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갤러리 도스 기획
임호섭 ‘PAINTED FOREST’
2024. 12. 18 (수) ~ 2024. 12. 31 (화)
1. 전시 개요
■ 전 시 명: 갤러리 도스 기획 임호섭 ‘PAINTED FOREST’展
■ 전시장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길 37 갤러리 도스 제1전시관(B1F)
■ 전시기간: 2024. 12. 18 (수) ~ 2024. 12. 31 (화)
2. 전시 평론
공감각의 숲
박소호 / 임호섭 작가를 위한 글
# 풀내음이 자라나는
오래된 나무의 진액과 수액처럼 물감은 평평한 캔버스 위에 단단히 붙어 있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 흔적을 남기는 붓 자국의 잔해와 사뭇 다르다. 작가 임호섭의 화면은 이파리가 무수히 붙어 있는 숲을 연상하게 하지만, 풍경으로 인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겨울이 되어 쌓이는 낙엽의 질감과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고요와 적막의 풍경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을 수 있는 습기와 건조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환경의 내음이 담긴 화면이다. 이 때문에 그의 작업은 풍경의 요소를 포함하여 오브제, 사물로써의 숲을 함께 품고 있다. 여러 가지 구성요소가 조합되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파노라마와 더불어 명료한 이름이 붙어있는, 보다 명징한 숲이 보인다.
임호섭이 이번 전시에서 전개하는 ‘PF(Painted Forest) 시리즈’는 단단한 엮임으로 이루어진 장력을 발산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풍경으로써의 숲이 아니라, 건축적이고 기념비적인 하나의 조형물로 인지된다. 애초에 이 작업은 작가가 실행했던 설치 작업에서 파생되었기에 원본의 입체 작업이 지닌 덩어리감을 포용하고 있다. 입체가 평면의 회화로 변형되는 이 과정에서 서로 얽혀있는 가지와 줄기의 연결 구조가 나타난다. 이 숲은 자연의 대상으로부터 시작해 눈과 빛이 닿는 자리에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관찰에서 재현과 표현으로 귀결되는 방식이 아니라, 관찰과 해석을 거쳐 중첩과 편집의 과정으로 완결된다. 흘러가는 시간에 내재된 사물 원본의 형태와 그것을 덮는 색채, 그리고 다음을 상상해 내는 임호섭의 시선이 결합되어 매우 독립적인 도상으로써의 숲으로 발현되고 있다.
# 피부와 몸 사이, 공감각의 숲
임호섭의 숲은 매우 단단하고 묵직하다. 개체가 모여 집합이 되는 구성 방식이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고 견고하게 엮여있는 응축된 형태의 숲이다. 그의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격자의 패턴이 드러나는데, 이는 작품의 단단한 구조를 설명해 준다. 작업의 진입 단계에서 작가는 일정한 규격으로 실타래를 풀어 가로와 세로선이 교차하는 격자의 패턴을 설계하는데, 두께감이 있는 이 실은 캔버스 직물 위에서 반복되는 프레임을 형성한다. 이는 마치 건축물의 철근이나 기둥이 콘크리트의 경화 과정에서 구조적 안정성을 제공하는 것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이 격자의 구조 안에서 작가의 손은 물감을 통해 작용과 반작용의 반복을 쌓아간다. 실의 두께로 인한 경계는 때로는 붓질에 불편함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평탄한 캔버스와는 다른 붓질의 경로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이 진행되면서 그의 숲은 점차 탄탄해진다. 이 견고함 속에서 매우 뚜렷한 촉각의 숲, 청각의 숲, 후각의 숲이 직조되어 중력과 척력의 시간이 함축된 기념비적 숲이 발현된다. 이윽고 그의 숲은 시선을 넘어서는 공감각적 체험을 제공하는 장소로 기능하게 된다.
