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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와 비평][GB24] (14) 레베카 모치아 Rebecca Moccia

이수정

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전시 참여작가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으로 하여금 작가의 작품 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2024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2024.9.7-12.1 이탈리아파빌리온


레베카 모치아(Rebecca Moccia), 외롭지만 외롭지 않을 우리를 위해


이수정

현대인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로 외로움이다. 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인적 네트워킹이 가능해진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쉽게 고립되고 외로움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매해 고독사로 삶을 마감하는 것은 이 감정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사회적인 현안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에서는 외로움을 하나의 질병으로 규정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눈으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과 공존한다. 온도나 계절성, 과거와 같은 특정 시간적 요소를 포함하여, 감정도 분명 그러할 것이다. 레베카 모치아(이하 모치아)는 실재하고 현실에 영향을 주지만 볼 수 없는 것을 탐구하는 작가이다. 1)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하면서 예상치 못한 외로움을 몸소 겪은 작가는 예술가로서 이 문제에 대해 개인적·집단적으로 대응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사회문화적, 정신-물리학적(psycho-physical)인 맥락에서 진행되는 그의 작업은 이탈리아 파빌리온 《외로움의 지형학 Ministries of Loneliness》으로 이어진다. 외로움에 관한 모치아의 프로젝트는 개인의 감정이 외부, 즉 환경과 분위기에서 비롯된다는 가정하에 정치·사회적 구조에 의해 형성되는 과정에 집중한다. 이번 전시는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삶의 풍경을 배경으로 삼는 동시에 우리 안의 ‘나’라는 존재의 이야기, 장소, 일상을 제시한다. 모치아는 외로움을 ‘나’와 ‘우리’ 사이의 붕괴로 정의하며 개인의 물리적 고립과 함께 나와 다른 존재 사이의 불안정한 관계로 상정한다. 따라서 외로움은 개인의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 안에서 스며들고 공유되는 집단적인 감정을 드러낸다.
 
두꺼운 철문을 밀고 발을 디디면 외롭고 차가운 은빛의 전당이 눈에 들어온다(도판 1). 일직선도 곡선도 아닌 제각기 다른 각도로 서로 마주 보지도 만나지도 않는 작품들의 전시 배치는, 현대 사회에서 고독하게 외로움을 겪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와 큐레이터 정소익(1973-)은 외로움을 단순히 설명하는 것을 넘어 관객이 직접 외로움을 체험하고 성찰할 수 있는 장으로 이끈다. 전시는 외로움에 관한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담은 첫 번째 공간과 연구와 관련된 영상, 이미지, 텍스트 등 작가의 방대한 리서치 아카이브를 시각적으로 펼쳐놓은 두 번째 공간으로 나뉜다. 관객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몰입형 설치 작품을 통해 외로움을 시각·촉각·청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작가는 첫 번째 공간에서 영국을 포함해 미국, 일본, 한국 4개국에서 진행한 현장 연구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상 작업 시리즈 《외로움의 지형학 Ministries of Loneliness》(2024)과 열화상 이미지 시리즈 《당신이 있는 그대로의 차가움 Cold As You Are》(2022-2024), 세라믹 작품 《외로움 척도 Loneliness Scales》(2023-2024)를 선보인다(도판 2,3). 《외로움 척도》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측정하고 단계적으로 드러내 보이기 위해 1978년 캘리포니아 대학교가 개발한 ‘외로움 척도’ 설문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세라믹 작업이다. ‘전혀 아니다’부터 ‘항상 그렇다’까지 4가지로 답할 수 있는 질문지 위에 작가는 흑연으로 130개의 각기 다른 답변을 써 내려갔다. 더불어 ‘얼마나 자주 공허함을 느끼십니까?’ 혹은 ‘얼마나 자주 당신의 관심과 생각이 주변인들과 나눠지지 않는다고 느끼십니까?’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관객들은 테이블 위에 놓인 질문지에 직접 답변을 적지는 않지만 그것들은 하나씩 읽고 기존의 답과 비교하며 본인의 외로움을 가늠한다. 이 과정을 통해 비물질적이었던 외로움의 개념이 관객 개개인에게 가시화되어간다. 더 나아가 모치아는 ‘얼마나 자주 춥다고 느끼십니까?’에서 외로움을 차가움의 촉각과 연결한다. 차가움과 따뜻함이 보이지 않는 외로움을 측정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한 작가는 열화상 이미지 시리즈를 뒤이어 제시한다.

