 큰 도움이 되는 발굴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신문기사에 국전평을 한 이봉상 화가는 천경자를 ‘칼라리스트’라 부르며, ‘도전하는 제작정신’을 보여주는 이 그림을 그 해 ‘국전의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꼽은 바 있다.


섹션3.4.5


섹션 3: 꿈과 바람
천경자는 1962년까지 살던 누하동 집을 떠나 인왕산 자락의 옥인동 178-6으로 이사한다. 마당에 앵두나무가 심어진, 당시 국민주택이라고 불리던 옥인동 집에 천경자는 비로소 최초의 화실을 갖게 된다. 이층의 3평 정도 되는 방을 화실로 삼은 천경자는 “화실이 생기니까 비가 와도 반갑고, 눈이 뿌려도 새롭고 즐거웠다”라고 회상했다. 1960년대는 그가 끝없는 도전과 실험으로 동양화 표현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시기였다. 화선지를 올린 화판에 동양화 안료로 두꺼운 표면이 형성될 때까지 겹겹이 붓질 하고, 긁고, 문지르는 등 거친 표현을 구사했다. 소재도 초현실주의풍의 대담한 이미지로 바뀌었다. 73 년도 작 <화혼>, 그리고 65년도의 <소녀>, 71년의 <만선>, 69년의 <언젠가 그날> 와 같은 작품들이 이때 태어났다. 이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자유로운 초현실 풍의 소재선택과 독창적인 기법은 그의 60년대 70년대 화풍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작품 <화혼>이 걸려있는 벽부장 안에는 천경자 작가의 꽃 스케치들이 나란히 걸려있다.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천경자 작가는 여행을 다니며 평생 사생을 멈추지 않았다. 그 수많은 스케치 속의 다양한 꽃들은 천경자의 화폭에 옮겨져 작렬하는 색깔로 피어나곤 한다.
짙푸른 색깔의 석채를 두껍게 올린 60년대 작, <굴비를 든 남자>에서 보이는 군청색(群靑色)은 천경자 작가가 가장 즐겨 썼던 색이었다. 
천경자 작가는 석채로 채색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석채는 그 이름이 말하듯 돌을 갈아 만든 안료로써 색이 선명하며 세월이 가도 바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이 작품의 군청색은 보석류에 속하는 청금석을 갈아 만든 안료이어서 인지 60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빛깔이 찬란하고 반짝거린다. 
동양화 안료는 분채와 석채로 나뉘는데, 천경자는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석채의 양을 늘려갔다.



파리시절

섹션 4: 파리시절
1969년 유럽과 미국으로 첫 세계 여행에 나선 천경자는 뉴욕을 거쳐 파리에 정착한다. 그가 파리에서 보낸 시기는 대략 1969년 늦은 가을에서 다음 해 봄까지로, 15구 올리비에 드 세르Rue Olivier de Serre가에 있던 호텔에 묵으며 아카데미 고에즈Acadmie Goetz에 매일 나가 그림을 그렸고, 새로운 재료였던 유화 물감과 캔버스에 익숙해진다. 천경자가 유화를 그린 적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당시 그린 유화 다섯 점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중 가장 큰 그림이 이번 특별전에 출품된 <누드>이다.  국가 기록원 자료에 따르면 이 그림은 1970년의 ‘귀국전’에 포함됐지만 그 후로는 한번도 전시되지 않았다.
이 섹션에는 힘찬 선의 역동감이 살아있는 당시 크로키들도 함께 전시된다. 천경자는 당시 파리에 남아 구미 화단에 진출하고 싶은 야심과 노모와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는 책임감 사이에서 깊은 갈등을 겪게 된다. 1970년 3월 31일, 천경자는 흰 상의와 흰 바지에 보라색 긴 머플러를 두르고 김포공항에 도착한다. 그해 9월, 서울 신문회관 화랑에서 여행 스케치 전시 「남태평양 풍물시리즈 스케치전」을 열어 파리, 이탈리아, 하와이, 타히티, 사모아 등지의 생생한 기록을 선보인다



섹션 5: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천경자가 대중과 소통했던 매체는 다양했다. 천경자가 참여했던 전시의 도록과 그의 그림이 표지 혹은 삽화로 실린 신문 및 각종 출판물, 그리고 그가 대중과 직접 글로 소통했던 다수의 수필집이 이 섹션에서 소개된다. 

