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커뮤니티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추천리뷰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미술사와 비평][GB24] (13) 도라 부도르 Dora Budor

심하린

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전시 참여작가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으로 하여금 작가의 작품 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2024 9.7 - 12.1


도라 부도르의 도시 탐구: ‘비장소’와 소외된 목소리들


심하린

“책에 의하면 그리하여 미래의 어느 날 인간은 저절로 자연스러운 기계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재라는 시간은 이미 그 미래의 일부이며, 자연적인 토양과 직접 교통할 영혼이 없는, 혹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기계적 생물체의 최초 단계가 바로 ‘도시인’인 것은 아닌지.”1)

1.

현대 도시는 생산과 소비의 공간임과 동시에 환상을 제공하는 복합적인 장소다. 이러한 소비주의적 공간에서 오늘날 도시인들은 길을 잃고, 넘쳐 나는 보상심리 해소용 상품 속에서 허우적댄다.2)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일명 ‘비장소(non-place)’로 일컬어지는 곳에서 보다 부각된다. 

일찍이 프랑스 출신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é, 1935-2023)는 현대 사회에서 주로 이동이나 소비를 위해 설계된 익명적이고 일시적인 공간을 ‘비장소’로 정의한 바 있다. 이를테면 테마파크, 쇼핑몰, 공항, 고속도로 등은 그 안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서로 다른 경험들이 기계적으로 반복되며 개인의 존재가 단순히 소비자나 통과자로 축소되는 대표적인 ‘비장소’로 꼽힌다. 이곳을 이용하는 이들은 먼저 자신의 신원을 제시해 그 공간과의 계약 관계를 확인한 뒤 익명성을 획득한다. 또 ‘비장소’ 안에서 이용자들의 행위는 “줄을 서시오”와 같은 지시문을 따르는 것으로 통제된다.3) 그 결과 ‘비장소’에서 사람들은 서로 비슷비슷한 평균적 인간으로서 일시적인 정체성만을 부여받게 되며, 이들은 특별한 관계 맺음 없이 군중 속의 고독으로 침잠한다. 결국 테마파크와 대형마트, 고속도로와 공항 등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장소들이 곧 통과하는 곳, 소비하는 곳, 그리고 서로를 소외시키는 곳이라는 점이다.

이렇듯 상품화가 지배하는 스펙터클의 ‘비장소’들은 도시 경관이 현대성과 편의성을 갖출 수 있도록 만드는 한편 여가·소비·관광 등 삶을 향유할 수 있는 문화 요충지로 거듭날 수 있다는 기대를 받으며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삶에 대한 정치적인 규제가 함께 작동하는 공간이 바로 ‘비장소’라는 점 또한 주지되어야 한다. 오늘날 자본이 ‘비장소’의 생성 및 유지에 깊이 관여한다는 점에서 이곳에 감추어진 정치권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도시경관은 사회적 생산물이고 인공적인 공통재이다. 따라서 이들이 작동하는 공간은 누구나 참여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공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4) 그러나 이러한 공공 공간은 흔히 자본축적 과정에 포섭되어 사적으로 전유 되면서 도시인들이 소외되는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비장소’로 점철된 도시경관이 단순히 스펙터클한 장소로 이해될 것이 아니라, 여기에 구체적인 정치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 조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공간이 권력관계를 내포한 중요한 사회적 장치임을 목도하게 해주는 행위는 도라 부도르(Dora Budor, 1984-, 크로아티아)의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2.
크로아티아 출신의 예술가 도라 부도르는 현재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대도시 환경과 그 속의 심리적 통제 구조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공원, 테마파크, 놀이동산 같은 공간이 어떻게 ‘비장소’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도판 1]. 일찍이 건축학을 공부한 경험에서 비롯하여 그는 건축물을 사회 구조적인 시스템으로 인식하며 이를 해체하는 정치적 실천에 몰두하고 있다. 요컨대 도시 공간을 그저 물리적인 장소로 보지 않고, 그것이 생산하는 사회적 통제와 권력의 논리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며,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공간의 이면에 숨겨진 갈등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현대 도시 환경에서 산업화와 도시 재개발 과정이 전개되며 도시인들이 겪고 있는 소외, 젠트리피케이션,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문제를 반영하며, 이에 대한 비판적 논점을 확립하도록 유도한다. 

