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본질로서 회화의 매력을 오직 저자의 눈으로 정립한다. 그를 흔든 서양미술사의 51점 그림은, 미술사에서 익숙한 거장부터 데이비드 호크니처럼 현재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작가까지 다양하다. 대표작 1점에 집중한 해설은,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대화하고 영향을 주는 원형적 미술사를 함께 읽게 한다.
책소개
1세기경 로마시대 프레스코화부터 21세기 키키 스미스의 〈하늘〉까지
서양미술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51점의 회화작품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등으로 활동하며 34년 동안 현대미술의 이론과 현장을 두루 살핀 박영택 경기대학교 교수의 정수가 담긴 책 『오직, 그림』이 출간되었다. 서양미술사에서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회화작품 51점을 박영택 저자의 유려하고 섬세한 감상과 함께 소개했다. 현대에 접어들며 미술의 매체는 다양해졌다.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뿐 아니라 설치미술, 영상 작업 등도 주요한 미술의 갈래가 되면서 ‘회화의 종말’이 꾸준히 대두되었다. 『오직, 그림』은 미술의 본질로서 회화의 매력을 정립한다.
저자는 미술평론가로서 자신을 깊이 뒤흔든 작품들을 골랐다. 『오직, 그림』에는 서양미술사를 혁신한 그림 51점이 수록되었는데, 렘브란트, 반 고흐, 피카소처럼 국내에 널리 알려진 화가의 작품과 장 앙투안 바토, 모리스 위트릴로, 막스 베크만처럼 비교적 생소한 화가의 작품이 나란히 담겨 호기심을 자극한다. 키키 스미스, 게르하르트 리히터, 데이비드 호크니처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당대의 작가들의 작품도 책에 실려 있다. 회화의 가능성이 소진된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새로운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캔버스에 담아내는 이들의 시도는 그 자체로 신선한 영감을 준다.
『오직, 그림』은 미술 애호가의 컬렉션이기도 하다. 박영택 저자의 소개를 따라 천천히 한 작품씩 응시하다 보면, 그림을 사랑하는 저마다의 이유를 새삼 되새기면서 자신만의 컬렉션을 꾸려보고 싶어질 것이다.
모든 이미지는 대상에 대한 감지와 관찰로부터 솟아오른다. 보는 것에서부터 이미지는 시작한다. 그러나 본다는 것은 단순히 망막에 비치는 상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직관과 경험, 기억과 연상, 감각기관의 접근과 개화에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까 본다는 것은 인식하는 일이고 깨닫는 일이며 몸 전체가 반응하는 일이다.
_141쪽
이 그림만은 꼭 알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사려 깊은 통찰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는 그림의 역사
『오직, 그림』에는 시대와 화풍을 아우르는 작품들이 실려 있다. 1세기경 로마에서 제작된 프레스코화부터 시작해 르네상스, 바로크와 로코코를 거쳐 사진의 등장 이후 회화를 혁신한 인상주의, 입체파, 추상표현주의 등의 사조가 이어진다. 각 시기를 대표하는 그림들을 역사순으로 따라가다 보면 회화의 변화 양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르네상스 이후 화가들은 실제 모습과 유사한 이미지의 재현을 목표로 한다. 한 인간의 얼굴을 고스란히 포착한 벨라스케스의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화〉(1650)와 시대의 풍속을 보여준 장 앙투안 바토의 〈제르생의 간판〉(1721)이 그 사례다. 그러나 1839년 사진이 발명되면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의 의미가 사라진다. 이후 반 고흐의 〈아를에서 그린 자화상〉(1888), 에드바르 뭉크의 〈붉은 집〉(1890)처럼 실재하는 대상을 감정이라는 프리즘에 통과시켜 표현한 작품들이 등장한다. 세잔과 피카소는 하나의 화면에 여러 관점을 종합하기 시작한다. 사진의 등장 이후 재현에서 표현으로,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화하던 회화는 마크 로스코의 색면추상 작품 〈무제〉(1964)에서 방점을 찍는다.
이 책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간다. 프랜시스 베이컨, 데이비드 호크니처럼 추상화라는 회화사의 흐름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구상화를 시도한 작가들을 소개한다. 키키 스미스, 안젤름 키퍼처럼 회화작품 안에 신화적인 형상을 개입시키는 작가들도 이야기한다. 『오직, 그림』이 전하는 서양미술사는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선형적인 역사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원형적인 역사다. 박영택 저자는 그 대화를 귀담아 들은 뒤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회화란 단순하게 말해 평면에 환영을 주는 장치다. 회화의 개념은 매 시기마다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고 당대의 테크놀로지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삶을 부여받는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치면서 회화는 사실상 무력해졌다. 구상과 추상회화란 이미 과거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회화는 죽지 않고 매번 새롭게, 다르게 출현해서 다시 살아날, 그리고 죽어갈 기회를 엿본다.
