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 《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참여작가들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2024 9.7 – 12.1
언메이크 랩: 이중의 소외를 거친 생태 풍경의 메시지1)
최은총
1. 재난 이후 풍경에서 발견한 아이러니
산불이 난 산에 초록빛이 되돌아왔다[도판 1].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은 파괴를 딛고 싹을 틔운 자연의 회복력을 보여준다. 그런데, 산세에 듬성듬성 길이 나 있다. 인간이 발 디딘 자리다. 작가는 그 흔적을 보고 물류의 이동 경로였으리라 추측한다. 많은 사람이 같은 길을 걷는 동안 다져진 그 통로는 지난 인류사의 흔적이자, 미래의 길잡이가 된다.
그러나 이 모습 가운데, 작가는 묘한 불편함을 발견한다. 모두에게 파괴적이었던 커다란 재난마저 인류의 발자국을 삼켜내지 못한 것이다. 자연은 산불은 이겨내도 인간의 발자취 아래에서는 싹을 틔우지 못했다. 이 아이러니한 모습에서 그들은 “비미래(non-futures)”란 단어를 떠올린다. 여기서 비미래란 “재난으로 인해 당도한 미래에 대한 비관과 탈락의 감각, 한편으로는 기술과 자본이 미래에 대한 낙관을 추동하는 사이에서 느끼는 부조리한 감각”을 뜻한다.2)
사실 대다수의 사람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풍경에 ‘불편함’을 꼬집어보라고 해도 잘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우리 주변 대부분의 자연이 인류의 자본 논리에 의해 선별·가공되는 방식으로 길들였기 때문이다. 그간 작가는 이러한 방식으로 인간의 힘으로 인공화된 자연을 ‘일반 자연(generic nature)’으로 말해왔다. 이는 필히 자본세(capitalocene)와 연결되게 되는데, 생태에 대한 영향력을 인간의 활동 중에서도 자본 권력의 생태 파괴 기제를 가장 큰 문제로 보는 관점이다. 이에 따라 현시점에서 맞이한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의 감소, 해양 산성화 등 다양하고도 긴급한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이에 언메이크 랩은 제15회 광주비엔날레《판소리, 모두의 울림》5 전시관에서 <비미래를 위한 생태학 Ecology for the Non-futures>(2023)를 선보이며, 인공지능이 바라본 미래의 생태 풍경을 제시하고, 자본세의 렌즈에 삽입된 오만한 인간중심적 시각과 자본의 논리로 분류된 생명 가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2. 첫 번째 소외: 인류 문명에 의해 변화를 맞이한 기후와 동식물의 생식·유전
도시 개발이란 자본의 요구에 따라 자연환경은 개간되어 물리적인 면적이 크게 축소되었다. 또한, 먹이 사슬의 토대가 변화함에 따라 자연환경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종류와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특히 동물들은 인간에게 완전히 길들여져 가축이나 반려동물이 되거나, 필요에서 밀려난 일부는 점차 야생동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비미래를 위한 생태학>에 등장하는 야생동물의 모습은 밀려났기에 생존한 이들의 초상이다. 그러나 인간이 지닌 끝없는 욕망 때문일까? 이들의 외형과 습성, 개체 수와 같은 생태 다양성은 지표가 되어 관리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야생동물의 움직임을 감지해 자동으로 사진을 찍는 트레일 캠이 설치되었다. 작가는 이 10년이 넘는 트레일 캠 영상 속 고라니, 너구리, 삵, 담비, 오소리 등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며, 트레일 캠의 영상에서 이미지를 추출해 기계 학습을 위한 데이터셋을 만든다.3)
인간을 피해 활동하는 야생동물의 움직임은 주로 해가 저문 시간에 포착되기에 이들은 흐릿하고, 돌발적이고, 긴장된 이미지로 포착된다[도판 2]. 인공지능을 통한 기계학습은 이 동물들에게서 친숙함을 찾지 못했는지, 여러 상을 혼합하고 열화하여 괴물적 형상을 만들어낸다. 이들의 본질은 비워낸 채, 비현실적이고 아이러니한 형상을 제시한 인공지능은 과연 이들을 무엇으로 지시하고 있는 것일까.
1. 두 번째 소외: 인공지능의 신화 아래 숨겨진 인간 노동
자동생성형 인공지능은 우리 삶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아 일상생활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사용자가 인공지능 시스템에 원하는 텍스트, 이미지를 삽입하면 원하는 콘텐츠를 손쉽게 만들고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위와 같이 누구나 간단하게 고도로 정제된 콘텐츠를 가질 수 있는 데에는, 그 아래 기계를 인간과 닮게 하기 위해 촘촘하게 다듬은 긴 시간이 존재한다.