# 빛을 향해
대부분의 식물은 땅으로부터 하늘로 줄기와 가지를 뻗는다. 나무의 양분은 땅과 하늘에서 비롯되는데, 특히 잎과 열매를 품고 있는 가지는 하늘 위에 있는 빛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계절에 따라 초록에서 노랑으로, 적갈색으로 변한다. 겨울이 되면, 새하얀 옷을 덮게 된다. 이것을 인간이 경험하는 시간의 흐름으로 빗대어 보면 살아있는 것이 죽고, 죽은 것들이 새로운 생명의 양분이 되는 과정이다. 하지만, 앞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속성은 우리에게만 적용되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시간과 중력, 위와 아래와 같은 개념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기준점일 뿐이다. 광활한 우주의 공간에서는 사방의 구분을 두지 않는다. 대부분의 개념은 두 가지 이상의 개체가 관계하여 만들어낸 사건에 국한되는 이야기다. 이 우주가 만들어내는 물리적인 관점에서 나무를 바라보면 스스로가 원하는 양분을 향해 뻗어가는 유기체다. 땅속 생명들의 양분을 빨아들이는 뿌리를 기점으로 기둥을 통과하여 태양 빛을 향해 여러 갈래의 가지를 뻗어낸다. 이 과정에서 나무는 시간의 표식을 몸속 깊숙이 새기게 된다. 작가 임호섭은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의 몸 안에 새기는 나무와 같이 숲을 통해 경험한 감각을 캔버스 위에 새긴다. 위와 아래를 구분하지 않고, 방향이 구별되지 않는, 풍경과 사물의 경계가 무너질 때 만날 수 있는 총체적 관점에서의 숲이다. 그 숲은 우리가 지닌 피부와 몸 사이를 유영하여 공감각의 숲으로, 지금,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그리고 우리의 눈을 매만지며, 응축된 두꺼운 잔향과 함축된 계절의 소리를 퍼트린다.
3. 전시 서문
자연의 시각적 사고
최서원 /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온갖 동식물이 모여 사는 숲에는 나무들이 가득하다. 해가 뜨고 지면서 자연스럽게 비추어 들어오는 자연광은 숲속 풍경과 어우러지며 근사한 모습을 만들어 낸다. 거대하고 울창한 이파리를 지닌 나무를 보면 언제부터 심어져 자라왔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웅장하다. 그런 나무들이 모이면 각각의 가지가 한데 마주치며 새로운 교집합을 구성하면서 어느 쪽이 근본이고 어디가 말단인지 분간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시각적 형상이 모호해지고 점차 눈에 보이는 것과 스스로 이미 알아 왔던 것에 대한 간극이 발생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은 가지와 이파리, 뿌리에 내려앉을 때 저마다 다른 조화를 이루며 자연물과 함께 새로운 모습을 자아낸다. 임호섭 작가는 우리가 어떠한 대상을 응시할 때 대입하는 무의식적인 사전 정보와 실재 현상 속 차이에 주목하여 작품으로 구현한다.
작가는 육안으로 접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눈에 비추어지지 않는 것을 작업의 과정으로 착수한다. 매끈하고 부드러운 바탕재를 굳이 사양하고 투박한 표면을 의도한 부분은 안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유동하는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반영하고자 함이다. 숲과 나무를 조성하는 요소들은 예측할 수 없는 기복을 띠며 눈앞의 화면을 추상과 반추상의 장르로 변모하게 한다. 이러한 일련의 순간이 모여 작품의 폭넓은 경계를 만들고 선명하게 보이는 이미지와 불확실한 상(象)의 혼합적 측면을 구축한다. 작가는 격자무늬의 실을 제작하여 화폭 위에 덧대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이 실은 추후 완성될 구상적 형태가 덧대어지는 표면으로 활용되고 물감층이 쌓이면서 자체적으로 단단한 지지대 역할을 한다. 수직과 수평으로 모호한 각도를 명확하게 잡아주는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초기 작업이 끝나면 실이 잘 드러나지 않을 정도가 될 때까지 칠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러한 과정 끝에 캔버스는 매우 러프한 물성을 띠게 된다. 숲의 모습은 물감을 제대로 얹을 수 없을 정도의 상태에서 눈으로 확연히 나타나는 빛깔과 채도를 택하여 비로소 진행된다. 무수한 잎사귀들에 가려지고 감춰지며 그 속에서 노출되는 가지는 기존에 알고 있던 일반적인 형태에서 주변 환경에 동화되어 지속적으로 전이한다. 작가는 사물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뚜렷한 프레임과 그 이면의 사각지대에서 멈추지 않고 단계적으로 변화하는 성질을 직접 관찰한 숲의 사색을 통해 이해한다. 나아가 본다는 것과 안다는 것의 정의를 다시 되새기면서 이러한 일이 서로 다른 특성으로부터 피어나는 모순의 양상임을 인지한다. 작가는 스스로 파악한 물리적 현상을 실의 울퉁불퉁한 요철과 칠을 하는 실천적 행위로 이어 나간다.