_417쪽
오래 그리고 깊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우리가 그림을 사랑하는 이유를 증명하다
박영택 저자는 한 그림을 오래 관찰한다. 구석에 있는 작은 붓 터치 하나조차 놓치지 않는 끈기와 세심함으로 그림의 이면을 밝혀낸다. 『오직, 그림』은 긴 시간을 들여 바라봤을 때에만 감지할 수 있는 작품의 속삭임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조토의 프레스코화 〈애도〉(1304~1306)에서는 그림의 구도와 인물들의 배치를 살피면서 예수의 시신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끌어낸다. 마네의 작품 〈폴리베르제르의 술집〉(1882)에서는 그림 우측에 배치된 두 인물의 미묘한 형상을 통해서 그림의 의미를 확장한다. 조르조 모란디의 〈정물〉(1954)에서는 고요한 사물들 틈에서 미묘한 어긋남을 발견하고, 루치안 프로이트의 〈푸른색 발톱을 가진 플로라〉(2000~2001)에서는 그림 하단에 그려진 그림자를 통해 성적인 뉘앙스를 포착한다.
훌륭한 그림이란 말을 거는 그림일 것이다. 그림은 분명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으며, 그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그 그림은 진정 살아 있는 그림이 된다.
_159쪽
르네상스 때까지만 해도 회화작품은 성당이나 왕궁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귀한 것이었다. 그러다 캔버스가 발명되고 복제품이 퍼지면서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되었고, 회화가 지니던 신비로움은 옅어졌다. 『오직, 그림』은 이차원 평면 위에 물감이 얹어졌을 때 삼차원의 구체적 대상 혹은 추상적인 감정이 살아나는 회화의 마법 같은 매력을 복원한다. 박영택 저자의 풍부한 회화 컬렉션은 독자들에게 왜 자신이 그림을 사랑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지은이 | 박영택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뉴욕 퀸스미술관에서 큐레이터 연수를 마쳤다. 10여 년간 금호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했다. 1999년부터 현재까지 경기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 현대미술, 작품 분석, 전시 기획, 전시 분석 등을 강의하고 있다. 1991년부터 미술평론을 시작해서 그동안 다수의 전시 리뷰와 서문, 칼럼 등을 썼고, 60여 개의 전시를 기획했다. 제2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 아시아프 전시 총감독, 강정 대구현대미술제 총감독, 여수국제아트페스티벌 전시감독, 대구예술발전소 개관 기념전 전시감독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2001), 『식물성의 사유』(2003), 『애도하는 미술』(2014),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도』(2014), 『민화의 맛』(2019), 『앤티크 수집 미학』(2019), 『삼국시대 손잡이잔의 아름다움』(2022)을 비롯해 모두 23권의 저서와 6권의 공저가 있다. 논문으로는 「박정희 시대의 문화와 미술」 「송현숙의 서체적 추상회화 분석」 「오인환의 ‘나의 아름다운 빨래방 사루비아’ 작품에 나타난 관객참여와 정체성에 관한 연구」 등 25편이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 세화문화재단 이사, 아트페어 평가위원, 정부 미술품 운영위원 등을 맡고 있다.