3.

2024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에 출품된 도라 부도르의 <수동적 레크리에이션>(Passive Recreation)(2024)은 강 위에 축조된 독특한 형태의 초록 빛깔로 뒤덮인 인공섬을 촬영한 영상과 그 앞에 설치된 회전식 방목 휠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이 영상은 뉴욕 허드슨강 위에 지어진 리틀 아일랜드(Little Island)라는 공공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리틀 아일랜드는 과거에 산업적 장소로 이용되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옛 55번 부두를 민간 자금을 통해 2021년 재탄생한 공원으로 야외 휴게 공간, 놀이터, 공연장, 전망대 등을 갖춘 랜드마크로 탈바꿈된 곳이다. 이 공원은 자연과 예술이 결합된 이상적인 공간, 다시 말해 픽처레스크적인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또한, 관광객과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위한 피상적인 여가 장소이자 이미지 생산의 원천으로써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도록 고안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이 공원을 디자인한 영국의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은 인근에 위치한 하이라인(High Line)을 참조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이라인은 포스트 산업 시대의 방치된 철로를 재개발하며 뉴욕의 인기 관광지로 거듭난 곳이다. 그 경로를 따라 엄청난 고부가가치가 창출되며 근처 부동산개발이 활발하게 되었다는 점을 염두 했을 때, 리틀 아일랜드 또한 산업 시설의 관광자원화를 통한 지가 상승이라는 맥락을 함의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부도르는 이렇듯 ‘비장소’에 포함되는 리틀 아일랜드를 작품의 배경으로 선택함으로써 사람들이 공공 공간에서 자연과 예술의 결합을 통해 얻는 경험이 단순히 미적인 것을 넘어서, 그들이 놓인 사회적, 경제적 관계에 따라 영향을 받고 있음을 폭로하고자 하였다. 이때 리틀 아일랜드는 일종의 ‘관광지’로서, 사람들이 그곳에서 맞닥뜨리는 것은 비단 아름다운 허드슨강과 다채로운 색상의 수목, 그리고 튤립 형태 건축물에서 비롯된 예술적 경험만이 아니다. 그곳은 도시의 재개발과 상업적 가치가 결탁된 공간으로, 사람들은 전면에 표방된 목가적 이미지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그 공간에서 사회적, 경제적 권력을 수용하고 만다. 부도르는 이러한 이중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시도를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도시의 공공 공간이 그저 자연과 여가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경제적 통제의 메커니즘으로 작동되는 곳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4.

부도르의 <수동적 레크리에이션>(2024)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바로 방향 감각을 잃어 ‘정상적’인 동선을 이탈하는 카메라의 시선이다. 그의 영상 작품에서 카메라는 우리가 관광지를 배경으로 할 때 보통 기대하는 이미지, 이른바 유튜브에 넘쳐나는 홍보 영상에 나올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다른 방식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건축적 설계는 특정한 이미지를 유도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대도심 한가운데에 공원이 만들어질 때는 사람들이 이곳을 경험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이나 이상적인 쉼터를 기대하도록 계획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부도르의 작업에서 카메라는 리틀 아일랜드에 내재되어 있는 이러한 바람을 거부하며, 건축적 장치와 그것이 의도하지 않는 이미지까지 함께 담아낸다.

작가는 간헐적으로 휘청거리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가 하면, 하도 흔들려 초점이 나간 이미지도 빈번히 등장시키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시각적인 긴장과 불편을 느끼도록 유발한다. 이렇듯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의도된 혼란스러운 이미지는 평온하고 매혹적인 공원의 모습과 대비됨에 따라 리틀 아일랜드로 위시되는 ‘비장소’가 제공하는 이상화된 매력 이면에 자본주의와 얽힌 현실이 은닉되어 있음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부도르의 이러한 접근은 건축적 설계가 단순히 공간을 꾸미고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권력과 통제의 장치로 작용한다는 점을 카메라 조작 방식을 통해 역설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공간이 그 자체로 권력의 장치로 작용하고 있음을 가시화하기를 시도한다. 
 
