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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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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위에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구멍을 뚫어 그 형태들로 단순화와 반복을 통해 제2의 이미지를 만든다. 반복적인 타공 행위에서 오는 일종의 무위 상태는 새로운 시각의 계기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만들어내는 '큐브'라는 주제가 갖는 기묘한 공간감처럼 작가의 작품 역시 단순히 평면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뚫린 공간 뒤쪽으로 새로운 공간이 확장되어 보는 이의 자유로운 해석을 유도한다.
정혜진의 큐브, 빛의 씨앗을 낳는 시공간




김윤섭 |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미술평론가


“나의 작업은 ‘자연과의 교감’이라는 화두로 일관해오고 있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 시간의 연속성과 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는 우리의 호흡과도 같은 것이다. 일상세계에서 접한 서정적이고 인상적인 다양한 느낌, 기억 등을 함축한 의미들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숨 쉬는 존재의미 자체로써 의미부여를 시도하는 것이다.”



첫 만남
정혜진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2004년 6월이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있었던 ‘아트서울’이란 아트페어였다. 당시 이 아트페어의 캐치프레이즈는 ‘주요 미술대학의 젊고 유망한 작가를 한 자리에 초대한 부스 군집개인전’이었으며, 정혜진 역시 학교를 대표해 추천된 초대작가였다.
돌이켜보면 정혜진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깊은 인상으로 남는다. 블랙 앤 화이트 아니면 간혹 연한 카키색이 기본 바탕색이었다. 주로 흑백의 명도대비가 뚜렷한 화면의 표면에선 오톨도톨 티눈 솟듯 가지런한 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저 멀리 보이는 녹차 밭이거나 방금 가지런히 갈아놓은 밭이랑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살펴봤을 때 비로소 그 오톨도톨한 정체가 뚫린 수많은 점들임을 발견했다.
위에 작가의 말처럼 거의 추상화에 가까운 화면에서 자연의 냄새를 확인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마도 작품의 모티브를 작가 유년시절의 기억에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한 번 쯤은 간직할 법한 어린 시절의 추억. 방학 때마다 찾았던 시골의 정취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에겐 다행히 청년기인 대학생활까지도 친숙한 자연환경의 혜택은 이어진다. 통학 길에 마주치던 밭이랑은 바로 잠시 잊었던 소중한 지난 어린 시절의 향수를 되살려 주었고, 그것은 그대로 작품 속에 녹아들게 된 것이다.

“그림을 통해 제 자신이 농부가 된 마음으로 씨앗을 심고 시간과 빛을 더해 한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작품제목
작품의 제목은 작가의 생각을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단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목의 뉘앙스나 제목이 변화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작가의 생각이나 시각이 어떻게 변모해가고 있는가를 유추해볼 수 있다. 정혜진의 경우 역시 지난 개인전에서 사용했던 작품제목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2004년 개인전에 사용한 작품제목은 ‘전(田)’이었다. 위에서도 얘기했듯 이 시기는 처음 자신의 생각을 내보이는 첫 개인전이어서인지 직설적인 화법이다. 자신이 경험한 기억을 꾸밈없이 가장 편안한 표현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2005년 2회 개인전에선 시각이 좀 더 광의적이고 거시적으로 확장된다. ‘illusion’이란 제목은 단지 환영이라는 의미 이상의 뜻을 내포하게 된다. 자연의 지엽적인 부분이 아니라, 좀 더 확장된 전체를 관망함으로써 한결 넓어진 시야를 보여준다. 2006년의 ‘monologue’라는 대목에선 ‘내면적인 독백’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밭이랑의 형태는 상징적인 역할만 할 뿐 화면은 훨씬 자유로워지며, 안정적이면서도 과감해진다. 이에 반해 이번 2008년 ‘cube’는 다소 변화된 형식이다. 이전의 화법이 밭이랑이라는 조형적인 시각요소에 주목했다면, 지금은 그 밭이랑에 심긴 씨앗을 상징하고 있다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구체화되고 상징적이며 함축적으로 축약된 조형어법이다.
작품의 주요 테마가 자연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첫 개인전부터 이번 네 번째 개인전까지 일관된 요소이다. 비록 이번전시의 ‘큐브(cube)’란 제목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더라도 결국 그 이면엔 그동안의 주제의식이 더욱 농익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의 작품제작과정인 구멍을 뚫는 행위가 곧 씨앗을 심는 농부이며, 오방색의 다양한 색조는 시간의 흐름과 계절로, 타공된 구멍으로 비춰지는 조명의 빛은 대기의 자연 빛, 최종적으로 드러나는 큐브의 형상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이번전시의 작품들은 그동안 품어온 자연에 대한 향수를 가장 적절하고 구체적으로 결집해놓은 것으로 여겨진다.