작업에서 격자가 만들어내는 칸은 거대한 화면을 점증적으로 채우는 독립적 모습이 되는 동시에 전체를 아우르는 구조가 된다. 부분으로 시작되는 표현은 연장선상에 놓이며 부속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주어진 면적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틀 하나하나를 거쳐 끝나지 않는 서사를 잇는다. 작가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대상 너머의 풍경을 연상하고 관념하면서 고유의 시각적 사고를 작품으로 연결한다. 짧은 시간에 빠른 완성이 가능한 효율적 방식이 아닌 인고의 과정으로 탄생한 작품은 결코 가볍게 판단할 수 없다. 이미지의 단편성을 초월한 화폭은 작가가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을 함축한다. 아울러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숲을 대하는 자세와 깊이 있는 사색의 탐구로 인도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통찰한 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를 이해하고 작품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물성의 감각을 경험해 보기를 바란다.
PF:h8.6w36
oil on linen, 130.3×193.9cm, 2023
PF:h8.6w14.5
oil on linen, 130.3×97.0cm, 2024
PF:h25.9w62.1
oil on linen, 193.9×130.3cm, 2024
PF:h32.3w62.1
oil on linen, 97.0×130.3cm, 2024
PF:h12.9w62.1
oil on linen, 193.9×130.3cm, 2024
PF:h17.3w14.5
oil on linen, 130.3×97.0cm, 2023
3. 작가 노트
PAINTED FOREST (칠해진숲 연작), 2024
해를 적게 받는 북쪽을 향한 숲의 나무들은 조금이라도 해를 더 받으려고 빛 쪽으로 뻗어 나가며 서로 엉키는 모습이 매우 장관이다. 수풀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형은 끝없는 변화의 형태를 만들어 내며 내 주변을 모두 덮을 듯이 다양한 형태를 만들면서 동시에 서로의 색으로 서로의 모습을 가린다. 가지들이 서로를 뒤덮으며 새로운 풍경을 제공한다. 내가 알고있던 가지의 모습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자연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색과 무한한 변화를 이용해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가리며, 내가 알고 있던 나뭇가지/자연의 모습과 눈에 보이는 무한한 색과 형. 즉,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 본다는 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변증이다. 무언가를 볼 때는 이미 알고 있던 관념을 보는 것에 이입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보는 것과 이미 알고 있던 것과는 차이가 만들어진다. 때문에 보는 것은 보이지만 알지 못 했던 것과 보이지 않지만 알고 있던 것의 변증이다.
