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전시 참여작가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으로 하여금 작가의 작품 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2024 9.7 - 12.1
데이비드 누난: 어둡고 조용한 무대 뒤편으로의 초대
박이정
짧은 복도를 지나 들어선 전시 공간의 중앙에는 뒤통수에 가면을 쓰고 다리를 양옆으로 찢은 누군가의 모습이 보인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머리가 돌아간 것인지 뒤통수에 가면을 쓴 것인지 알 수 없고 다리를 찢은 채로 손목을 꺾은 불편한 자세는 기괴하게 다가온다. 그 왼쪽으로는 가위를 들고 공연자의 모자를 손보는 공연 스태프의 모습이 보인다. 수도승처럼 손을 합장한 공연자는 공연 전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는 듯하다. 그 맞은편에는 한 명의 공연자를 사이에 두고 두 명의 공연 스태프가 그의 모자를 손보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 모자의 챙을 만지기 위해 팔을 높이 들어 올린 여성 스태프의 자세와 무표정한 얼굴은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 세 작품은 큰 크기와 흑백의 강렬한 대비로 인해 음산한 기운을 한층 더 강화한다. 지시하는 바를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인물들의 표정, 그리고 그 무표정마저도 보여주길 허용하지 않는 가면과 중첩된 이미지는 씨실과 날실로 켜켜이 쌓이며 작품 읽기의 어려움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광주비엔날레 본 전시관 갤러리 1 ‘Feedback Effect’에 설치된 데이비드 누난(David Noonan, 1969-, 호주)의 세 점의 태피스트리 <무제 Untitled>(2021-2023)는 첫눈에 공포로 다가와 모든 감각을 곤두서게 만든 후, 관객을 고요한 사색의 순간으로 초대한다.
1969년 호주 남부 빅토리아주에서 태어난 누난은 발라렛 대학교(Ballarat University)에서 학사 과정을 마치고 멜버른의 빅토리아 예술대학(Victorian College of the Arts) 회화과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2001년 영국으로 이주한 누난은 현재 런던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고 있으며 호주에서 가장 중요한 동시대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1) 누난은 태피스트리, 실크스크린, 영상, 조각 오브제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작품을 제작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맥락에서 떼어낸 사진 이미지를 결합한 콜라주를 모든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주제적, 형식적으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콜라주는 구상과 추상 사이, 비선형적인 시간 감각, 모호함과 모순의 공간을 조명한다. 누난은 콜라주가 읽히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의미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그 자체를 작품의 주제로 채택한다. 그의 콜라주는 관객에게 작품의 내용을 설명하거나 이해시키고자 하지 않고 그저 다양한 서사를 암시할 뿐이다. 누난의 작품 대부분이 무제로 제시되는 것 또한 제목을 붙이지 않음으로써 작품에 대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반응을 장려하기 위함이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누난이 사용하는 사진은 사실적이지만 배경은 추상적이고, 사진을 합성하는 과정은 현대적이지만 최종적인 짜임의 과정은 전통적이다. 그는 보통 짙은 화장과 과장된 의상으로 정체성이 모호하게 표현된 인물의 사진을 콜라주의 기본 재료로 선택하는데, 이러한 정체성의 은폐는 누난이 사용하는 전통적인 실크스크린 전사 기법과 수공예 태피스트리 방식을 통해 더 분명히 전달된다. 하나의 층 위에 다른 층을 쌓는 과정을 포함하는 실크스크린과 태피스트리는 형식적으로 모호함과 은폐라는 주제를 뒷받침한다. 즉, 재료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치고 함께 작용하는지 탐구하는 그의 작업은 주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시각적, 물질적으로도 서로 조응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누난의 작품은 거대한 패치워크 시트와 실물보다 더 크게 확대한 인물의 사진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의 작품에서 중심이 되는 이미지는 무용수, 배우, 혹은 공연자이다. 그는 분장 중이거나 공연 중인 사람들의 모습을 맥락에서 떼어내 파편으로 만든 뒤 이를 결합하여 새롭게 제시한다. 이러한 은폐, 변장, 그리고 다른 페르소나의 채택 과정은 추상표현주의를 참조한 배경 이미지와 겹쳐 시공간의 감각을 흐리게 만드는데 특히 흑백으로 선보인 작품은 1960-70년대 흑백 영화의 낭만적인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며, 모호하게 잘려 제시된 공연의 일순간은 모자 달린 망토 의상이나 광대 같은 분장으로 인해 제의의 순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누난의 작품 속 파편화된 이미지, 암시적인 특성, 사진의 역사적, 문화적 참조, 특히 ‘연극’과 관련된 이미지의 복잡한 층은 관객에게 무의식의 영역을 연상시킨다. 특히 부엉이, 무대 뒤편, 기괴한 가면은 주술적이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불어 넣는 반복적인 모티브로 사용된다.