특히 모치아가 작품을 통해 제시하는 외로움 연구 과정의 장소, 신체, 상황을 찍어낸 열화상 이미지는 온도에 초점을 맞춘다. 열을 감지하기 위해 찍는 기존의 목적과는 다르게, 작가는 세부 사항이나 이미지의 시야를 가린다는 지점에서 색상과 음영, 그러데이션에 주목한다. 모치아에 따르면, “우리는 촉각을 통해 압력, 온도, 질감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촉각은 우리가 주변 환경을 탐색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신체적 접촉을 통해 감정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2) 고화질의 다양한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작가는 열화상이라는 방식을 선택했다. 기존의 이미지를 숨기는 이러한 그의 방식은 관객의 시각을 제한하며 이미지 자체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을 외로움이라는 주제로 집중시킨다.

한편 전시장을 가득 메우는 음악은 레나토 그리에코(Renato Grieco, 1991-)와의 협업 작업이다. 전시와 동명의 음향 작업은 5개의 트랙으로 모치아의 외로움에 대한 탐구를 추적한 음향적 번역이다. 3) 영상 속 장소와 연결되는 트랙들은 외로움을 연상시키는 단어들을 읊은 후 잔잔하고 고요한 선율로 재생된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와 음악의 선율이 함께 전시장에 흘러나오는 것처럼, 각 나라에서 연구된 자료들이 혼합되듯 배치된다. 예컨대 <영국의 외로움부> 옆에는 미국 브루클린과 일본 후쿠이에서 찍힌 열화상 이미지가, <히키코모리, 고독사> 옆에는 한국의 벚꽃 열화상 이미지가 놓인다. 해당 공간 마지막에서는 한국에서의 연구 <우리, 벚꽃>이 일본의 <외로움 경제> 작품과 겹치듯 비스듬한 형태로 전시되었다. 외로움 이외의 공통점이 없는 여러 나라에 관한 작업들이 규칙 없이 흩어져 있다.

상이한 문화를 가진 나라들에서 보편적인 현상으로 외로움을 발견한 작가는 외로움이 사회 구조와 어떤 연관관계가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나아간다. <우리, 벚꽃>은 서울예술대학교와의 협력을 통해 한국의 특수한 정치·경제적 상황이 어떻게 사람들을 외로움이라는 감정으로 이끄는지 탐구한다. 모치아는 서울예대 레지던시에 참여하며 최고의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학생들의 투쟁과 같은 교육열과 서울에서 살기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이촌향도(離村向都)하는 청년들에 관해 듣게 된다. ‘정상적’인 삶과 본인 스스로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를 갖기 위해 많은 한국인들이 자발적 고립을 경험한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받는 그는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에 존재하는 ‘우리-외로움’에 집중한다. 이 부분에서 본 전시의 장소특정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개별 작품 말고도 이 전시장의 주목할 만한 특징은 관객을 비추는 거울처럼 설치된 은빛의 벽면이다. 외로움에 관한 작업을 보면서 우리는 벽면에 투영된 우리와 무의식적으로 마주친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것처럼 꾸며진 전시장에서 우리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존재하는 또 하나의 우리를 확인한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보편적인 정서인 외로움은 나라마다 다른 사회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차이’를 드러낸다. 이는 다시 은빛 벽면에 비춘 ‘나’라는 존재가 우리로 변해가며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이렇게 모치아는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다층적으로 해석하며 하나의 공간으로 엮어낸다. 

나와 우리를 인식할 즈음, 정사각형 형태의 전시는 좁고 긴 복도에 설치된 아카이브 공간으로 이어진다. 이곳은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좁은 공간에 자기 자신을 고립시키고 있는 외로운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아카이브는 “We-ness, Uri 우리, Noi”라는 단어를 벽면에 제시하며 시작된다. 외로움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이 담긴 자료를 이용하여 해당 공간을 꾸밈으로써 전시는 희망을 표현하고 있는 듯 느껴진다. 외로움 관련 기사, 영상, 편지 등은 영국에서부터 이어진 작가의 관심과 영감의 발전 과정을 보여준다. 외로움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부터 관련된 소설, 드라마, 영화의 사회문화적 맥락까지 빽빽하게 적힌 작가의 연구 노트는 작가가 다양한 관계망이 외로움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였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일정한 규칙 없이 배치된 모치아의 작업은 아카이브 공간에 이르러 하나의 지형도로서 그려지고 정돈되며, 이로써 외로움이라는 하나의 개념은 비로소 물질적으로 집약되어 드러난다.