-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것
작품의 제작 과정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변증 된 시지각적 순간들을 모방한다. 캔버스의 강한 물성은 눈에 보이는 듯하지만 인식되기 어려운 숲의 다변적인 추상적 모습을 표현한다. 이후 숲의 요소들을 구상적 표현법을 이용하는데 물성의 거칠어진 표면은 이미지가 온전하게 표현되는 것을 방해한다. 강한 물성과 숲 이미지의 표현이 서로 얽히고설키는 상태로 공존하도록 했다. 작업의 초반 과정에서 실을 이용한 격자를 만든다. 물성의 표현은 이 격자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칠하고 나면, 표현은 무언가를 그리기에 매우 불편한 거친 상태가 되어간다. 이 격자실은 시멘트와 철근처럼 물성을 강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하며 동시에, 표현하기 불편한 표면의 위치를 표시해 주는 좌표이기도 하다. 이러한 장치는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거대한 숲의 미시적 형태를 관찰할 때의 불완전한 시선처럼, 불안정한 표면의 구상적 상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수 있도록 한 장치이다. 격자를 이용한 표현은 부분적 표현을 연장하며 전체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아직 그려지지 않은 화면 너머를 연상한다. ‘연상’과정은 무언가를 볼 때 보는 것 너머를 상상하는 과정으로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새로운 기억을 만든다. 격자를 이용해 관찰에서 만들어지는 연상의 과정을 제작 과정에 포함시키려고 했고, 완성된 작품은 하나의 풍경을 분할하여 각각 하나의 작품이 됨과 동시에 연상이 가능한 연결된 작품으로 제작했다.
-보는것의 과정
“Painted forest” 연작은 나뭇가지들을 관찰하는 행위를 모방한 과정으로, 작품은 ‘물성이 만들어 내는 표면’과 ‘색에 의한 경계’로 이루어진다. ‘눈에 보이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의 결과물로, 작업이 진행되고 완성되는 회화적 과정에서는 물성과 색의 경계를 통해 표현된다. 형의 경계는 생각처럼 명확하지 않다. 나는 숲을 보며 망설이고 서성이는 걸 좋아하고 숲을 보다 보면 생각하기 위해 잠시 멈춰 있기도 한다. 숲은 보는 것과 사유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만들어지며, 나는 여기서 ‘보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을 구분하면서 숲을 바라보려고 한다. 각각의 뚜렷한 나뭇가지가 있는 걸 알고 있지만, 눈에는 그 뚜렷한 나뭇가지의 경계는 주변 자연물들과 섞여 추상적인 빛의 잔상으로 남는다. 나는 이 두 가지 모순에 집중했고, 이러한 시각적 사고가 칠이라는 행위에서 만들어지길 원했다. 눈에 보이는 숲의 표면성을 회화가 가진 물성으로 칠하여 표현하고, 내가 알고 있던 나뭇가지의 형태는 원색을 칠하여 구현해 냈다. 분명 알고 있는 숲과 닮아 있지만 숲이 만들어내는 추상성을 거친 표현으로 모방하려고 했고. 색의 경계를 이용해 숲의 잔상을 제거하며 가지의 형을 구체화한다.
-칠과 경계
작품은 보는 행위를 통한 사유들이 작품의 결과물이 아닌 작업과정에 포함시키려고 했다. 작업과정은 보는 행위를 해체하고 구조화하여 제작되도록 만들었으며, 작품은 가능한 많은 시간성을 동반하도록 하였다. 작품의 물질성은 칠이라는 행위의 반복이며 물감이 마르는 시간이 포함하기도 한다. 거칠게 칠해진 표면들은 표현을 위한 또 다른 시간을 만들어내며, 불규칙한 표면 위에 다시 불완전한 표현을 위한 물감을 쌓았다. 긴 시간을 들여 만든 작품의 불규칙한 화면은 표현의 과정과 함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사유를 담아내는 시간인듯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한 시간
4. 작가 약력
임호섭│Lim Ho Sub
Email: hohosub84@naver.com
Instagram: instagram.com/neor84
2016 중앙대학교 서양화학과 대학원 졸업
2012 중앙대학교 서양화학과 졸업
개인전
2024 PAINTED FOREST, 갤러리 도스
2023 PAUSED IMAGE, 갤러리 아트 14
2015 가려짐을 보다, 중앙대학교 301 갤러리
단체전
2024 광화문국제아트페스티벌 아시아현대미술청년작가전, 세종문화회관
2024 현대미술제 사라진여름, 아트스페이스 X
2019 DMZ, 문화역서울 284
2019 변방으로부터, 양지리 레지던시
2016 김민정 임호섭 초대 2인전, 비디 갤러리
2013 와일드한강 쿤스트독 프로젝트, 스페이스 난지 & 한강야생탐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