그의 작품 속 이러한 분위기의 원천은 미술사의 선례를 참조하고 있다. 누난은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의 개념적인 행위 예술에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보이스는 <나는 미국을 좋아하고 미국은 나를 좋아한다 I like America and America likes me>(1974), <플럭서스 시베리아 심포니 제1악장 Fluxus Siberian Symphony, First Movement>(1963) 등에서 주술적 성격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는 펠트, 지방, 토끼에 보호, 치유, 생명, 부활이라는 의미를 부여했고, 서구 이성 중심의 합리적 사고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써 영적인 힘을 강조하고 자연과 밀착된 신비로운 삶을 제안했다.2) 보이스가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정답이 정해진 미술작품 그 자체가 아니라 스스로 주술사(shaman)가 되어 사물/동물을 하나의 존재에서 다른 존재로, 혹은 죽음에서 삶으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누난이 2021년 제작한 영상 작업 <므네모시네 Mnemosyne>는 그리스 신화 속 기억의 신 므네모시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우울한 음조의 배경 음악과 부유하는 추상적 이미지를 통해 죽은 자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죽은 자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표현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연,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과 무용수, 거리의 행진은 축제 혹은 제의를 연상시키고 흘러가는 구름은 영혼이 떠다니는 것처럼 기묘하면서도 그리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누난은 “자신이 사용하는 사진은 특정 주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암시적이거나 분위기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즉, 그의 작품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 서사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등장인물이 누구인지, 이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것” 그 자체이며 이성적인 사고로 파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것이다.3)
이 지점에서 누난의 작품은 보이스를 넘어 다다의 포토몽타주와 초현실주의를 상기시킨다. 기존의 이미지를 결합하여 작품을 제작하는 콜라주는 입체주의 작가들이 화폭 위에 여러 이미지를 결합해 붙였던 파피에콜레에서 시작되었고 다다를 통해 포토몽타주로 발전하였다. 베를린 다다의 포토몽타주는 의도적으로 선택한 이미지를 조합하고 합성하여 정치적인 메시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누난의 작품은 포토몽타주와 같은 직설적인 정치적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콜라주는 조형적인 면에서 서로 관계가 있는 공연 사진을 결합하여 새로운 현실을 만들고 비유적, 상징적 의미를 생산하는 초현실주의와 더 맞닿아 있다.
누난의 작품은 분명히 사람의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 ‘같은’ 인형이나 마네킹을 보는 듯한 섬뜩함(uncanny)을 느끼게 한다. 그의 작품은 과장된 뉘앙스를 풍기는데, 이는 실험 연극에서 모호하게 잘려 나간 공연의 짧은 순간을 포착한 사진에 강박적으로 집중하기 때문이다. 누난의 작품 속에는 짙은 화장을 하고 성적으로 모호한 정체성의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초현실주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의 영향을 받았지만 정신분석학의 치료 개념과 정상성의 기준을 거부했다. 오히려 이들은 성적인 욕망을 무의식 속의 구속되지 않은 에너지이자 창조적인 힘으로 인식했다.4) 누난은 초현실주의자들이 그랬듯, 전통적인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위반과 변형에 관심을 두고 이를 수행하는 방식을 가면과 옷, 화장, 연극에서 찾는다.