천경자는 누구보다도 감성적인 표현과 솔직한 화법의 글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고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타고난 문학적 성향 때문인지 천경자는 여러 문인과 교류했다. 특히 같은 연배였던 박경리 작가와 돈독한 사이였다. 옥인동에 살던 천경자와 정릉에 살던 박경리 작가는 서로의 집을 방문해 오랜 시간 속에 담고 있던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였다. 30~40대의 천경자는 심한 천식을 앓았는데 어느 해에는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면서 시야까지 흐려져 화가로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 박경리 작가가 『김약국의 딸들』의 성공으로 받은 인세 일부를 꾸어 주며 천경자에게 용이 들어간 한약을 지어 먹게 했다. 전시 아카이브 중 박경리 작가의 친필 편지는 30대였던 두 작가의 가난하고 풋풋했던 면모를 생생히 전해준다. 이 외에 월탄 박종화 선생의 편지,  최순우 국립박물관장의 카드, 딸에게 보낸 친밀한 편지들도 아카이브 섹션을 채우고 있다.

천경자 작품은 밀도 높은 질감의 화풍으로 알려져있지만, 때로 흥이 나면 개구리나 붕어를 소재로 물감이 퍼지는 듯한 담채화를 그리곤 했다. 여백의 미가 살아있는 천경자 작가의 개구리나 붕어 그림들은 천경자의 생동감있고 담대한 필력을 보여준다.
같은 벽부장안에 있는 한지에 먹으로 그린 그림들은 모두 자신의 글에 삽화로 그렸던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들이다. <유리상자 안의 뱀>은 천경자가 70년 말 문학사상에 연재했던 ‘내 슬픈 전설의 49 페이지-그림이 있는 자서전’ 의 삽화였다. 

그는 1951년 여동생 옥희를 잃은 직후, 광주역전의 뱀 집에서 뱀 스케치를 하면서, ‘뱀이라도 그려야 살 것 같았다’ 고 그 시절을 술회했다. 단행본으로 출간된 자서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에 이 그림이 실린 페이지를 펼쳐서 작품과 함께 전시한다.
맞은편 벽부장에는 천 화백이 그린 <신문 소설 삽화>들이 전시된다. 가난했던 시절 화가들에겐 신문 소설의 삽화가 몇달간의 수입을 보장해주는 고마운 수입원이었다. 천경자 작가도 여러편의 신문소설에 삽화를 그렸는데 그는 신문 삽화 한 장을 그릴 때도 항상 모델을 써 스케치를 한 후 그렸다고 한다.

그가 그린 신문 삽화 중 박경리 작 ‘파시’ (1964-65), 손소희 작 ‘사랑의 계절’(1962)이 전시된다. 


자유로운 여자


섹션 6: 자유로운 여자
천경자에게 그림은 종교였다. 그는 말이 통하지 않는 오지에서 불안에 휩싸였을 때도 화판을 꺼내 현지인이나 풍물을 스케치하면 포근한 안도감이 밀려왔다고 술회했다. 천경자는 여행 중에 펜으로 한 스케치를 집으로 가져와 1960년대에는 주로 담채로 생동감을 살렸으나, 1980년대 이후에는 불투명 안료인 과슈, 동양화의 분채와 석채를 사용해 공들여 완성했다. 학생 때부터 사생에 열중했던 천경자는 여행을 가지 않을 때도 정기적으로 자하문 밖 등 야외에 스케치북을 끼고 나가 꽃을 그렸다. 한 번 스케치를 시작하면 같은 장소에서 두 시간씩 서 있는 것도 보통이었다. 그렇게 사생한 꽃들이 그의 그림에서 작렬하는 색으로 피어났다. 한 인터뷰에서 말했듯, 천경자는 밀도 있는 붓터치를 사용하면서도, ‘하늘하늘한 꽃 이파리들을 그려내는 나만의 테크닉을 갖고 있다’고 종종 말했다. 젊은 시절, 그는 처절한 삶의 의지 하나로 유리 상자 속에 엉킨 수십 마리의 뱀을 사생했으며, 이후에는 뉴욕의 뮤지컬 무대나 서커스 공연 등에서 움직이는 사물이나 형상을 빠른 동작으로 스케치하는 것을 즐겼다.
천경자는 해외여행이 쉽지 않았던 1969년부터 타이티,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스케치 작품과 기행문을 남긴 선구자 적인 여성이었다.