인공지능은 인간 두뇌의 작동 방식을 모방한 딥 러닝(deep learning) 방식의 개발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딥 러닝은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을 토대로 샘플 데이터를 통한 훈련 작업을 통해 복잡한 데이터 특성을 스스로 학습하고 추출하는 방식으로, 대표적으로 알파고, Chat-GPT, 자율주행 자동차 등에 활용하고 있다. 사실 기술의 특이점을 제공했다 할 만큼 혁신을 가져다준 딥더닝 방식의 개발에는 장시간 인간의 단순노동을 요구한다. 예를 들면, 사과 사진을 두고 바나나인지 사과인지 선택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여, 인간의 판별 능력을 배우는 식이다.
일순간에 세상에 등장한 것 같았던 기술 신화 아래 숨겨진 인간 노동자가 존재한다.4) 기계에 주어진 방대한 양의 글, 사진, 영상 등의 디지털 데이터는 여러 사람들의 판단과 검수를 거쳐, 알고리즘 학습에 투여되고, 위와 같은 더미가 쌓이게 될 때 비로소 지능이 생성되는 것이다. 정확한 데이터 더미를 얻기 위해서는 긴 시간, 수차례에 걸쳐 검증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 학습에 사용되는 디지털 데이터의 원형은 과연 가치중립적일까?
3. 이중의 소외를 거친 생태 풍경
대체 왜 기계신경망을 거친 야생동물의 이미지는 열화되는가. 딥러닝 학습의 기전으로 축적된 ‘자연’의 형상은 왜 좀비와 같이 보이는가. 이미 첨단 테크놀로지로서 인공지능, (작품 안에서 미래를 예측해 주는) ‘암흑경’ 안에는 이미 이중의 소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속 데이터는 인간의 시선으로 적힌 말, 사진, 영상이 녹아 있다. 그렇기에 야생동물보단 반려동물이 더 친숙하며, 흐릿한 이미지보단 명료한 이미지를 더 잘 이해하는 것이다. 무한히 이성적인 계산하에 가치중립적인 판단을 내릴 것 같은 이 기계적 시선은 어쩌면 인간보다 더 인간중심적인 판단을 대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심지어 인공지능은 빅 데이터 세상 속에서 인간의 선호를 정향하며, 더욱더 내부의 체계를 강화해 나간다.
<비미래를 위한 생태학>의 도시의 틈바구니에서 인간 문명에 밀려 최적화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초상[도판 3]. 인간 문화에 비껴가 괴물이 되고 마는 이들의 형상. 얼기설기 맞춰진 조각들과 그 사이의 헤아릴 수 없는 공백은, 과거라는 무덤을 파헤쳐 찾아낸 미래의 좀비와도 같은 모습을 띤다. 그러나 이렇게 작동하는 비미래는 흐릿하다는 점에서, 도달할 수 없는 미래라는 개념을 오히려 선명히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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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총(1996-) dms960527@gmail.com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사학과 수료. 포항융합예술실험실과 광주 국제큐레이터코스 현장 코디네이터 근무. 제 11회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에 기획자 선정, 2024 트라이보울 초이스 전시 《매끄러운 세계와 골칫거리들》(2024), EMAPxFRIEZE FILM 연계전시《중간에서 만나》(2024), 홍천미술관 지원 전시 《플랜티 하우스》 (2023), 서교예술실험센터 지원 전시 《레테》(2023)를 공동 기획.
1) 언메이크 랩(Unmake Lab)은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최빛나, 송유연으로 구성된 콜렉티브로, 주로 아이러니·우화·유머를 바탕으로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한다. 콜렉티브는 역사적·기술적 발전이 현대 사회의 현실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탐구한다. 다양한 데이터셋과 신경망 프레임워크를 활용하여 우리 시대의 사회적·정치적·생태적 이슈를 이해하고자 한다.
2) 광주비엔날레 유튜브,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심포지엄 4. 양자의 비약: AI의 다방향적 시간성”,
3) 언메이크랩 외 7인, 『잠재공간 속의 생태학: 재난, 생성신경망, 그리고 비미래』, (미디어버스, 2023), p. 29.
4) 그러나 이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한다는 점에서 낮은 임금과 비정규적인 노동 방식에 내몰린다. 실제로도 이들은 인공지능에 의한 특혜를 누리고 있는 북반구 인구가 아닌 비교적 노동력이 값싼 남반구 인구가 위와 같은 일을 수행하곤 한다.
언메이크 랩, <비미래를 위한 생태학>, 2023, 싱글 채널 비디오, 26분 40초. © Unmake Lab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