만 레이(Man Ray, 1890-1976)의 기념비적인 사진 <(에)로즈 셀라비 Rrose Sélavy>(1921)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상상적 타 자아(alter-ego)인 (에)로즈 셀라비(Rrose Sélavy)를 찍은 사진이다. 여기서 만 레이와 뒤샹은 성별 규명의 불안정성을 통해 고정된 성 정체성의 원칙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사진은 초현실주의의 무의식과 욕망 탐구를 위한 가장 유익한 매체였다. 또 다른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클로드 카훈(Claude Cahun, 1894-1954)은 포토몽타주를 통해 사회적으로 부과된 여성적 또는 남성적 정체성의 가면을 의도적으로 채택하고 이를 벗겨내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카훈은 자서전적 성격의 책 『취소된 고백 혹은 부인 Cancelled Confessions or Disavowals』(1930)의 삽화 사진에 “이 가면 아래에 또 다른 가면이 있다. 나는 이 모든 얼굴을 벗기는 것을 결코 끝내지 못할 것이다”라고 적었다.5) 과연 무엇이 현실이고 그 심연에 숨겨져 있는 것은 무엇인가? 누난은 뒤샹과 카훈의 사진이 그러하듯 가면 아래 숨겨진 무의식의 영역을 건들어 정상성과 규범을 흔든다.
누난이 선택하는 이미지는 연극의 일부분, 대기실과 같은 중간 순간이며 그가 세운 규칙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는 얼굴 사진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피사체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의미가 더는 모호하게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되기 때문이다. 한때는 즉각적으로 파악되었던 이미지들은 누난의 작품에서는 불투명하게 표현되며 색 또한 제거되어 오로지 흑과 백으로만 구성된 작품은 소리를 제거한 듯이 주변을 고요하고 얼어붙게 만든다.
영국의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는 자신이 공포 소설에 천착한 이유 중 하나를 공포와 미스터리가 독자를 일순간에 사로잡고 그 자리에서 바로 글을 읽어 내려가게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누난의 작품도 그러하다. 그의 작품은 외상과 죽음의 이미지까지 나아가지는 않지만, 종종 죽음을 암시하며 음산한 분위기는 관객을 작품 앞에 얼어붙게 만든다. 무대 배경, 인형 의상, 공연자, 가면은 분명히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얼어붙은 관객은 콜라주 된 사진의 지시성과 지시 불가능성 사이의 모순 위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답은 없다. 그러나 누난의 작품은 현실(사진)의 객관성과 읽기의 주관성이 맞닿는 지점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중간 세계의 어떤 지점을 비춘다. 그럼으로써 관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난이 초대하는 무대 뒤 공간에 이끌려 그 세계를 부유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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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이정(1995-) yijeong0111@ewhain.net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석사 과정 재학 중. 1970년대 이후의 다원화된 미술의 지형에 관심을 두고 있다.
1) 데이비드 누난은 현재 영국에서 영주권자로 거주하고 있으며 팔레 드 도쿄를 비롯한 유수의 미술관에서 개인전 및 그룹전을 진행했다. 2008년 제7회 광주비엔날레에 처음으로 참여한 후, 올해 열린 제15회 광주비엔날레에 두 번째로 참여하게 되었다. 자세한 정보는 그의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작가 홈페이지 https://davidnoonan.art/biography 인스타그램 @d.j.noonan)
2) 김재원, 김향숙, 「요셉 보이스의 유토피아와 그 (정치적) 실현을 향한 여정」, 『현대미술사연구』 24 (2008): 151.
4) Jennifer Mundy, Surrealism: Desire Unbound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1), 30.
5) 앞의 글, 196.
데이비드 누난(David Noonan), <무제 Untitled>, 2021-2023, 광주비엔날레 전시 전경 ©사진: 최명진 제공
데이비드 누난, <무제 Untitled>, 2023, Jacquard Tapestry 195 x 290cm, Anna Schwartz Gallery, Melbourne ©사진: 김아정 제공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