“반복하여 뚫는 행위는 일종의 무위(無爲)상태에 접근하여 선(禪)을 행하듯이 마음을 비워내어 심적 평정상태에 이르게 한다. 결국 의식의 집중과 몰입으로 유도되어 고요한 마음을 갖게 하고 무념(無念)의 상태는 내면의 깊이와 공간 확대를 가져와 외부로 향하였던 의식을 안으로 집중시켜준다. 이렇듯 반복되는 행위는 무의식적 상념들을 넘나들다가 어떤 진공(眞空) 상태를 경험하고, 무아(無我)의 세계를 체험하게 한다.”



점의 의미
불교의 정신수행법에 절을 하는 행위를 으뜸으로 삼는다. 단순히 육체적인 노동의 결과로써 운동효과를 얘기하기도 하지만, 진정한 묘미는 수없이 반복되는 행위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 때문일 것이다. 흔히 108배 내지 1천 배까진 경험한 이가 많다. 하지만 3천, 6천 혹은 1만 배까지 이른 경우는 매우 드물다. 보통 절을 하면서 육체적인 고통의 한계는 2천 배를 넘어서는 순간이다. 하지만 3천 배를 넘게 되면 육체는 무감각해지고, 5천 배가 넘어서면 육체와 정신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7천 배를 넘어서는 내면의 자아를 관조하는 단계에 이른다.
정혜진의 점 역시 불교의 정신수행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점은 이미 공간이 응축된 소우주이며, 시작이고, 출발이다. 또한 그 미세한 통로를 지나면 한없이 펼쳐진 확장된 공간을 만나게 된다. 완벽을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자연스런 손맛을 살리는 독창적인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정혜진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점을 만들어내는 방편이다. 작가는 화면의 앞쪽에서 뒤쪽으로 붓으로 점을 찍듯 뚫는 것이 아니라, 뒷면에서 앞쪽을 향해 송곳같이 예리한 도구로 밀어내며 구멍을 낸다. 이는 마치 동양화의 전통 채색기법인 배채법을 연상시킨다. 이 채색법은 종이 밑면에서 앞면으로 배어나오게 채색하는 방법으로써, 작가의 인위적인 행위에 화면의 자연스런 응대를 함께 조율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방향성은 지난 과거로부터 출발해 현재를 관통하여 끝없는 미래로 확장하는 것과도 비교될 수 있겠다. 따라서 화면의 뒤쪽에서 밀어내듯 뚫어낸 구멍들은 비록 평면이란 한계를 지닌 화면이지만 그 타공을 통해 또 다른 3차원적인 공간을 재생성하는 것과 같다.
표면에 요철로 두드러진 제각각의 점들은 준법으로 비유하자면 미점(米點)준에 가깝다. 흔히 미점준은 쌀알을 화면에 톡톡 올려놓거나 쌓아가는 것처럼 조그만 점들을 반복해서 찍는 행위를 말한다. 그렇게 볼 때 정혜진의 점들은 이미 심겨진 씨앗들이 굳은 땅을 비집고 또렷하게 새싹을 틔우고 있는 형국이다. 마치 점점이 흩어진 씨앗들이 뿌리를 내리고 창공에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순간들을 보는 듯하다.

“이번 전시주제는 ‘큐브’이다. 큐브의 공간에는 결코 안과 밖이 없으며 입구 또한 출구이고 출구 또한 입구이다. 겉으로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결코 그렇지 않다. 각 조각의 모양을 자세히 관찰하고 조각 상호간의 관계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입체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하며, 그 조각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결합해보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는 과정에서 제2의 이미지가 재구성되고 생성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점과 큐브
정혜진의 이번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들은 큐브의 형상을 담고 있다. 기본적인 패턴은 작은 원형이 반복되고 있지만, 그 원점을 관통한 무형의 선들은 서로 만나 정육면체의 큐브 입방체를 만들게 된다. 다시 말해 모든 기본적인 도형은 점으로 시작해 선을 만들고 면이 되며, 그 면은 모여 입방체를 만든다. 또한 자연의 모든 물상은 거시적으로 볼 때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따라서 아무리 다양한 형상을 지녔다 하더라도 결국 하나의 점으로 환원되고야 만다. 정혜진의 이번 큐브 작품들은 이러한 자연의 순리를 아주 간결하면서도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정혜진의 점들은 점차 입체화 되고, 시각 또한 자신의 내면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각각의 도형들은 아주 작은 공간의 집합체이다. 2차원적인 평면이면서도 다차원적인 무한공간으로 향한 수많은 소실점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결국 정혜진의 ‘큐브(cube)’는 회귀이자 순환이다. 또한 그녀의 큐브는 지난 시간의 흔적이나 기억을 담은 캡슐이며, 마음의 방점이다. 그리고 그 방점은 비쳐진 빛으로 비로소 완성된다. 빛의 기운을 발산하면서 큐브의 진정한 매력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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