그는 가는 곳 마다 생생한 스케치 작품을 만들고, 집에 돌아와 색을 입혔다.
초기 스케치들은 담채만 입혀 선이 살아있는 것이 특징이지만 80-90 년대에 들어오면서 그의 스케치 페인팅 기법은 더욱 완성미를 추구했다.
이 섹션에는 베니스 <산마르코 사원> (1972)을 그린 스케치, 자이르, 카이로 등 1974 년 아프리카 여행에서 그린 스케치, 1983 년 북해도 여행에서 그린 <수도원 풍경>, 그리고 <은방울 꽃> (1983), 1988년 작 <아이누 여인 >, 1994년의 <소녀상> 등  해외 여행 중 그린 스케치위에 색깔을 입혀 완성한 페인팅들을 선보인다.  

또한, 1972년 월남전 파견 종군화가단의 홍일점 작가로 참여해 그린 <맹호사단> ,<괌의 여인> (1983), <서 사모아에서>  (1969) 와 <뉴델리 (1979), <올드델리> (1979) 등 1979년 인도 여행에서 그린 스케치 페인팅들이 자유로운 여자 섹션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찬란한 전설


Section 7: 찬란한 전설
이 전시의 마지막 섹션인 ‘찬란한 전설’은 예술원 소장의 <여인상>, 이번 전시의 주제작인 <탱고가 흐르는 황혼>, 1973년작 <팬지> 등 천경자의 화풍이 무르익고 창작 에너지가 폭발했던 70-80년대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1979년 작 <탱고가 흐르는 황혼>은 천경자의 원숙한 에너지가 응축된 1970년대 말의 대표작으로 여인의 우수와 고독함 그리고 처연한 아름다움이 경이롭게 어우러져 있다. 

천경자 작가는 작업할 때 주로 남도 판소리, 이미자, 배호 같은 가수들의 대중가요 그리고 중남미 음악 중에서도 탱고를 좋아해 자주 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남도 판소리의 깊고 진한 감성, 흐르다 끊어지는 탱고의 선율이 작품의 배경음악으로 느껴진다.

1973년 작 ‘팬지’는 화려한 색감과 마릴린 먼로의 얼굴을 유리병 속에 넣은 도발적인 착상이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화병속에 갇힌 마릴린 먼로 이미지는 어쩌면 미술사적, 사회적 통념에 맞선 페미니스트적 표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념적으로 페미니즘을 외치지는 않았지만 ‘여성성을 진솔하게 표출하는 자연스러움과 당당함으로 새로운 여성 양식을 수립했다’는 평을 들었다.

마릴린 먼로 외에 무성영화시대의 스타 그레타 가르보, 가수 마돈나 등이 천화백의 작품에 등장한다.  평생 문학과 영화를 사랑한 그로서, 은막의 스타들을 화폭에 불러온 것은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른다. 
전라남도의 남단 고흥반도에서 태어나 전시 피란 수도 부산에서 그린 <생태>라는 뱀 그림으로 일약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천경자. 그 이후 그는 치열한 창작 정신으로 70여 년의 세월을 화업에 바쳤다. 천경자는 천성이 ‘나답게밖에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인간으로서, 화가로서의 천경자는 독창성, 용기 그리고 진정성으로 정의할 수 있다. 누가 뭐라해도 ‘내가 그리고자 한 것을 나만의 화법’으로 그린 그의 독창성, 예술과 삶에 있어서 타협할 줄 몰랐던 예술가로서의 진정성, 그리고 시대의 고달픔 속에서도 사랑, 꿈, 모정을 원동력 삼아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아낸 용기. 
영원한 화가, 찬란한 전설 천경자, 우리가 그를 그리워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 작가 소개
천경자 千鏡子 1924-2015 

천경자본명: 천옥자는 1924년 11월 11일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서문리에서 태어났다. 고흥 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전남여자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어릴 적부터 도화에 큰 소질을 보였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현 동경여자미술대학)로 유학, 1944년에 졸업한다.

유학 중이던 1943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로 입선했고, 1944년에는 외할머니를 그린 ‘노부’로 다시 한번 입선하면서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선다. 이후 전쟁과 불운한 개인사에도 불구하고 천경자는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 나갔다. 1952년에 발표한 뱀 그림, ‘생태’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54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로 임명된다. 1955년 제7회 미협전람회에 ‘정精’을 출품해 대통령상을 받았다.

60년대 이후 천경자는 부단한 실험과 도전을 통해 독보적인 화풍을 확립했다. 자전적인 주제와 한국의 정서를 화려한 채색과 밀도 있는 질감으로 표현한 그는 흔히 ‘영혼의 화가’, ‘색채의 마술사’, ‘고독과 한의 작가’라 불린다. 대중의 큰 사랑과 함께 독창적인 그의 작품 세계는 한국 현대미술사에 큰 획을 그었다.

말년의 천경자는 주요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고, 그의 영구 전시실이 서울시립미술관에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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