2018년 영국에 이어 캐나다에 설립된 행정기구 외로움부는 2021년 일본에서는 외로움 및 고립 정책 사무소(the Office for Policy on Loneliness and Isolation)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이 부서는 외로움이 단순히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하는 현안임을 시사한다. 2021년부터 진행해 온 장소특정적이자 문화특정적 프로젝트인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를 진행하면서, 모치아는 현대인들이 직면한 외로움과 그에 따른 심리적, 사회적 구조를 탐구하며 이를 언어적, 심리적, 사회적 맥락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하나의 감정이 정치와 정책사업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모치아는 “외로움이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면 어떨까요?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외로움(collective feeling)이라는 고통의 진정한 원인을 들여다보고 이를 투쟁의 도구(tool of struggle)로 바꿀 수 있을까요?”라는 문장으로 전시를 끝마친다. 다시 말해 작가는 우선 외로움을 자본주의 모델 및 그 재생산의 일관되고 기능적인 결과물로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물리적, 사회적, 기후적 붕괴로 이어지는 현대의 시스템으로 인해 생리적 저항으로써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투쟁의 도구인 외로움은 단결된 우리의 공동체에서 따뜻함으로 변모될 수 있는 잠재력을 드러낼 수 있다. 이 지점은 본 전시를 통해 “외로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예술을 통한 사회적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라는 큐레이터 정소익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동곡미술관은 광주 비엔날레 본전시 및 파빌리온 전시와 멀리 떨어져 위치한다. 외로움을 탐구한 전시 주제를 대변하듯 한적한 광주 외곽에서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외로움을 찾아 혹은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의 발걸음을 이끈다. 단순히 지나가다 들르거나 관람하는 것이 아닌 오직 이곳 하나를 목표로 찾아온 관객들은 전시를 보고, 듣고, 느끼면서 또 다른 우리를 형성한다. 전시라는 하나의 목적 아래 우리는 외로움을 탐색하고 느끼고 잠시나마 그곳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모치아, 작가 본인이 의도한 외롭지만 외롭지 않을 우리를 위한 하나의 제안이자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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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정 (1991-) ph43290@gmail.com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재학. 콩세유 사립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하며 전시 기획과 교육프로그램 운영을 담당했다. 모더니즘이 꽃피던 20세기 중반까지의 프랑스 미술에 관심이 있으며 이를 동시대 미술로 확장하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1) 레베카 모치아(Rebecca Moccia, 1992-)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의 예술가로 2024년 제15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이탈리아 파빌리온 전시 《외로움의 지형학 Ministries of Loneliness》에 참여했다. 이번 전시는 광주비엔날레 30주년을 기념하고 이탈리아와 대한민국의 수교 140주년을 맞아 마련되었다. 사회적, 공간적 특성에서 드러나는 지각적, 정서적 물질성을 탐구하는 작업을 선보이는 그는 2024년 이탈리아 트리베로의 제냐 파운데이션(Zegna Foundation)에서 열린 《대기의 Atmosferica》, 2023년 토리노의 마조레니(Mazzoleni)에서 열린 《방 어딘가 Somewhere in the Room》 등의 전시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작가에 대한 정보는 인스타그램(@moccia_finora)과 사이트(https://rebeccamoccia.it/)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 https://www.les-nouveaux-riches.com/interview-with-rebecca-moccia (2024년 11월 12일 최초 검색)

3) https://renatogrieco.bandcamp.com/album/ministry-of-loneliness-theme (2023년 11월 13일 최초 검색)




Museum of Art. Courtesy the Artist and Italian Pavilion - 15th Gwangju Biennale. Ph. Parker McComb ©사진: 작가 제공




Rebecca Moccia, Ministries of Loneliness, 2024. Installation view at Dong-gok Museum of Art. 
Courtesy the Artist and Italian Pavilion - 15th Gwangju Biennale. Ph. Parker McComb ©사진: 작가 제공




Rebecca Moccia, Ministries of Loneliness, 2024. Installation view at Dong-gok Museum of Art. 
Courtesy the Artist and Italian Pavilion - 15th Gwangju Biennale. Ph. Parker McComb ©사진: 작가 제공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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