목차
책머리에
1 물리적인 벽을 환영적 공간으로 만드는 시선 : 작가 미상, 〈꽃을 들고 있는 처녀〉
2 입체적인 환영의 길을 열다 : 조토 디본도네, 〈애도〉
3 현재의 시간으로 살아 돌아오는 얼굴 : 로베르 캄팽, 〈여인의 초상〉
4 신의 무한성과 마주하는 인간 :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5 타자의 응시가 남긴 ‘얼룩’ : 한스 홀바인, 〈두 대사〉
6 거대한 색상 덩어리로 빚어내는 형상 : 티치아노 베첼리오, 〈자화상〉
7 부정할 수 없는 개인성 : 엘 그레코,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
8 빛과 어둠의 환상적인 조합 : 카라바조, 〈엠마오의 저녁 식사〉
9 사물을 사유하게 만드는 그림 :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컵 속의 물과 장미〉
10 마법처럼 감각적인 그림 : 디에고 벨라스케스,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화〉
11 빛나는 여자의 목덜미와 진줏빛 드레스 : 헤라르트 테르보르흐, 〈인물들이 함께 있는 내부〉
12 살아 숨 쉬는 사물의 현존성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
13 얼굴에 내재한 삶의 굴곡과 주름 : 렘브란트 하르먼스 판 레인, 〈두 개의 원이 있는 자화상〉
14 아름다움의 환상 속에 깃든 슬픔 : 장 앙투안 바토, 〈제르생의 간판〉
15 재현될 수 없는 눈과 마음 : 프란시스코 고야, 〈알타미라 백작 부인과 그녀의 딸, 마리아 아구스티나〉
16 신비스러운 자연의 정령 : 카미유 코로, 〈빌 다브레〉
17 세계의 찰나성과 우연성 : 에드가 드가, 〈리허설〉
18 아름다운 색채의 향연 :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
19 공간의 물질적 속성들을 이용하고 작동시킨 화가 : 에두아르 마네,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20 자기 안의 것을 끄집어내는 강력한 힘 : 빈센트 반 고흐, 〈아를에서 그린 자화상〉
21 풍경을 통해 느낀 감정의 동요 : 에드바르 뭉크, 〈붉은 집〉
22 자연과 지각의 관계에 관한 회화 : 폴 세잔, 〈양파가 있는 정물〉
23 현상으로부터 해방된 색채 : 알베르 마르케, 〈그랑 오귀스탱 강변 길〉
24 대상의 형식을 재현한 그림 : 파블로 피카소, 〈여인의 흉상〉
25 세계를 순진하게 보아야 한다는 진실 : 앙리 루소, 〈방브 수문 좌측의 방어 시설 경관〉
26 덧없는 도회지에서의 삶의 풍경 : 모리스 위트릴로, 〈방리외 산누아 거리〉
27 색채를 물고 있는 실내 풍경 : 앙리 마티스, 〈붉은 작업실〉
28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는 작업 : 파울 클레,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
29 지적이고도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이상적인 남자 : 막스 베크만, 〈턱시도를 입은 자화상〉
30 빛과 함께 건져 올려지는 범속한 사물 : 피에르 보나르, 〈정원이 보이는 식당〉
31 불길한 욕망이 항시적으로 머릿속을 지배하는 인간 존재 : 발튀스, 〈테레즈 몽상〉
32 오염되지 않은 지각의 옹호 : 장 뒤뷔페, 〈지구 파편〉
33 색채와 마티에르의 대조와 충돌 : 세르주 폴리아코프, 〈흰색과 빨강, 파랑〉
34 처소 없는 재현 : 빌럼 더코닝, 〈여인 5〉
35 절박한 몸부림에 가까운 붓질 : 필립 거스턴, 〈페인팅〉
36 질료와 형상, 붓질과 색채 사이에서 진동하는 그림 : 조르조 모란디, 〈정물〉
37 재현과 추상의 경계를 문질러버리는 그림 : 리처드 디벤콘, 〈앉아 있는 남자〉
38 불확정성으로 이루어진 선의 운명 : 사이 트웜블리, 〈파노라마〉
39 화면의 평면성과 한정된 테두리에 대한 인식 : 프랭크 스텔라, 〈게티의 무덤〉
40 추상적 숭고를 안기는 화면 : 마크 로스코, 〈무제〉
41 시각 세계에 매료된 그림 : 데이비드 호크니, 〈일광욕하는 남자〉
42 전적으로 비표상적인 회화 : 로버트 라이먼, 〈무제〉
43 자신의 내면을 시각화하는 알레고리 : 아그네스 마틴, 〈무제〉
44 전통적인 존재론에 질문을 던지는 얼굴 : 프랜시스 베이컨, 〈자화상을 위한 연구 CR 86-02〉
45 사물이 되어버린 이미지 : 앤디 워홀, 〈레닌〉
46 집단 기억의 망각과 왜곡에 대한 시각적 은유 : 게르하르트 리히터, ‘1977년 10월 18일’ 연작 중 〈총살당한 남자〉
47 의미 작용으로 환원되지 않는 새로운 것의 출현 : 안젤름 키퍼, 〈떨어지는 별들〉
48 리비도와 에고 사이에서 부침하는 유약한 인간 : 루치안 프로이트, 〈푸른색 발톱을 가진 플로라〉
49 텍스트에 걸려들지 않는 낯선 얼굴 : 뤼크 튀이만, 〈루뭄바〉
50 우리의 일상적인 비전과의 투쟁 : 빌헬름 사스날, 〈카퍼와 리타〉
51 신비스럽고 성스러운 분위기 아래 연출된 태피스트리 : 키키 스미스,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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