한편 영상 앞에 설치된 회전식 방목 휠(rotational grazing wheel)은 가축 방목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어주는 목초지 관리 도구로 특히 가축의 식사 습관을 제어하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이를 사용하면 전통적인 울타리를 설치하거나 해체할 필요 없이, 가축을 새로운 방목 구역으로 쉽게 이동시킬 수 있기에 생산성의 향상이 가능하다. 단적으로 말했을 때, 전통적인 방법이 소를 옮기는 데 20~30분이 걸리는 반면 회전식 방목 휠을 이용하면 단 5분 만에 가능하다고 한다. 이처럼 꽤나 유용하게 들리는 기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에 들어선 대부분의 관람객은 이 도구가 무엇인지 아마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미술관은 물론 일상 공간에서 또한 쉽게 접하지 못하는 물품이기에 자세한 설명 없이는 이것의 목적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부도르는 이렇듯 낯선 목축용 도구를 영상 앞에 배치시킴으로써 리틀 아일랜드가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회전’시키며 짧은 시간만을 머무르게 만드는 공간임을 피력한다. 이곳은 예약제로 운영되며, 출입구의 보안이 매우 철저하기 때문이다. 결국 진정한 공공 공간이 사람들에게 여유를 두고 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과 달리 리틀 아일랜드를 방문한 사람들은 마치 시간에 쫓기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렇듯 리틀 아일랜드의 방문객들은 그저 스펙터클을 소비하고 자리를 얼른 비워야 한다는 점에서 작가는 이곳이 지닌 ‘비장소’로서의 실체를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 아울러 이처럼 생소한 도구를 통해 자신의 의도를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데 있어 고의적으로 어렵게 만든 것은 ‘비장소’의 가려진 본성을 알아차리는 데 많은 관심과 사회 비판 의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직접 보여주고자 했을 수 있다. 

5.
결론적으로 도라 부도르의 <수동적 레크리에이션>(2024)은 ‘비장소’로 정의되는 현대 도시 공간을 단편적인 물리적 장소가 아닌,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메커니즘의 산물로 재조명하며 관람객에게 비판적 질문을 던진다. 한편, 2024 제15회 광주비엔날레는 한국의 전통 판소리를 기반으로 집단적 감정과 정체성을 탐구하는 주제를 목표로 하였다. 판소리는 쉽게 묵살되고 마는 개인과 집단의 이야기를 공감과 울림으로 엮어내며 공동체의 정서를 표현하는 예술 형태이다. 이와 같은 주제 아래 전시된 도라 부도르의 작품은 도시 공간 속 넘실대는 ‘비장소’들과 그곳의 숨겨진 시스템에 의해 소외된 도시인들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작업으로 해석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결국, 부도르의 작업과 광주비엔날레의 만남은 현대 도시 속에서 잃어버린 관계를 복원하고, 도시가 단순한 스펙터클의 장이 아닌 공존과 대화의 공간으로 변모할 필요성을 열어두는 예술적 울림의 형태를 제안한다.



ㅡㅡㅡㅡㅡ



- 심하린(1995-) harchivefever@gmail.com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과를 수료하였으며, 현재 대전에 위치한 헤레디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1) 배수아, 『서울의 낮은 언덕들』 (자음과모음, 2011), 69-70.

2) 데이비드 하비, 『자본의 17가지 모순』, 황성원 역 (동녘, 2014), 398.

3) 정헌목, 「전통적인 장소의 변화와 “비장소(non-place)”의 등장」, 『비교문화연구』 19 (2013): 107-141. 

4) 최병두, 「도시인의 소외와 정의로운 도시」, 『위기의 도시, 희망의 도시 심포지엄』 (2016): 25-26. 




도라 부도르, 〈수동적 레크리에이션〉, 2024, 단채널 비디오, 윤환 방목용 바퀴형 울타리, 전자 장치, 가변 크기, 7분 48초.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

전체 0 페이지 0

  • 데이타가 없습니다.
[1]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